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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Dec 13. 2021

선생님, 몇 살이세요?

 월요일 아침, 분주한 마음으로 문을 연 교실.

 보영이, 예은이, 가영이가 제일 먼저 차례로 등교했다.

 예은이 왈,

 "선생님, 오늘도 예쁘세요."

 보영이 왈,

 "주말에 선생님 너무 보고 싶었어요."

 뭘 했다고 이다지도 내가 보고 싶었을까?

 고마운 녀석들.




 2학기가 조금 지나 정읍에서 전학 온 가영이는 내 나이가 몹시 궁금한 모양이었다.

 어느 날 수업 도중에 질문이 있다고 하더니

 "선생님 나이가 궁금해요."

 했다.

 나는 3월 첫날 질문하지 않은 건 답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합세를 했다.

 "5학년 첫날 그럼 선생님 찾아올 거예요."

 "어이구. 그때 되면 새 선생님하고 지내느라 바쁠 텐데?"

 이 녀석들 내 나이가 궁금하긴 하구나 싶었다.


 오늘 4교시 음악시간에 동기유발 자료로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가 나왔다.

 아이들이 집요하게 물어도, 첫날 누군가 질문을 했었는데 내가 답을 하지 않았다고 우겨도 이제껏 '백 몇십 살', '삼백 살' 같은 말로 넘겨왔다.

 그런데 예전의 그 뜨거운 응원 장면을 다시 보고 있자니

 그만 아이들에게 힌트를 주고 싶어 졌다.

 "선생님 나이 궁금하다고 그랬지? 선생님 대학교 1학년 때 2002 월드컵 했었어."

 그러자 계산 빠른 누가 바로 말했다.

 "어, 선생님 그러면 사십?"

 "아니, 사십은 안됐어."

 그렇게까지 자세히 말해줄 생각은 없었는데 마흔이라는 숫자에서는 아직 바로 뒷걸음치고 싶은 마음이 그만 투명하게 드러나버리고 말았다.

 "아, 그럼 서른아홉! 서른아홉이다."

 "근데 대학교는 마흔에도 들어갈 수 있는데?"

 똑똑이 윤호가 말했다.

 "서른아홉 맞아요, 선생님?"

 "그래, 맞아."

 이렇게 내 나이는 아이들에게 밝혀졌다.

 아이들은 한바탕 자신의 엄마와  나이를 비교하느라 빠졌다.


 "선생님, 내년에 마흔 되는 거 축하드립니다."

 한 개구쟁이가 쉬는 시간에 다가와 반쯤 농담하듯 말했다.

 그리고 하교 시간.

 보영이가 하교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은 젊으셔도, 나이 들어도 이쁘세요."

 더 어릴 때의 나를 본 적도 없으면서

 이런 이쁜 말을 한다.

 아이들은 우르르

 "선생님 사랑해요. 내일 봬요."

 를 크게 외치고 교실 밖을 나선다.

 그러면 나도 일어서서 배웅을 한다.


 다문화 가정의 수영이도 아침에

 "선생님, 방학되면 다 좋은데 학교에 못 와서 심심하고 아쉬울 것 같아요."

 했다.

 학교가 다행히 아이들에게 즐거운 곳인가 보다 싶어 안심이 된다.

 그리고 지금 같은 때에

 최소한 누군가에게 '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게

 이다지도 안심이 되는 일이라니.


 고맙다, 얘들아.

 선생님도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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