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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01. 2021

새 학교가 있는 동네는

교사로서의 소명을 느끼다

  이사 온 집에서 새 학교로 운전해서 갈 때 교차로가 하나 있다. 그곳을 열두시 방향으로 돌아 나가면 머지않아 학교다. 그런데 교차로를 돌아 차를 학교 방향으로 틀면 저 쪽 끝에 ‘금호’라고 적혀있는 키가 큰 아파트가 눈에 띈다. 왠지 낯이 익다 했는데 남편과 결혼 2, 3년차 쯤에 집을 사려고 같이 들러본 그 아파트였다. 당시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대출을 받아 갈 수 있는 아파트는 한정적이었고, 이 곳 금호아파트도 그중 하나였다. 뜨겁던 여름날, 아저씨가 이전에 군인이었다고, 입주 때부터 깨끗이 썼다며 자세히 설명을 해 주시던 통통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기억났다.

  “탑층이라도 요샌 잘 지어서 여름에 덥고 그런 것도 없어요.”

  그냥 아파트 내부를 한 번 보고싶어 부동산에 부탁을 한 거였는데 너무 성의 있게 설명을 해주시는 바람에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때 우리에겐 차근차근 모은 약간의 돈뿐이었지만 사랑이 있었다. 앞으로 함께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싱그러운 시절이었다. 그래,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다.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그 아파트 생각을 더 할 겨를도 없이 학교에 도착했다. 내일이 개학이라니. 새 학교에서 첫 담임이라... 오랫동안 영어 교과를 가르치다 지난 해에 다시 담임을 시작했으니, 뜻깊다.

  출근하신 다른 선생님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급식을 아직 교실에서 먹어 투명 가림판을 책상마다 손수 설치했다. 점심 때가 되어 비를 뚫고 근처 롯데리아에 가보기로 했다. 휴일이라 정문으로 나가는 중앙현관이 잠겨있었다. 하는 수 없이 후문으로 나와 조금 돌아서 가야했다.

  일방통행인 찻길은 몇 번 다녀봐서 주변이 대부분 빌라인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우산을 받쳐 들고 학교 주변을 걸어보니 동네 분위기가 확연히 느껴졌다.

  먼저 새로 간판을 단 조그마한 순대국집이 보였다. 휴일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있었다.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조금 더 내려가니 작은 두부집이 있었다. 저녁때 먹게 한 모 사갈까 하다가 카드는 받을 것 같지 않아 지나쳤다. 그 맞은편에는 ‘방석집’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 영세한 술집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학교에서 걸어 나온 지 불과 오 분도 되지 않았는데.


  ‘이 곳에 교사로 부임하게 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신이 있다면 내가 이 곳에 보내진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뉴스에서는 편의점에서 끼니를 사려다 잔액이 부족했던 아이에게 한 여학생이 과자까지 얹어 오만원어치를 계산해주었다는 미담이 보도됐다. 하버드에서 했던 한 장기 연구에서는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자신을 믿어준 단 한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였다고 했다.

  십일년 인생이 얼마나 다양하고 굴곡지겠냐만은 우리반 학생으로 온 스물네 명에게 ‘사는 즐거움’을 1년 동안 충분히 선사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 학교를 오는 한, 인생은 즐겁다고. 그리고 나도, 아이들로부터 그렇게 느꼈으면. 그러면 좋겠다.



  개학이 내일이네요. 얼마나 바빠질 지 모르겠습니다. 새학교라 서툴고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일처리가 늦어질 수 있겠지요. 조금 소식이 늦어질 수도 있어서 사족을 남깁니다. 라이킷과 구독으로 응원해주시는 독자분들께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이번 기회를 통해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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