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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Apr 08. 2022

생각 없이 벚꽃을 보고 있자면

 영주가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잠깐 만나다 헤어지는 것도 힘든데, 1년 가까이 만나다 이별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아직 채 잊지 못한 남자 친구 생각에 힘들어하는 영주를 보며, 그리고 역시 매사 생각이 많은 편인 스스로를 돌아보며

 생각을 줄이는 게 어쩌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이번 한 주 공개수업 일정을 놓고 나를 괴롭힌 한 여자 선생님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하는 공개수업인데 굳이 홀수반과 짝수반이 주를 다르게 해야 하느냐며 애꿎은 나에게 따지셨다.

 따지기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한 발 더 나아가

 “마음에 안 들어.”

 라고까지 하셨을 때는 나도 적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분이 내가 마음에 안 든다며 든 예는 코로나에 걸려 학교를 못 나오던 시기에 처리되었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부장 회의가 있고, 그 부장 회의에 이어 동학년 회의를 한다. 그 불만 많은 선생님께

 “정 그러시면 연구부장님과 상의하셔서 제게 알려주세요.”

 라고 마무리를 짓고자 했으나 미처 마지막 말을 끝내기 전에 전화는 이미 끊어져 뚜뚜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분 또한 옆반 남자 선생님처럼 나보다 최소 십오 년 이상 선배이신지라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날 밤에 오랜만에 잠을 설쳤다.

 잠을 이겨가며 그 선생님께 뭐라고 적절한 대응을 할 것인가에 온 두뇌가 꼿꼿이 곤두선 느낌이었다. 마치 잠꼬대처럼 할 말을 마구 생각해내어 머릿속에서 연습하는 형국이었달까?

 ‘학교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은 내가 다 공감도 안 가고 해결해 드릴 수도 없다고 할까?’

 ‘올해 학년부장은 저입니다부터 말할까?’

 동학년 회의 때 어떻게든 이 일을 매듭짓고 싶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날 부장회의가 취소되었다. 그래서 급히 정해야 하는 사항만 메시지로 처리를 했다. 그리고 오늘이 되었다.


 그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한 날, 혹시 연구부장님께 가서 말씀을 하셨을까 싶어 퇴근하며 교무실을 들렀다. 연구부장님은

 “아니오, 안 오셨는데요?”

 하시며

 “아유, 어떡해. 그 학년이 힘들겠어.”

 하셨다. 그리곤

 “그 선생님 하시는 말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요. 병 생겨.”

 라며 이전 그 선생님께 상처받은 다른 부장님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행히 연구부장님께서 다음날 ‘주수를 바꾸려면 계획서부터 그 반이 알아서 기안을 다시 하세요’라고 전체 메시지를 주셨다. 그 덕택인지 그 선생님은 다시 학교에서 정한 주차에 맞추어 날짜를 바꾸셨다. 학년부장으로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연구부장님께 무척 감사했다.


 그리고 그 선생님께서 오늘 호떡을 구워주셨다. 교실에 갔더니 브루스타와 호떡 반죽이 있었다. 호두가 들어가 맛있었다.

 “하나는 애기 갖다 줘.”

 알고보니 이런 자상한 면도 는 분이셨다.


 평소에도 매사 화가 많고 직선적인 화법을 쓰는 이 선생님은 어쩌면 사실 이혼하셨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다른 선생님께서 하신 적이 있다. 하지만 지나온 겪은 세월이 험하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꼭 그 세월처럼 험하게 변하리라는 법은 없다.


 작년 2학년을 맡으시며 생각지 않게 어려움에 봉착한 이야기를 호떡을 먹으며 또 들었다. 그건 그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선생님께서는 어쩌면 아직, 조금은 거기에 대해 학년부장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시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말 잘못이 없으시다면

 이제는 2022학년도의 새 3학년으로 털고 올라올 때도 되셨다고, 나는 말씀드리고 싶었다.

 

 자꾸 돌아보며 화내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생각을 덜어내면 조금 더 편하게 웃을 수 있지 않은가?

 요즘 생애 가장 많은 벚꽃 구경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꽃이 흐드러지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넓은 집, 넓은 차,

 한 번의 결혼, 예쁜 두 아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부장 자리,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

 많은 친구들.

 왜 웃지 못하는지 오히려 그 이유를 찾기 어렵다.


 간절히 바라는 이혼이 오면

 그때 영주와 벨에포크를 마실까.


 그래도 이만하면 이전보다 많이 행복해졌다.

 누구든 자기 인생에 악인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언젠가 그 정도에 상응하는 호인을 만날 수도 있는게 아닐까.  


 걸어온 삶이 힘들었어도 나는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하고 조용히 다짐을 해 본다. 봄밤 활짝 핀 벚꽃이 그저 생각 없이 너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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