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희 May 06. 2022

안녕, 나의 예전 집

 내가 사는 신도시에는 24시간 하는 콩나물 국밥집이 한 곳 있다. 어제 오랜만에 그곳에서 밥을 먹었다. 여전히 솜씨 좋은 감칠맛에 감사했다.

 "여기서 혼자 진짜 많이 밥 먹었었는데. 베이비 시터 오면."

 일요일 아침, 베이비 시터분이 오시면 그제야 겨우 제대로 된 식사를 하러 나갔다 올 수 있었다. 남편과는 같이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손찌검이 시작된 후 그와 대화조차 나누기 꺼려졌고 그 시간 동안 행선지를 서로 묻지 않은 채 각자 볼일을 보고 돌아왔다. 육아를 '도와준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던 그와 달리 아이들 점심을 걱정해야 했던 나는 아침을 거기서 먹고 돈가스를 포장해 가기도 했다.


 한 쇼핑몰에서 옷을 시켰는데 바보처럼 과거 배송지를 눌렀나 보다. 올 때가 지난 것 같은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배송 조회를 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예전 집으로 배송 완료 표시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재량휴업일이라 아침도 먹지 않은 채 그 지긋지긋한 아파트로 차를 몰았다.

 다행히 지금 거기 살고 계신 아주머니께서 '연락할 방법을 못 찾았다'며 택배 박스를 고이 간직하고 계셨다. 아이들과 함께 자주 가던 산책길, 우리 집에서 한 신고로 경찰이 자주 오갔던 구식 현대 엘리베이터, 너무 익숙한 그 공간에 들어서자 온갖 복잡한 마음이 든다. 두 딸이 만 한 돌이 되기도 전에 같은 동 옆 라인 1층 가정 어린이집을 머리도 제대로 빗지 못하고 유모차로 수없이 지나다닌 그 길에 내가 두고 온 슬픔이 남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왔어? 잘 지냈니.'


 아파트 카페에 남은 포인트를 쓸까 하여 아주 오랜만에 들렀다. 나이 지긋한 분이 많이 거주하는 단지라 그런지 카페에 앉아 계신 분들이 다 연로해 보였다. 채 마저 다 쓰지 못하고 남은 포인트는 1600점, 충전하려면 현금이 있어야 하는데 천 원짜리 한 장밖에 없었다. 아이스 라테를 먹으려던 나는 1500포인트를 써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먹기로 한다.

 그렇게 뜨거운 테이크아웃 컵을 가지고 나오며 이제 정말로 이 단지와, 이 집과 안녕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파트 카페에서 예전 집이 있는 동까지의 거리가, 카드 키가 없어 지하주차장까지 휘이 돌아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멀지가 않았다. 예전의 나는 얼마나 힘이 없었길래 이 짧은 거리도 너무 멀게 느껴졌던 걸까? 무기력하고 힘이 없었던 과거의 내가 제법 많이 옅어지고, 에너지 넘치고 생기 있는 나로 이곳에 돌아왔다.

 관리를 제대로 잘하지 못하는 단지였는데 지금도 그랬다. 여기저기서 청소를 하고 수리 중이었다. 꽃들도 덜 예뻤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가 훨씬 나았다. 삶 자체도 그랬다. 다만 두 아이와 함께 일상을 보내던 조각들이 내 마음을 후벼 팔 뿐이었다. 그건 다시는 오지 않을, 남은 평생 가질 수 없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학교에 오후 당직을 하러 왔더니 오전 당직을 선 다른 학년 부장님께서 물으셨다.

 "선생님 근데 결혼하셨어요?"

 "네. 애가 둘이에요."

 요즘 자주 듣는 얘기다.

 "나는 선생님 처음 봤을 때 결혼 안 한 줄 알았잖아."

 결혼했지만 이혼 중이라는 이야기를 차마   없어  아이가 쌍둥이라는 말만 하고 빙그레 웃어 보인다. 나의 불행은, 나의 이혼은 감출래야 감출  없는 감기처럼 사람들 눈에 어느 정도 보이는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것도   있을까? 나는 많이, 괜찮아졌다는 . 생각만 해도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넘어오는  시절을 지나 마침내 환히 웃을  있게 되었다는 .

작가의 이전글 연애의 끝은 결혼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