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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y 28. 2022

한 조각의 너절한 다정함이라도 주기 위해

 "주희님 글을 읽고 나면 그 글에서 좋은 사람, 예쁜 사람이 보여요."

 말문이 막힐 정도의 과찬이었다.

 "일부러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보여요."

 "다정하려고 노력은 해요. 근데 잘 못해서 그래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달리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렇게 말하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 알고 있다. 다정하고자 하는 그 노력으로 인해 나는 정말로 다정한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단 걸.




 처음부터 다정함이란 내게 거리가 먼 단어였다. 학창 시절, 부모님의 뒤틀린 사랑을 받았으나 그것은 결코 다정한 모습을 띈 적이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의 다정함을 꺼내어 말할 줄 몰라 우리 가족은 아직도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투르다.


 유명이 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지 일주일, 다행히 그 아이는 조금 진정되는 모습이다. 이전보다 수업에 잘 참여하고 안 하던 과제도 해내곤 한다. 저도 지난주 금요일에 조퇴하고 집으로 가서 부모님과 이야기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이나마 느꼈을 거다. 다른 사람을 때려봤자 저 손해니 이제 집에서는 인형을 때리기도 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긴 일주일을 힘겹게 헤어지는 금요일의 하굣길, 반 아이들과 3월 초에 자주 말하기로 했던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중에 "안녕히 계세요."란 인사 대신 "사랑해요."를 말하고 헤어지기로 한다. 싫다고 하는 아이도 있어서

 "그럼 하고 싶은 사람만 해."

 라고 했다. 다행히 대부분 "사랑해요."를 외치고 몇몇은 품에 와 안기고 간다. 일주일 내내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쌓였던 피곤이 조금은 녹는 기분이다.


 인생의 계획에 없었던 이혼을 겪으며 내가 너무 모진 사람은 아니었던가 반성을 하게 된다. 물론 폭력이라는 이혼 사유를 타협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도 조금 더 둥근 사람이었다면 그가 그렇게까지 날이 서서 이날 이때까지도 나를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진 않았을 텐데... 나는 더 이상 그에게 감정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 면접 문제로 상의가 필요할 때 그의 태도는 아직도 나에 대한 반감으로 똘똘 뭉쳐있음을 보곤 한다. 여전히 그런 부정적인 마음을 놓지 못하는 그가 안타깝기도,  답답하기도 하다. 이번 면접교섭은 그래서 원만히 협의가 되지 않을 뻔했다.


 아마도 내가 상처 입힌 결과로써 너무 너절해진 그의 모습을 보며 나를 돌아본다. 마치 칼처럼 깊고도 아팠을 내 말과 태도를. 다시는 누군가를 그처럼 아프게 하지는 않겠다는 다짐도 함께 해 본다.


 세상이 모두 끝난 것 같았을 때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해 주었던 건 다름 아닌 누군가의 작은 따스함이었다. 그 다정함으로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늘 혼자 외로움을 씹어 먹던 키가 크고 말라빠진 아이는

 그렇게 다른 사람의 다정함이 얼마나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지를 이제야 가슴으로 깨닫는다.




 옆반에 아침마다 반 안으로 못 들어가고 어머니와 같이 교실 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한 학생이 있다. 자그마한 키에 새하얀 얼굴이 뿔테 안경에 대비되어 도드라진다. 그렇게 매일 아침 교실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본 지가 벌써 한 달도 넘은 것 같다. 아마도 전면 등교 뒤부터였을까? 무슨 큰 문제라도 있는 듯 아이보다 더 죽을 상을 한 어머니의 얼굴도 인상적이라 이 모자의 문제를 꼭 그 담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었다.

 나이가 지긋한 옆반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약간 격앙되어 아이가 밥을 먹지도 않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큰 일을 못 본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게 다였을까? 지난 체육 연수 때 들어보니 교실에 들어와서도 담임 선생님이 '뭐만 하라'고 하면 자기 자리에서 그대로 소리 내 운다고 했다.

 어제는 그 아이가 웬일로 엄마 없이 홀로 복도에 서 있었다. 머리끝까지 경직된 모습의 아이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옆반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자 앞문을 노크했다. 그런데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이미 그 담임 선생님께서는 문제를 알고 계심을 말씀하셨다.

 "아, 저기 서 있는 아이요? 알고 있어요. 안 들어오려고 하길래, 들어오든지 말든지, 공부하려면 들어오라고 했어요."

 학교가 무서울까, 그 아이는. 직접 이야기해보지 않아 그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떤 마음에서  교실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지 최소한 들어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내 반이 아닌 다른 반 학생 문제에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차마 그 아이에게 아무 말도 붙이지 못한 채 우리 교실로 돌아왔다. 내가 만약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조금 더 다정하게 다가갔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이렇게 나는 내 끄트머리 날을 일부러 헝겊으로 감싸고, 차가운 철이 아니라 본디 따뜻하고 다정한 나무와 같은 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리고 때론 언제까지 이렇게 나를 감출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다정함을 나눠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인생은 충분히 보람이 있었다.

 가끔은  만큼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내게서 받은  다정함을 져버리고 내게 소중한  누군가가 다른 따뜻함을 찾아 가버릴까봐 말이다. 그래도 나는   조각의 너절한 다정함이라도 필요한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세상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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