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희 Oct 23. 2022

만국기

 학창 시절 체육을 참 못했다. 체육만 못한 건 아니었고 예체능을 골고루 못했는데, 그래서 예체능까지 다 잘하는 아이에게 늘 전교 1등을 뺏겼다. 엉덩이로 앉아서 하는 공부에 비해 운동이나 손으로 하는 건 참 소질이 없었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과 통화하다가 요즘 줌바에 푹 빠져있다고 했더니,

 “네가? 너 몸치잖아.”

 라는 대답을 들었다.

 ‘맞다. 나 몸치였었지.’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초등학교 운동회를 떠올리면 훌라후프에 노란 꽃종이를 같은 간격으로 균일하게 붙인 걸 들고 가을 내내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반만 한 건 아니었고 다른 반, 아니 다른 학년과도 같이 했었는데 아마도 멀리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모양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긴 시간 합을 맞춰 보여주기 식의 운동회는 내가 교사가 되고 나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제는 그렇게 훈련해서 보여주고 학부모와 교장 선생님이 흐뭇하게 박수치는 운동회는 드물어졌다. 코로나 이후 운동회를 처음 연 우리 학교도 아이들이 신나게 게임만 하고 마쳤다. 다양한 게임이 있었지만, 나도 익히 잘 아는 청백 계주가 대망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였다. 아이들이 열과 성을 다해 달리다가 바톤을 떨어뜨리기도 하는 걸 보며, 나도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듯 심장이 뜨거워지며 즐거웠다.




 어제 지인 집에 초대받아 가던 중 한 중학교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서 이번에 달지 않았던 만국기가 그 운동장 가득 촘촘히 펼쳐져 있었다. 하늘 아래 만국기를 본지 하도 오래되어 새삼스레 어릴 적 운동회 기억이 났다.

 “넌 저 모양 예쁘다고 했잖아.”

 역시나 손재주가 없고 낮에는 풀무원 레이디로 일했던 우리 엄마는 꽃종이를 다른 아이들과 확연히 다른 삼각형 모양으로 붙여주셨다. 나는 울고 싶었는데 다른 학년 언니 둘이 저 모양이 예쁘니 안 예쁘니 하며 옥신각신했었다. 매스게임에서도 위치를 자주 틀려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어느새 그것도 그런대로 추억이 되었다. 시간이란 이렇게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다.


 왜 이제는 학교에서 만국기를 잘 달지 않을까 궁금해져 조금 찾아보니 일제의 잔재라는 말이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개인적으로는 만국기 가득한 운동장이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지난주 했던 운동회도 아이들에게 훗날 그런 추억 한 조각이 될까? 아이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무엇으로 기억해낼까.


 만국기를 보며 상념에 잠긴 지금의 모습을 추억하는

 그런 미래의 어느 날도 있겠지.

 잠시 마음이 빈 것처럼 쓸쓸하더라도, 이것이 끝은 아니리라.


이전 10화 한 조각의 너절한 다정함이라도 주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