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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Sep 13. 2022

낯선 곳에서 처음 서핑을 배우다

추석 연휴를 이용해 가까운 다낭에 다녀왔다. 거기서 이번 여름에 거의 하지 못한 물놀이를 실컷 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가스노클링을 하고, 리조트 수영장에서 유유자적 책도 읽었다. 곳곳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도 많이 나누었다. 이전에 처음 베트남을찾았던 나트랑보다 이곳 다낭이 훨씬 재미있었다.

다낭에 가기 전, 수영을 못해 미룰 수밖에 없었던 서핑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미케 비치 근처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서핑샵이 있는데, 수심이 낮아 수영을 하지 못해도 초보자용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게된 후 수업을 들을까 말까하는 고민을 하루 정도 했다. 그리고 그런 끝에, 한 번 배워보기로 마음 먹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서핑에 열광하는지 이제 내가 그 이유를 찾아볼 차례였다.


평일이라 그랬는지 수강생이 나밖에 없었다. 기다리고 있던 강사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나 혼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갑자기 부담스러워졌다. 평소에도 균형 잡기가 쉽지 않은 나로서는 그 날 한 번 수업만에 멋들어지게 파도를 탈 거란 기대는 애초에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날씨는 마치 그림 같았다. 며칠 전 찾아봤을 때만해도 비가 온다고 되어있어서 걱정이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햇빛이 쨍쨍했다. 내 서핑 선생님 이름은 타미.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밝은 미소의 베트남 여자분이었다. 우리는 서로 이름만 듣고 남자인줄 알았다며 마주보고 깔깔 웃었다.


내 키만한 초보자용 롱보드를 먼저 해변에 갖다 놓고, 다시 되돌아온 타미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탑승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내리다 다쳤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어서 그때부터 몸이 긴장됐다. 서핑 배우는 과정을 찍기 위한 고프로와 아이스버킷 속 생수 두병을 싣고 우리는 무사히 해변에 도착했다. 낮 한 시 반, 체감온도 39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여기는 수심이 낮아서 마음 놓고 하셔도 돼요.”

지상에서 보드를 놓고 그녀의

“One, two, three.”

구령에 맞춰 두 발을 가져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몇 번의 연습 끝에 드디어 뒤쪽에 디딜 발에 리쉬를 연결하고, 보드를들어 바다쪽으로 갖고 걸어들어갔다. 부드러운 소재로 만든 보드라 그런지 크기에 비해 별로 무겁지 않았다. 하지만 넓은 면적 때문에 바람이 세게 불때면 원하는 방향으로 가져가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물 위에 한 번이라도 일어서 보았다면 좋았을 텐데, 옆에서 일대일로 가르쳐준 타미에게 미안하게도 나는 그날 내내 바다 속으로빠지기만 했다. 수심이 얕아서 빠져도 키가 큰 내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굉음과 함께 갑자기 닥쳐오는 높고 세찬 파도는 공포스럽기 그지 없었다.


잠시 물을 한모금 마시고 육지에서 자세를 조금 교정해 연습을 더 했다. 하지만 그후 다시 시도해보아도 안되기는 매한가지였다. 한 번은 보드에 이마를 부딪히고, 무릎은 점점 보드에 쓸리고 있었다. 열심히 보드를 끌어주고 신호를 주는 타미가 처음에는 마냥고맙다가 실패가 거듭되면서는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도, 보드에 올라타는 일도, 거기서 일어서 보는일도 내 힘으로 해보고 싶었다.


양쪽 엄지발가락이 까졌음을 느낀 건 결국 수업을 그만하자고 내가 요청한 뒤 육지로 걸어나오면서였다.

‘피가 나나?’

란 생각도  들었는데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다.




그날 비록 보드 위에 일어서지는 못했지만, 서핑을 배우는 과정 자체는 흥미진진했다. 서핑을 하려면 먼저 하얀 비말을 사방으로 뿌리며 매섭게 다가오는 파도에 맞서 보드 위에 올라타 두 팔로 패들링해 바다쪽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러다 보면 마치 내가 세상에 맞선 거인이 된 듯한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람들이 말하길 세상엔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좋을 일도 많다지만, 나란 사람은 뭐든 직접 해보며 느끼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걸.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며 나의 한계와 즐거움을 찾는 과정이 바로 나의 인생이었다.


살다보면 때로 이렇게 계속 넘어질 수도 있다. 실패란 맞닥뜨리기 전에는 늘 두렵지만, 막상 그후 일어나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지않을 수도 있다. 나는 앞으로도 해보지 않은 일에 기꺼이 도전하고, 넘어지고, 때로는 성공하며 남은 생을 살 것이다. 가슴이 두근대는 여러 일을 직접 해보며 희로애락을 겪을 것이다. 그 희로애락은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삶의 선물이다. 시도하지 않았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실패의 경험까지도 말이다.


다시 타미가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서핑샵으로 돌아오는 길, 바닷물에 절여진 래쉬가드에 남아있던 물기가 바람에 날아가며 시원해졌다. 헝클어진 머리마저 모래 투성이었지만 오히려 그 모래가 뜨거운 햇빛에 반사돼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난생 처음 서핑의 문을 두드리고 번번이 파도에 휩쓸려 호되게 바다로 고꾸라진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온몸에 영광의 모래알을 반짝이며, 사십년 생에 처음으로 서핑을 해보기로했던 그 결정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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