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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Sep 26. 2022

함박 자스민 키우기

 나이가 들면서 식물을 키우는 데 관심이 는다. 무언가 나의 손길로 인해 생명을 이어나간다는 그 자체가 사람에게 정신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생태 교육을 하며 자꾸 늘어난 화분이 지금은 총 두 개로 정착되었다.

 하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  개운죽 같은 생명력이 질기디 질긴 아이를 제외하고는 선인장도 죽이기 일쑤일 정도로 나는 원예에 소질이 없다. 영어로도 식물을 기르는 데 소질이 있는 사람을 green thumb이라고 따로 부를 정도니, 식물을 잘 가꾸사람은 특별한 재능이 있음에 분명하다.


 지금 우리 집에함박 자스민과 테이블 야자가 함께 산다. 테이블 야자는 작년 겨울 방학식 날 원래 자기 집으로 가져가기로 한 개구쟁이 남학생이 아파서 조퇴하면서 대신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2월 개학 후 당사자에게

 "다시 줄까?"

 라고 물어봤지만 그새 처음에 정성껏 이름을 지어주던 애정을 잃었는지 괜찮다고 했다.

 함박 자스민은 올해 1인 1 식물 일환으로 학생수만큼 화분을 주문하면서 교사용으로 선택한 녀석이다. 처음 원에서 그 아이를 보았을 때, 푸른 잎사귀 사이로 눈송이처럼 하얗게 핀 꽃에 눈길이 저절로 갔다. 다른 선생님들은 컴퓨터 옆에서 전자파를 흡수할 고무나무를 많이 선택했지만, 나와 1반 선생님은 자태가 아름다운 함박 자스민으로 결정했다.

 계절에 상관없이 꽃이 피었다 지는 매력도 크지만 그 꽃의 향도 기가 막히다. 중국집에 가면 내어주는 자스민 차가 바로 이 함박 자스민 꽃을 말려서 우린 다. 차를 마실 때 코끝에 스치는 향긋한 내음이 만개한 꽃에서도 똑같이 난다. 꽃이 많이 피면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다.




 이번 여름, 많을 때는 다섯 개까지 있던 화분이 어찌하여 두 개로 줄었는가에 관해 생각해본다.

 우선 봄에 전 남자 친구가 우리 집에 입양 보내준 애플민트는 헤어지고 나서 금방 말라죽었고,

 주인을 찾지 못해 여름 방학 동안 잠시 맡은 두 화분이 있었다. 하나는 아펠란드라, 다른 하나는 수박 페페로니아였는데 우리 반 아이들 중 아무도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폭염에 빈 교실에 두고 죽일 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집에 데리고 왔는데 이미 그 모양이 많이 망가져 예쁘지 않았다. 그래도 데려와서 나름 영양제를 주고 며칠간 신경을 써봤지만 좀체 다시 싱싱해지지 않았다.

 이사를 앞두고 집 물건을 정리하던 차에 아파트 화단에 그 둘을 옮겨심기로 결심했다. 그즈음 우리 집에서 두 계절을 버틴 테이블 야자는 원래 화분이 작아질 정도로 잘 자라 분갈이를 해 준 뒤였다. 태어나 분갈이라는 걸 직접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 남자 친구가 화초를 밖에 옮겨 심는 건 사실상 죽이는 거나 다름없다고 뭐라 했지만 더 이상 내 능력으로 그 둘을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새로 이사  집은 심지어 북향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두 식물을 볕이 잘 들고 흙이 비옥한 화단 한쪽에 옮겨 심었다. 그 후 한 달쯤 지나 이사를 앞두고 다시 가 보았는데 다행히 잘 살아있었다. '사실상의 유기'라던 그의 말이 틀려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지금 화분 두 그루와 함께 사는 건 현재 기울일 수 있는 식물에 대한 관심이 딱 그 정도여서 일거다. 좁은 집에 더는 버겁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맞은편에 바로 보이는 북향 거실 앞에는 테이블 야자가,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 함박 자스민은 남쪽 작은방 창가에 두었다. 베트남에 가면서 5일간 베이크 아웃을 하며 집안에 둘을 그대로 두었는데, 끝이 좀 마르긴 했어도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집안의 유해물질을 위로 올리는 작업을 하면서 두 화분 생각을 못했다는 사실이 돌아오기 전날 밤 겨우 들었다. 이렇게 무심한 주인이라도 무던하게 살아주는 식물이기에, 우리는 함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생명을 키운다는 면에서, 늘 보고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떠올려본다.

 별로 이유 없이 누군가가 쉽게 좋아지는 무른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왁자지껄하게 많은 수의 사람을 상대하기란 퍽 지치는 일이다. 특별히 강하게 끌어당기지도, 그렇다고 심하게 밀치지도 않는 성격인 만큼 오래 알고 지낸 몇몇 사람과의 관계가 편하다. 우리 집에 딱 두 개의 화분이 함께 사는 것처럼 말이다. 보지 못한 새 꽃망울을 터뜨린 날이면 어김없이 향긋한 꽃냄새로 퇴근한 나를 반겨주는 함박 자스민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사실은 늘 곁에 있는 몇 안 되는 친구가 오늘따라 사무치게 고맙다.


 여름 방학 마지막 날 교실에 올라갔더니 내 자리 바로 옆에 두었던 담쟁이가 더위에 말라 죽어있었다. 웃기게도 방학 내내 시들시들한 못난이 둘을 데려가 키우고 옮겨심느라 바빠서 정작 평소에 내 옆을 지키던 멀쩡한 담쟁이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너무 미안했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나인 것을. 혹시 무심한 내가 상처준 일은 없는지 나의 오래된 친구에게도 질문을 건네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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