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희 Oct 07. 2022

예쁜 말만 하고 살아가고 싶은데

 가능하면 예쁜 말만 하고 싶다. 내 입에서 나가는 모든 단어가 아름다웠으면 한다. 

 전남편과 살며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지 못했다. 그가 추해지는 만큼, 같은 공간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내야 했던 나도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래서 애쓴다. 비록 타고나기를 다정하지 않은 사람일지언정,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도 따뜻하게 하자고. 소리 지르지 않고, 조곤조곤하게. 가끔 반 아이가 너무 말을 듣지 않아 혼내기라도 해야 할 때면 그마저도 괴롭다. 화내고 다그치는 일은 그 자체로 굉장한 두려움이다. 또 나를 잃을까 봐.


 어제 동학년 회의 때, 1학기 때부터 불안 불안했던 선생님께서 터졌다. 제대로. 회의를 진행할 수 없었다. 입에서 나오는 말에 욕설이 섞였고 소리는 평소 울화통 터지던 목소리에 비해 두 배로 커졌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인해 그분 주변 물건이 하나둘씩 날아다녔고, 하필 내 옆자리에 그중 하나가 떨어졌다. 떨어진 펜을 주우러 오는 그분의 발걸음에서 이전에 전남편 와 살던 때의 두려움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나는 학년부장이다, 라는 명제를 잊지 않으려고 끝까지 정신을 차렸다. 저 사람은 전남편이 아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다행히 회의 시작 즈음에 자신이 정신과에 다닌다고, 공황 장애와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갑작스러운 고백을 했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집이 아닌 회사에서, 그것도 다른 선생님들이 버젓이 앉아 있는 자리인데. 그런 공적인 데서 분노로 제정신이 아닌 누구를 인생에 있어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만 놀란 건 아니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어 먼저

 "이만 마치겠습니다."

 하고 기계적으로 그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거기 모인 다섯 선생님은 작게는 그날 해야 할 회의를 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다. 크게는 그와 더불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아침에 그 분과 마주쳤다. 반말에 욕설을 섞고 무지막지한 분노를 표출하던 그분의 얼굴에 '미안함'이나 '수치심'같은 표정은 전혀 없다.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놀랍긴 했다.

 "어, 안녕."

 다시 반말. 이게 끝이었다.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교무실에 내려가 교감선생님을 뵈었다. 다른 반 선생님 한 분과 함께. 하지만 윗선에 얘기해보았자 무엇이 달라질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나 있을 그 반 민원에 대해 최소한의 면피를 했다는 정도는 될 것이다. 학년부장으로서 현재 겪는 운영의 어려움을 알리는 역할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영주는 차근차근 내 상태를 짚어주었다. 나는 화난 상태이며,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지금은 시월이 아니던가. 12월이면 2학기도 끝이 난다. 게다가 교사의 특성상 그 선생님과 매일 얼굴 보며 일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그 반 아이들이 가장 불쌍하다. 나는 다음 주 동학년 연수만 잘 지나면, 그리고 몇 번의 동학년 회의만 지나가면, 별일 없이 학년을 마치고 그분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된다. 두 달만 지나면 될 일인데 굳이 내가 나서서 그분의 인생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내가 아니라도 그분은 어디서 누구와도 문제가 생길테니 말이다.


 - 주변에 이렇게 폭력적인 사람이 나를 따라다니는 건 아니겠지?


 교직 생활하며 이런 경우를 처음 봤다는 2반 선생님의 말에

 '나는 아닌데. 난 잘 알지, 이런 상황.'

 이라는 반응이 자동적으로 올라왔다. 그래서 아마도 이 제정신 아닌 선생님은 어제의 폭발 후 당분간 잠잠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 아니야. 그냥 사고야.


 나를 안심시키려는 영주에 말에 '알겠다'라고 메시지를 쓰지만, 

 어쩌면 귀신같이, 너무도 그런 일을 크게 무서워하는 나를

 마치 개가 자신을 무서워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달려들려고 하는 것처럼

 따라다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 학교에서의 그 학생도, 전남편도, 이 이상한 선생님도.


 나는 참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갈 것이다.

 내가 일그러지고 못나지는 걸 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매거진의 이전글 함박 자스민 키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