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마리네이드

by 이주희

여름 방학 때 교실에 놔둘 수 없어 바질 화분을 집으로 가져왔다. 해를 잘 받을 수 있게 위치를 조절하고,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생긴 작은 벌레들을 없애려고 물도 일부러 덜 주었다. 낮 동안 통풍이 되도록 베란다 창문도 열어두어 신경 써줬음에도 방학이 끝날 때쯤 큰 줄기 두 개는 색이 변하고 말았다.

식물을 키우는 건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어렵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분명 교실에 있었을 때는 싱싱하고 크게 자란 잎사귀를 덤벙덤벙 자주 따 먹었는데, 이번에는 자그마한 잎 몇 개만 겨우 뜯을 수 있었다.

바질잎을 보면 그 애와 사이가 소원해질 때쯤 서로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난다. 교실에서 딴 바질을 보고 그 애는 유기농이라며 웃었다. 답장이 한 참 뒤에 오던 그때, 무럭무럭 자란 바질 잎으로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를 자주 해 먹었지만 그 애와는 한 번도 함께 먹지 못했다.




1kg나 되는 방울토마토를 방학을 핑계로 데쳐서 껍질을 벗겼다. 방울토마토의 안도 밖과 똑같이 매끈할 거란 예상과 달리 딱딱한 껍질 안에는 잎맥인지 혈관인지 모를 흰 핏줄 모양이 타원형 몸체를 따라 온 데 퍼져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인정사정없이 방울토마토를 뜨거운 물에 데치고 껍질을 벗기고 있는 내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방울토마토의 겉옷을 그저 식감 때문에 억지로 제거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사회적 옷을 벗고 내 깊은 내면을 보여주는 일은 위험하면서 고귀한 일이다. 그러나 내 안의 내밀한 면을 보여주었다 헤어질 때 되려 그 부분에 대해 남보다 못한 소리를 들으면서도 견뎌야 했던 나는 어쩌면 그 방울토마토와 그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마리네이드를 만들다 보니 그 애가 선물해 준 고급 발사믹 식초가 약간 모자라듯이 끝이 났다. 다져 넣을 수 있는 바질도 얼마 없었다.

‘끝’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 핏빛 토마토 마리네이드는 그렇게 완성이 됐다. 방금 만들어 숙성도 안된 데친 토마토를 입에 넣어 아삭아삭 씹어먹으며, 이제는 정말로 그를 잊겠다는 다짐을 했다. 입안에서 달큰한 과즙이 터지자 만드는 과정이 잊혀질 만큼 황홀했다. 그래도 그에게, 이런 여름날의 맛이라도 남는 사람이었을까? 궁금해해 봐도 알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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