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만난 남자는 언젠가 연인의 머리를 감겨주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제왕절개 수술 후 1인실에서 며칠간 감지 못한 머리를 감겨주었던 전남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리는 곱슬이 무척 심하고 숱이 많다. 하지만 어렵게 시험관 시술로 쌍둥이를 임신했던 터라 출산 전 몇 개월 동안은 매직 파마를 할 수 없었다. 화학 약품이 두피를 타고 혹시나 아기에게 해로울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삼복더위의 수술실은 무척 추웠는데, 출산 후에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있자 온몸은 금방 땀범벅이 되었다. 그런 상태로 삼일을 지내니 출산 전 소양증이 심해지는 등 불편함이 많았지만 머리를 감지 못하는 것 또한 굉장히 힘들었다.
수술 후 며칠은 칼을 댄 부위가 너무 아파 제대로 몸을 가누고 서는 것도 힘들었다. 페인버스터라는 신식 물질의 도움도 받았지만 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다 써버렸다. 그런 나를 위해 수술 삼일 째가 되자 전남편은 나를 1인실 손님용 의자에 앉혀 머리를 감겨주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베드를 짚고 겨우 일어서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그가 만약 나고 내가 그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물론 체력이나 힘에서 그보다 부족한 나였지만, 당시 나 정도의 몸상태를 가진 환자의 머리를 감겨주겠다는 결심은 아무래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도 하지 못할 황송한 대접을 받으며 한 다짐이 있었다. 앞으로 그가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한 번은 눈을 감겠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 병실에서 손님용 의자에 기대어 그에게 받은 샴푸는 잊지 못할 만큼 고마운 일이었다. 사일만에 머리를 감을 때 좁은 욕실에 퍼지던 샴푸 향기, 머리를 감을 때의 개운함, 감은 뒤 드라이어를 통해 나오던 바람의 청량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후 우리가 겪었던 일련의 불행은 어쩌면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서로를 상처 입혔던 게 아닌가 싶다. 어제 금요일의 남자가 추천했던 영화 ’ 해피 투게더‘를 보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랑하기 때문에 깊이 상처받는 것이 가능한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는 게 두렵다. 사랑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다. 나의 곁을 내어 주고, 평소라면 누구에게도 해주지 못할 일을 온 힘을 짜내 해 주는 건 어떻게 보면 미래의 슬픔을 약속하는 것과 다름없다. ’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금요일에 그 남자 입에서 언젠가 미용실에서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는, 그리고 그러면서 물로 장난도 쳐 보고 싶다는 말을 들으며
그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기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내가 되기는 싫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