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공10노을집음악회1
2020년 10월 10일,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노을집 앞마당에도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바람에 흔들립니다.
2주 전 춘천에서 스페인식당 아워테이스트를 운영하는 성미주인장과 노을집 마당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가을 아침의 풍경에 감탄하다가 이 아름다운 가을을 붙잡아둘 이벤트를 해야 한다며 작당을 시작했어요.
노을집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고, 마당에서 바베큐를 먹는 코스모스 가을 음악회를 해보자는 거였죠. 마침, 춘천에 이주를 해온 부부 싱어송라이터 하이하바 종현과 새의전부 원혜가 노을집을 궁금해했다며 얘기를 해보겠다고 했구요. 이후, 모든 건 춘천의 가을 무드에 이끌려 모인 4 사람의 작당으로 이어졌고, 음향체크를 위해 기타를 들고 문득 노을집을 찾아온 하이 하바 종현과 새의 전부 원혜는 듀엣 밴드 cosmosnrose를 결성하고는 부를 노래가 마구 떠오른다면서 바로 음악회 레퍼토리 선곡에 들어갔어요.
음악회는 10월 10일 10명이 모여 10곡의 노래를 듣는 노을집음악회로 기획하고, 공연의 제목은 cosmosnrose가 제안한 [일공10노을집음악회1]로 정했어요. 코로나로 관객 공개모집은 무리다 싶어 가까운 지인들을 부르기로 했구요.
아워테이스트의 성미주인장은 cosmosnrose에 쉐이커 세션으로 영입되어 일주일간의 특훈에 들어갔고, 관객 6명을 위한 공연을 위해 cosmosnrose는 자작곡과 기성곡을 선곡하여 춘천에서 활동 중인 그래픽 작가 런런레이스의 ‘Open your Heart’ 엽서에 정성스런 리플릿을 만들었어요.
음악공간 공사로 바쁜 일정을 쪼개어 음악회를 준비하는 cosmosnrose와 혼자 운영하는 스페인식당 운영시간 이후에 쉐이커 연습에 열중하는 아워테이스트 성미주인장에 힘입어 저는 10인을 위한 바베큐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고민했어요.
노을이 지는 시간쯤 음악회가 끝나고 바로 10명이 마당에서 바베큐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계획이라, 고기가 제 때 익어야 하고, 제가 음악회를 구경하는 동안에도 육즙이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거든요.
10월 10일 [일공10노을집음악회1] 준비로 바쁜 하루가 시작됐어요.
아침 일찍 고기 좋기로 유명한 춘천육가공에 들러 목살을 넉넉히 주문하고, 덤으로 주시는 돼지껍데기도 야무지게 챙겨다가, 허브와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냉장고에 재워둡니다.
농협 로컬푸드마켓에서 미리 장 봐온 노지 대파도 잘 씻어두고, 파뿌리는 따로 깨끗이 씻어서 무와 멸치를 듬뿍 넣어 어묵탕 육수를 끓이구요. 마침 준비를 도우러 일찍 노을집에 도착한 아워테이스트 성미주인장과 함께 음식 준비와 마당 세팅을 시작했어요. 잠시 후 cosmosnrose의 종현&원혜도 도착하여 악기와 무대 세팅을 시작했구요.
무대 리허설을 위해 다시 세 사람이 함께 연습하는 동안, 혼자 준비하면서 2층에서 흘러나오는 라이브를 듣는 호사는 역시 공연 스태프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경험입니다.
공연 후 바베큐를 담당한 저는 밴드가 리허설을 하는 동안 웨버형그릴에 숯불을 피워 간접구이 방법으로 고기를 천천히 구워 초벌을 한 후 호일에 싸서 레스팅해뒀어요. 먹기 전에 숯불에 살짝만 더 익혀 먹을 계획이에요.
5시로 예정된 공연시간이 다가오니, 미리 초대된 관객들이 하나 둘 노을집 마당으로 들어옵니다. 한 명씩 발열체크를 하고, 공연 리플릿과 하이하바의 한정판 데모 CD를 한 개씩 나눠드렸어요.
제 그림 작업실이기도 한 노을집 2층 공간의 다락방 같은 느낌 속에 관객들이 하나 둘 의자에 앉아 서로 인사를 하며, cosmosnrose 밴드와 눈을 맞추며, 기대 반 호기심반 노을집 방구석 1열에 마주 앉았어요. 드디어, 첫곡 [도시에 나온 잠자리]의 연주가 시작되었어요. ‘새의전부’의 음원으로 이미 발표된 곡이라 애플뮤직에서 여러 번 들어봤던 곡이었어요.
그런데, cosmosnrose의 노래와 함께 노을집 2층 창밖으로 펼쳐진 가을 공기가 스며들어 마법을 부린 걸까요? 스르르 나도 모르게 눈을 감으니 노래의 가사가 화면처럼 펼쳐지고, 갈 곳 잃고 ‘프라이드 가지에 앉은’ 잠자리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어요.
어쩌면, 저도 언젠가 아니면 지금도 그 잠자리처럼 있어야 할 곳을 모르고 헤매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도시에 나온 잠자리가 노을집에 앉아 지금 이 노래를 듣고 있는 저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했어요.
cosmosnrose의 곡들은 노래가 아닌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어서, 노래가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바람이 살랑 불어오고 눈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요. 마치 숲 속을 걷고 있거나, 기차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거나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어요.
곡이 하나 둘 이어질수록 관객들도 창밖의 노을과 함께 노래 속에 빠져드는 게 느껴졌어요. 저 말고도 몇 명이 더 노래 속에 빠져 눈물을 흘렸으니까요.
[색깔]이라는 노래를 부를 땐, 리플릿에 미리 인쇄된 후렴구 악보를 보며 관객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서 노래를 불렀어요. ‘빨주노초파남보~ 우린 모두 무지개~’라는 짧은 후렴구인데도 누군가와 함께 노래를 해 본 경험이 너무 오래되어서인지 많이 떨리고 틀릴까 봐 긴장되더라구요. 작게 목소리를 보태다가 cosmosnrose 종현이 ‘더 크게~’라고 주문하자 마치 라디오 볼륨이 올라가듯 모두 한 목소리로 소리를 높입니다. 덕분에 웃으며 긴장을 푸니, 서로 처음 만난 사이에도 한결 편안해졌어요.
아워테이스트 성미주인장이 쉐이커를 들고 등판한 [마음을 연다는건 무얼까?]는 이번 노을집음악회의 부제 ‘Open your heart’의 모티브가 된 하이하바의 타이틀곡이에요. 쉐이커와 코러스 덕분에 한 층 흥겨워진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마음을 열고’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더라구요.
10곡의 공연 레퍼토리가 끝나니 공연의 여운과 아쉬움이 가시질 않아요. 조심스럽게 앵콜송을 부탁하니 하이하바종현이 새의전부원혜를 위해 만들었다는 전설이 깃든 너무 아름다운 노래 [내사랑]이 연주됩니다.
마당에서 부를 곡도 5곡을 따로 준비했다고 하니 더 이상의 앵콜 요청은 하지 않고, 노래하느라 너무 배고팠을 cosmosnrose와 관객들을 위한 바베큐 식사를 준비하러 서둘러 마당으로 내려왔어요.
아까 레스팅해둔 고기를 꺼내 숯불 위에 얹고, 대파, 파인애플을 함께 굽는 동안, 웰컴 와인으로 준비한 라미디아 시암반을 모두와 나눠 마셨어요. 라미디아 시암반은 춘천 유일의 내추럴 와인 제공 식당이기도 한 아워테이스트에서 공수한 스파클링 와인이에요.
공연에 몰입하느라 잊고 있던 식욕이 웰컴 와인과 함께 폭발했는지, 관객들이 바베큐향을 맡으며 빨리 먹자고 재촉하기 시작하네요. 다행히 천천히 충분히 익혀두었던 고기가 맛있게 익었어요. 함께 구운 대파와 파인애플도 숯불향에 더욱 맛있어져서 고기와 곁들여 먹기에 딱 좋구요.
춘천 시내보다 한 2-3도는 춥게 느껴지는 노을집이라, 미리 육수를 만들어 둔 어묵탕도 몸을 따뜻하게 하는데 한 몫했구요. 더 쌀쌀해지기 전에 마당 한켠 화로대에 장작불을 피웠어요.
관객들이 준비해온 와인을 나눠 마시며, 쫄깃한 돼지껍데기 구이까지 먹고 나니 이제 슬슬 다시 마당 싱어롱 타임입니다.
어둠이 내린 노을집 마당의 하늘엔 별도 하나 둘 보입니다. 하얀 코스모스가 마당 조명에 더 하얗게 빛나며 흔들리고, 귀뚜라미와 풀벌레의 코러스가 시작됩니다. 기타 연주와 노랫소리, 풀벌레 코러스, 코스모스와 하늘의 별…그리고, 마당 모닥불 옆에 둘러앉아 서로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오늘의 관객들. 무엇하나 어울리지 않는 게 없습니다.
막 춘천에서 차 전문 카페 ClaDawn을 오픈한 클라던 진아주인장이 직접 만든 드립티백을 선물로 들고 늦은 시간 바베큐 마당에 합류했어요. 오늘 모인 10명은 대부분 춘천에 연고가 없이 춘천을 삶터로 삼기로 결심하고 이사 온 분들이예요. 물론, 서울에서 일부러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 준 제 오랜 친구들도 있지만요. 노래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춘천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어졌어요. 청년들의 시작하는 삶과 중년을 시작하는 삶의 이야기도 함께 였구요.
그렇게 모닥불이 사그라들 때까지 이야기는 계속되었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과 취향을 얘기하다가, 또 우연히 가을을 함께 담을 이벤트를 기획하고 결국 [일공10노을집음악회1]을 소소하게 진행하면서, 사실 이런 가슴 충만한 여운을 남기는 공연과 모임이 될 것이라는 걸 미리 알지는 못했어요. 그저 막연히 ‘참 좋을 거 같다’로 시작한 일이 ‘참 좋았다’로 끝나고 나니 공연 뒷정리를 하면서도 힘든 걸 못 느꼈어요.
모두가 떠난 후, 그저 노래를 흥얼거리며, 꺼냈던 의자를 하나씩 접어 넣고, 와인잔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 다시 그릇장안에 집어넣고, 바베큐 그릴을 청소하고, 남은 쓰레기를 분리하면서 그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즐기기만 했어요.
음악회가 모두 끝나고 난 후, 노을집 2층의 풍경과, 마당의 코스모스에게,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늘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위로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보냈답니다.
[일공10노을집음악회1]라이브는 아워테이스트 인스타그램 @_ourtaste_ 계정에서 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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