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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방울 Oct 16. 2020

번개홈카페를 여는 이유

가을 아침, 남의 집 마당에서 앉아 핸드드립커피를 마시는 방법...

춘천에는 흔히 말하는 힙한 카페가 많다.

춘천시내를 내려다보는 뷰를 자랑하는 각종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 맛있는 빵으로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 넓은 마당에 꽃을 한가득 심어놔 계절별 사진 명소로 이름을 날리는 카페, 소양강을 바라보며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강변 카페, 춘천의 골목 감성을 가득 담은 독립 카페 등등.

주중에는 물론, 주말에도 줄 서서 주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건 춘천의 흔한 풍경이다.

춘천 구봉산의 한 카페 뷰

그런데, 정작 서울이나 대도시처럼 아침 7시부터 문을 여는 카페가 없다. 주로 관광객을 손님으로 하다 보니 아침 일찍 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춘천 시내의 프랜차이즈 카페 중 근처 직장인을 위해 아침 8시에 여는 곳도 있지만, 춘천 감성을 담은 카페에서 차가운 가을 아침, 그것도 주말에, 갓 내린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다.


주말 아침의 모닝커피야 집에서 마셔도 꿀맛이지만, 그래도 이 좋은 가을날 주말 아침 일찍,  코끝 쨍한 산 공기, 강 공기 마시며 야외에서 즐기는 따뜻한 핸드드립커피를 마셔보는 경험도 한번쯤 '우워어얼후오아수우모옥금'의 노동 생활을 한 나에게 조금이라도 긴 주말을 시작하게 하는 선물이 되지 않을까.




지난 9월 어느 토요일, 인친이기도 한 춘천의 스페인식당 아워테이스트 성미주인장의 인스타에 올라온 ‘주말 아침 일찍 누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 포스팅을 보고는 나의 인스타 계정에 ‘일요일 노을집 번개홈카페 오픈’ 공지를 올렸다.


짧은 가을의 알싸한 아침 공기를 감싸는 커피 향이 주는 위로가 얼마나 달콤한 일인지 알고 있으니 바로 실행에 옮겨 버린 것이다.


정작 아침형 인간인 나조차도  가을 아침, 노을집 마당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려볼 생각을 못했던 차라, 몇 안 되는 나의 인스타 팔로워 중 누군가 번개 공지를 보고,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굳이 7시에 노을집에 커피를 마시러 와 함께 차를 마시는 우연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신나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 전에 번개 오픈을 공지한 일요 번개카페 첫 번째에는, 이 기획의 아이디어를 본의 아니게 제공한 성미주인장과,  춘천으로 주말여행을 온 인친이 방문했다. 노을집 마당에 해가 들어 뜨거워지기 전,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딱 2시간 동안만 여는, 메뉴도 핸드드립커피와 주인장이 먹으려고 사둔 호밀빵이 전부 인, 이기적 주인장 시점 번개카페에, 일요일 아침, 늦잠을 거부하고 노을집을 찾아와 준 인친들이 고맙고 반갑다. 


번개카페 손님들은 직접 구운 티그레나, 혼자 편히 마시라며 디카페인 드립 커피를 선물해준다.


일주일 후 두 번째 일요일 아침 번개 카페에는 춘천러닝크루 2명, 춘천에 사는 친한 동생, 그리고, ‘남의집프로젝트’ 덕분에 알게 된 춘천 이웃 지인 분이 찾아주셨다. 물론, 번개카페 입장료는 언제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일부러 노을집을 찾아준 정성과 반가움이 대신한다. 


가끔 직접 만든 메밀갈레뜨를 커피와 함께 대접하기도 한다.


주말이면 꼼작하기 싫어 소파에 찰싹 붙어 TV만 보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보내도 괜찮은 거라 여기며 지낸 하루하루가, 이 2020년의 가을날이, 문득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해보지 않으면, 다음에도 해보지 않게 될 그런 것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춘천의 10월은 아침저녁으로 손이 시릴 만큼 쌀쌀하다. 그야말로 가을이 성큼 가버리려고 한다. 노을집 주변에 크게 자란 코스모스와 들꽃들도 이제 막 지려고 준비 중이다. 길가에 자란 밤나무에서는 밤송이가 툭툭 떨어진다. 점차 아침해도 늦게 뜨기 시작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을을 그냥 보내기엔 아쉬운 10월이다.


10월 가을 끝자락에, 번개아침카페를 한번 더 열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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