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 적과 싸우던 나,

그리고 나와 화해하기까지

by 안전모드

한동안 나는 늘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상황과 싸웠고, 오해와 싸웠고, 억울함과 싸웠다.
때로는 사람과, 때로는 환경과, 때로는 운명과 싸웠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꽤 단단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물러서지 않았고, 쉽게 고개 숙이지 않았다.
어려움이 오면 정면으로 부딪혔다.
적어도 겉으로는 강해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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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밤이 되면 마음은 늘 고단했다.
이겨도 개운하지 않았고,
설령 맞섰다고 해도 속은 비어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싸우고 있던 진짜 상대가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어느 순간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외부의 적과 싸우는 일은 어쩌면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걸.
누군가를 원망하면 마음이 잠시 편해진다.
환경을 탓하면 책임이 가벼워진다.

“상황이 안 좋았어.”
“저 사람이 문제였어.”

그 말들은 나를 잠시 보호해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멈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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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어려운 건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왜 그 말에 그렇게 예민했는지,
왜 그 실패가 그렇게 두려웠는지,
왜 인정받지 못하면 견딜 수 없었는지.

그 질문들은 불편했고,
때로는 아팠다.

나는 오랫동안 ‘강해 보이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해결하는 사람.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며
나는 다른 장면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무너지지 않는 모습보다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완벽한 답보다
고민하는 과정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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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알았다.
성숙함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도망치지 않는 것이라는 걸.

자기 자신과 화해한다는 건
약해지는 일이 아니었다.

실수를 인정하고,
지나간 선택을 용서하고,
남과 비교하던 시선을 거두어
내 속도를 받아들이는 일.

그건 오히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이제
실패를 환경 탓으로 돌리기보다
그 안에서 배울 것을 찾으려 한다.

화가 나면
‘왜 화가 났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불안하면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묻는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예전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이지는 않는다.

요즘 나는 예전만큼 날이 서 있지 않다.
누군가와 꼭 이겨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 대신
하루를 잘 살아내는 데 집중한다.

아이들에게 완벽한 아버지가 되기보다 솔직한 사람이 되려 한다.
실수를 감추기보다 함께 배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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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적과 싸우는 사람은 강해 보인다.

박수도 받기 쉽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 화해한 사람은
조용하다.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진짜 강함은
누군가를 이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받아들이는 데 있다는 걸.

오늘 하루,
세상과 싸우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괜찮다. 우리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성숙해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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