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이상하게도 퇴근 후 오후 8시가 넘어가면 졸음이 몰려옵니다. 마치 감겨있어야만 하는 눈에 억지로 힘을 주며 뜨고 있는 기분이 들정도입니다. 이렇게 졸음이 몰려오는 상태여도 공부를 하기 위해 카페에 가야 했습니다. 날씨가 너무 덥지만 기분이 나쁜 더움은 아닙니다. 면 티 한 장과 검은색 추리닝만 입어도 선선한 기분이 들어 한 시간을 카페 근처에서 걷기만 할 때도 많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무거운 가방과 함께 카페에 들어가면 근처를 걸으며 충분히 즐겼던 시간들이 남긴 행복한 감정들이 한 번에 날아갈 정도로 현실의 무거움이 느껴집니다.
커피를 주문하고 카페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이어리를 펼치는 것입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한 주 동안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곤 하였습니다.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상황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읽고 실천하기 시작한 저만의 생활 패턴입니다.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난 뒤 퇴근 후 나열되어 있는 할 일을 보며 지금 나의 상황을 파악하는 행동을 대학교 1학년부터 하다 보니 지금은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다이어리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생각 없는 뇌에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느새 다이어리의 1/2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대체 지금까지 나는 무슨 성과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한 자리에 박혀있는 회전목마처럼 똑같은 회사생활과 똑같은 하루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해야 만한다는 압박감에 꾸역꾸역 해야 할 목록들을 펜에 힘을 주며 지워나갈 뿐 막상 제 스스로를 증명할 성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지금 하는 일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였고 아무 의미가 없다는 한심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카페에 들어오기 전처럼 좋은 바람과 함께 에어팟 배터리가 다 떨어질 때까지 생각 없이 걷고 싶었습니다. “아무 성과도 못 이루는 일을 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거지?”라는 자기 방어적이고 편협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커피가 나오자마자 다이어리를 가방에 던져 넣고 급하게 카페를 나갔습니다.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담긴 작은 플라스틱컵에는 컵홀더가 감싸져 있었지만 오래 들고 있으니 손이 시렸습니다. 하지만 금세 적응되어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항상 공부하는 카페 근처는 저녁 7시만 되어도 가로등 없이도 술집 간판들로 인해 길이 밝았습니다. 조급한 생각 없이 평소보다 3배는 느린 걸음으로 정처 없이 걷다 강아지를 보기도 하고 행복한 얼굴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과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은 길게 이어져 4일간 지속되었고 다행히도 괜찮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지금은 최대한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며 글을 완성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력서를 처음 작성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수상경력과 수행한 프로젝트를 길게 나열하여 하얀 바탕의 이력서가 촘촘하게 제가 이뤄낸 결과들로 검게 채워질 때면 마치 제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이력서를 작성하고 제 이력서를 교수님께 보여드렸습니다.
“과정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마치 책의 목차 같아요. 이 이력서를 보면 어떤 걸 질문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게 두각 되는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는지를 작성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는 인상을 구기시면서 저에게 말씀하셨고 저는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상은 제 경험의 증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상을 하지 못한다면, 그 과정에 있었던 일들의 진실성이 보장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진실하고 노력했다면 만약 그랬다면 결국 수상이라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오만하고 짧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와 성과를 모두 적어놓는 것이 목적이었고 결국 전 초라한 이력서를 작성하고 말았습니다. 단순하게 수상 경험을 적어놓은 표의 행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결과가 있다면 좋을 수 있지만 결과가 없다고 내가 했던 과정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저는 배금주의적인, 결과론적인 사상에 찌들어 사람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지위와 위치 그리고 재산과 같은 하찮은 것들로 그들을 판단했고 그런 나이기에 더욱더 결과에 집착한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알기에는 그 사람이 경험한 모든 것들을 다 아는 것이 당장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결과를 아는 것보다는 훨씬 이상적이고 정당할 것입니다.
사회 탓을 하고 싶지 않지만 제가 왜 이런 사상을 가지고 살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겪은 줄 세우기와 미디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1등을 찬양하는 모습을 제가 너무 단편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한 과정이 중요한 것이고, 그 자리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과정 또한 그들만큼이나 숭고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신의 부모를 그저 밥 퍼먹는 도구인 수저로 표현하고 이 수저들을 금, 은, 동, 흙과 같이 등급을 나누는 이 해괴한 현상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산업혁명과 함께 대량 생산 체제가 확립되면서 효율적인 생산 관리가 중요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성과를 측정하고 보상하는 성과주의 인사 시스템이 등장했습니다. 내가 남보다 뛰어나야 살아남았던 역사를 거쳐온 인류의 DNA에 경쟁심리가 직접적으로 박혀있는 이상 우리의 본능은 항상 우리를 결과에 집착하게 만들지만 결국 우리는 이러한 본능을 이겨낼 수 있는 이성이 있기에 인간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단어로 불린다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없더라고 스스로가 경험한 과정을 더 적는 습관을 가지기로 결심하였고 그 뒤로 그런 과정의 글들을 힘들 때 꺼내보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내 행동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은 지울 수 있었습니다.
성과가 없다는 생각에 침울할 때 문득 “정말 성과가 없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성과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성과는 "일이 이루어진 결과. 순화어는 `보람'."이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과는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성과는 남들이 감탄할만한 어떤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저에게 성과는 수상, 취업, 장학금과 같이 단어만 들어도 멋있어 보이는 일들이었고 이는 완전히 잘못된 정의였습니다.
결과가 성과입니다. 이 말을 풀어보자면 어떤 결과든 그것은 곧 성과입니다. 이 결과를 성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보람을 찾으면 어떤 결과든 성과가 될 수 있습니다. 성공도, 실패도 그리고 끝맺지 못한 무언가여도 이는 결국 행동에 대한 결과이고 이것이 바로 온전한 성과입니다. 그러니 논리식을 적용해 보자면 행동을 한 순간 우리는 무조건 성과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성과를 통해 좌절하면서 스스로의 에너지를 갉아먹을지 아니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새로운 것을 배울지는 온전히 우리의 생각에 달려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결국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그 결과를 만났을 때의 나의 태도, 나의 생각이 노력의 결과를 무의미로 만들 수도 있고 성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수 없이도 많이 받은 불합격 통보 메일을 보면서 그들의 형식적인 위로를 보면서 그냥 그들의 형식적인 위로를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방향이 맞지 않다는 말, 회사에 한정적인 자리로 인해 모실 수 없다는 말을 그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하나의 제 성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스스로에게 스스로가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로 25년이라는 시간을 남들의 시선을 기준으로 월등한 사람이 되기 위해 시달렸던 시간을 생각하니 그 시간이 정말 아까웠지만 후회라는 감정은 없었습니다. 이 또한 제 행동에 대한 성과이니 이제 이 성과에서 무엇을 배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는 온전히 저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시기 가족들과 밥을 먹으면서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가족들은 저를 스스로에게 너무 박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객관적으로 작년보다 얼마나 더 발전했는지를 생각했을 때, 어떤 성과를 냈는지를 생각했을 때 저는 이미 생각보다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고 하였습니다.
작년의 몸무게 일기를 봤습니다. 78kg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의 몸무게는 66kg입니다. 3년 전의 몸무게는 85kg이었습니다. 매일 꾸준하게 몸무게를 기록한 과거의 나에게 감사했습니다. 조금씩 줄어드는 몸무게 그래프를 두 눈으로 확인해 보니 그래도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입사할 때 5년에 1억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한 달에 170만 원씩 꾸준하게 저축하고 있습니다. 적금이 아닌 미국 주식에 투자하다 보니 지금은 생각보다 큰돈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1년 전보다 저의 재산이 늘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스스로에게 매우 박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이렇게 보니 학대 수준의 생각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러 의미로 해석되지만, 이럴 때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에게 위로와 동기부여를 적절하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본인에게는 너무 고지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에는 이미 나에게 무겁고 힘든 기준을 제시하는 존재들이 충분히 많습니다.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무조건 적인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최근 표현력을 높이려 노력하다 보니 그 시간의 감정과 현상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글을 더 많이 작성하고 있
습니다.
모든 결과를 성과로 생각하고 이를 통해 배울 점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물질적인 성과를 요구할 때 스스로에게만큼은 존재 자체의 성과로 만족하는 삶을 지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고통스러운 삶만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실과 성과만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스스로에게 관대한 존재가 되어줍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타인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