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스타계정을 비활성 계정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한 시간씩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잠이 오길 기다립니다. 신기하게도 숏폼은 정말 중독적입니다. 제 주변에 숏폼 드라마를 기획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께서 숏폼이 중독적인 이유는 뇌가 생각도 선택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숏폼을 보다 한국 대졸 초봉의 중윗값이 3200만 원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저는 이때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이 안도감은 정상적인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중위소득을 넘는다는 이유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그래도 내가 조금 더 버는구나”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안도감이었습니다. 건강한 생각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싶었습니다.
숏폼이 '안도감'만을 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네모난 영상과 사진 속 비싼 차와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성들을 보면 허탈함과 열등감이 몰려옵니다. "왜 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은 연쇄적으로 제 심정에 좋지 않은 감정을 일으키며 잠을 방해합니다.
비교를 할 때면 정말 괴롭습니다. 건강한 자아실현에 있어서 좋은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글은 비교를 하지 않고 만족감을 얻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고 관련된 경험을 적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자취가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에 입학할 때 부모님께 조르고 졸랐습니다. 어머니가 학점 4.0을 넘는다면 자취를 시켜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조금 열심히 했습니다. 뭔가 자취를 한다면 온 세상을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첫 학기 성적은 4.17이었고 당시 전체 1학년학생 중 4등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때 들었던 생각은 “대체 내 위에 3명은 누구지?”이었습니다. 지금 보니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때 전공과 관련된 과목을 공부했기에 다른 수업에만 집중하면 될 것 같았고 “잘하면 1등 할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결과를 받아보니 뿌듯함보다는 실망이라는 감정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그 뒤에는 더욱 성적에 집착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 연도 1등을 기록했을 때, 짧은 성취감 다음에는 불안감이 다가왔습니다. 이 1등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1등을 해도, 1등을 하지 못 해도 부정적인 감정이 다가오는 이 현상이 정말 괴로웠습니다.
구직을 할 때는 비교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 자체가 내가 다른 사람보다 회사와 어울리는 사람이어야 성공하는 구조입니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합격 여부를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기업들은 항상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라고 하지만 제가 본 대부분의 구직자들은 지원하고자 하는 작년 기업의 합격 스펙과 자소서를 찾고 자신을 그에 맞는 사람으로 재탄생시킵니다. 그리고 자신의 합격률을 가늠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비교를 합니다. 학벌, 학점, 자격증, 오픽, 해외경험과 같은 스펙들을 나열하고 자신이 해당하는 항목을 정리합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점보다는 부족한 점에만 집중을 하고 어떻게 하면 보완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소식이 아닌 '지원자의 역량이 결코 부족하단 것은 아니며', '회사의 사정상 한정적인 인원을 뽑을 수밖에 없어', '좋은 역량을 보여주심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형식적인 위로화 함께 들려오는 불합격 소식을 받을 때면 자연스럽게 합격자들과 비교를 하게 되고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열정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감정을 채우게 됩니다.
제가 속한 팀의 팀원분들은 학벌이 정말 높으십니다. 인원은 저를 포함한 3명이고 그중 두 분은 대한민국 공대 중에서 제일 좋은 세 개의 대학인 서울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중 한 곳에서 공부하셨습니다. 인간은 항상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경외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저는 경외만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자괴감도 동시에 가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 작업속도가 비교적 느리거나 가끔 신입이 할 법한 실수를 할 때면 회사의 역사에서 나만 그런 실수를 하는 줄 알고 이를 과대해석하게 됩니다. 팀원분들은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 같았고, 조금 더 일을 잘했을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나의 전문성이 낮게 평가받거나, 회사에서 잘리는 상상까지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물론 1년 동안 재직해 보니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상상이었습니다.
2021년도부터 약 1년 동안 의료용 스테로이드 약물 투여치료를 받았습니다. 안구 염증을 치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해당 약물의 부작용은 체중 증가였고 당시 70kg 정도였던 저는 85kg까지 체중이 불어났습니다. 식욕이 매우 비정상적으로 증가하였고 이를 절제하지 못하였습니다.
외모를 떠나 건강에서 문제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체중감량을 목표로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67kg까지 감량하였지만,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체중감량만이 목적이 아닌 근육량 증가를 목적으로 운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운동에 소질이 없고 직장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 제 생활패턴에 맞게 조금씩 운동량을 늘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끔 인터넷을 보면 3개월 만에 정말 멋진 몸을 만든 분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글들을 볼 때면 제가 하는 운동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좋지 않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단순하게 기간만 생각하여 스스로의 동기를 빼앗았으니 말입니다. 초보자의 시작을 고수들의 결과와 비교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행동도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삶에서 크고 작은 비교를 많이 했던 저는 대체 왜 나는 비교하는 것인지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내가 느낀 것만으로 정의를 하면 이는 학술적으로 찾아낸 사실이 아닌 개인이 생각한 가정이기 때문에 조금 더 의미 있는 원인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해당 이론은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1954년에 제안한 이론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의견을 평가할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비교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바로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입니다.
상향 비교(Upward Comparison)
자신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비교합니다. 동기부여가 되거나 열등감을 느낍니다. 저 같은 경우는 조금 더 나아가 절망감과 자괴감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박진영 심리학자는 일반적인 상향비교는 우울과 불안을 불러온다고 합니다. 충분히 잘하고 있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주변에서 나보다 더 뛰어나고 행복한 것 같은 사람을 보고 이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방금 전까지 멀쩡해 보이던 삶도 초라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이 바로 대표적인 상향 비교가 불러오는 부정적인 효과입니다.
하향 비교(Downward Comparison)
자신보다 비교적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자존감이 올라가거나 안도감을 느낍니다. 제가 비교를 하기 싫었던 이유가 바로 이 하향 비교에서 오는 만족감과 안도감 때문이었습니다.
하향비교 역시 장기적으로 좋은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한민 심리학 작가가 작성한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하향비교란 암에 걸린 사람 앞에서 내가 건강하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거나 취업에 실패한 사람을 보면서 '너도 나처럼 실패자구나'라고 안심하는 식이니, 이런 종류의 긍정적 정서를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주변 정보들을 수집해서 우리의 사회적 위치와 이에 대한 잠재적 위협 요소들에 대한 알림을 낸다고 합니다. 우리는 비교로부터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어쩌면, 경쟁사회에서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우리 뇌는 잠재적인 위협으로 의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꾸 타인과 비교하게 되고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생각한 이 글의 주제는 '비교하지 않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료를 찾아볼수록 비교는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손톱을 깎는 것이 귀찮다고 손톱을 전부 뽑을 수는 없듯이 우리는 비교를 인생에서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 비교와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비교는 결국 생존입니다. 이는 우리 뇌가 가지고 있는 본능입니다. 만약 인류에게 비교라는 인지체계가 없었더라면 멸종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비교를 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은 결국 우리의 삶에서 비교는 때어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괴감, 허무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학자들은 비교의 존재 이유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동기부여하기 위함에 있다고 말합니다. 평균이 20일 때 내가 50이라면 나는 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평균이 90인데 내가 50이라면 조금 더 분발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얻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비교로부터 시작된 생각의 끝은 딱 여기까지 여야만 합니다. 과도하게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이는 비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동기부여를 얻거나 만족감을 얻게 된다면 의식적으로 생각을 멈추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박진영 심리학 박사는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의식적 사고능력’이 존재하는 이유 역시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생각이나 감정 등을 어느 정도 ‘목적’에 맞게 통제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된다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저희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재학 중이었던 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성적을 기준으로 심화, 우등, 일반반으로 나누어 과목이나 방과 후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저는 우등반에 소속되었고 제가 우등반 소속이라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 생각보다 많은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아버님의 직업상 저는 아버님을 일주일에 두 번밖에 보지 못했는데, 아버님댁에 가도 깊은 산속에 집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산책밖에 없었습니다. 아버님의 집은 작은 단독 주택으로 집 앞의 잡초들 사이에 나있는 흙길을 100M 정도 걸어가면 시골에서나 볼법한 2차선 도로가 나옵니다. 그 도로의 옆에는 사람이 걸을 수 있을만한 2M 남짓 폭의 작은 보도블록들로 포장되어 있는 길이 있습니다. 저는 항상 저녁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신다는 아버지와 같이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 산책길에서 아버지는 저에게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지에 대해 여쭤보셨고 저는 제 위에 심화반이 있다는 것은 결국 나는 심화반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뜻하고 이 사실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버님은 제말을 들으시고는 성적이 사람의 우등과 열등을 가리지는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저는 그 말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학창 시절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셨고 거기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신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의 말씀이 와닿지 않은 이유는 결국 아버님도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우수한 성적을 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4월이어도 강원도의 산속은 생각보다 기온이 많이 낮습니다. 아버님댁에서 약 3KM를 걸으면 군인 장병들과 지역주민들을 위해 준비된 작은 회색 컨테이너로 되어있는 카페와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그 카페는 쌀쌀한 날씨를 피하라고 24시간 동안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카페에는 도로를 볼 수 있게 1M보다 조금 높은 테이블과 높이가 높은 의자 5개가 있었고 그 뒤에는 초록색 자판기 두대가 항상 밝은 빛을 내며 있었습니다. 빛은 너무 밝아서 컨테이너의 조명을 켜지 않아도 실내가 환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공감하지 못했던 저는 약 20분 동안 아무 말 없이 그저 걷기만 하였습니다. 그 카페에 도착하니 아버님은 다시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빌게이츠도 어떠한 분야에서는 남들보다 못하는 점이 분명히 있을 텐데 너의 논리라면 이 세상에 만족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다. 지금 사회가 사람들을 줄 세워서 평가하는 사회인 것도 맞고 결국 우리는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야 하니 비교로 스트레스를 받는 건 불가피하지만 굳이 자기 자신을 갉아먹을 필요까지는 없다. 진짜 건강한 만족감을 느끼려면 딱 한 달 전에 자기 자신과 비교해 봐라. 그때보다 발전했다면 그 사실 자체로도 건강한 만족감을 느끼면서 살 수 있다. 굳이 네가 스스로에게 사회의 잣대를 똑같이 들이댈 필요는 없다. 그렇게 살면 진짜 팍팍해서 어떻게 사냐…”
그때는 이 말씀을 오해해서 “아 그냥 나 스스로 만족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신나게 놀다가 엄청난 좌절감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대학교에서는 과거의 자신과 비교하는 삶을 실천하려 노력하였고 생각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큰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최근 비교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이런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해결책이 있을 것 같지만 아마 개개인마다 서로 다른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든 과하면 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비교’가 이 말과 딱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든 긍정적인 면만 얻는다면 딱 거기까지 멈추는 자제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신이 인간에게 이성과 사고력을 준 것은 이러한 자제력을 위해 주었다는 것을 이번 글을 쓰며 새롭게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