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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금 Oct 12. 2023

미식의 나라와 시골 파인다이닝

이토록 감각적인 프랑스 요리 예술


  맛있는 음식은 극강의 행복을 이끌어낸다.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가 떠오른다. 눈이 번쩍 뜨이며 띠용?! 어떻게 이런 맛이! 기막힌 맛에 찬탄하며 먹을수록 포만감이 느껴지는 것에 한탄이 절로 나온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음식을 먹다 감탄한 적이 있다. 그 장소는 프랑스 파리의  지금은 없어진 L'Alchimie 레스토랑. 에어비앤비 호스트 아주머니에게 추천받아 기대 없이 간 작은 로컬 식당이었다.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2001)>에 나오는 것 같은 빨간 커튼과 나무로 된 가구들. 완전한 가을 저녁의 파리 레스토랑이었다.


  본식으로 나온 양고기를 먹다 애니메이션 요리왕 비룡에 나오는 장면처럼 美味(미미, 아름다운 맛)를 처음으로 느끼고 깜짝 놀랐다. 그때 프랑스 요리가 맛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한 입 먹고 美味를 외쳤던 그 요리 - 양고기 & 꾸스꾸스 @2016






  10년 전, 영국에서 언어문화연수차 2달간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맛있다고 느꼈던 음식은 알고 보니 이탈리아 요리, 알고 보니 인도 요리, 알고 보니 프랑스 요리였다. 영국 음식은 볼품없었고 과자마저 맛 대가리가 없었다.


  언제 한 번은 아침으로 전날 저녁에 먹다 냉장고에 보관한 찬 음식을 먹게 되었다. 먹기엔 너무 차가워 전자레인지에 돌리려 하니 절대 안된다며 그냥 먹으라고 했다. 그게 바로 영국식 식사라고. 왜.. 음식을 차갑게 먹는지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한 평생 음식은 따뜻할 때 먹어야 된다고 살아온 한국인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영국식 식사"가 뭔지 참.


『프랑스 요리 예술 마스터하기』, 줄리아 차일드


  그런데 바로 옆 나라인 프랑스 요리는 이렇게 맛있을 수가! 게다가 아름답기도 하다. 가히 요리 예술이라 칭할만하다. 1950년대 프랑스 요리로 미국을 휘어잡은 요리연구가 줄리아 차일드(Julia Child. 1912-2004)는 자신의 프랑스 요리책 이름을 『프랑스 요리 예술 마스터하기(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다.


  프랑스 음식을 한 번 접해보면 줄리아가 프랑스 요리를 왜 요리 예술이라 했는지 납득이 간다. 먹어보면 예술의 경지에 올라있다고 단언할만하다. 입에 넣는 순간, “예술적인 맛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맛의 향연이 흘러나온다.

 





  VICHY에 머물며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어서 간장계란밥을 제일 많이 해먹었다. 딱히 할 수 있는 요리가 없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시골의 파인 다이닝(Fine dinning, 고급 식당)을 즐길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원래 처음 먹어본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하지만 나는 진짜로 처음 먹었던 게 제일 맛있었다. 엄숙한 의미의 파인 다이닝이라고 칭하기엔 민망하지만 프랑스 요리 예술을 이끌어낸 식당 La Truffade를 작은 마을 VICHY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이제 막 짐을 푼 지 어언 한 달, 여전히 동네가 어색하고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 주변 1km 이내만 대충 돌아다녀본 상태였다. 프랑스 요리 예술을 접하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시내 중심부의 괜찮아 보이는 식당으로 무작정 들어섰다. 친절하지만 약간은 어색했던 진한 초콜릿색 피부색을 가진, 어려 보이는 웨이트리스가 맞아주었다.


VICHY의 레스토랑 La Truffade 외관과 내부

 

 꼬불꼬불 풍성한 머리를 올려 묶은 그녀는 호리호리한 몸짓으로 나를 테이블로 안내해주었다. 깔끔하고 채광이 좋은 식당, 식탁보 없는 차가운 테이블, 약간 삐걱 소리 나는 나무 바닥, 선명한 빨간색의 냅킨, 요리 이름이 아닌 재료들의 조합으로 쓰여 있는 메뉴판. 이 모든 게 인상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프랑스 VICHY의 식당, La Truffade의 첫인상이었다.








  자.. 언제나 메뉴 고르기는 신중해야 한다. 나는 나름 미식가이고, 음식은 위를 채워 넣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론이 설파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entrée – plat principal - dessert(전식-본식-후식)로 이루어져 있는 formule(세트 메뉴, 정식 코스)를 주문했고, 일행은 이에 Fromage(치즈)를 추가했다.


  이렇게 하면 후식이 나오기 전, 한 접시에 플레이팅된 다양한 작은 치즈 몇 가지를 맛볼 수 있었다. 치즈가 유명한 프랑스에서는 식당 메뉴 사이에 치즈를 맛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또한 요리가 나올 때마다 웨이트리스가 프랑스어로 요리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프랑스 레스토랑에는 딱히 메뉴 이름이 없는 편이라 요리를 재료로 설명하니 entrée(엉트레, 전식)로 뭘 시켰는지 기억나질 않지만 사진은 영원하다. 처음 나온 전식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파리 식당도 아니고 시골 식당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나 예쁜 요리가 나온 것이다! 검은 접시에 빨간 토마토 그 위에 얹어진 하얀 수란. 수란을 나이프로 찌르니 노른자가 주르륵 흘러나와 요리에 또 다른 색감을 더해주었다. 가히 새롭고도 놀라웠다. 맛있으면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프랑스 요리는 한식과는 다른, 또 다른 세계였다.


Entrée 전식


  plat principal(쁠라 프헹씨빨, 메인 요리)으로는 연어와 닭을 시켰다. 미듐(medium, 프랑스어로는 à point)으로 구운 연어의 밑에는 빵이 깔려 있어서 같이 먹기에 든든했고 녹색 콩과 허브로 장식되어 보는 맛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완전히 익히거나 날 것의 생선요리만 먹었는데 프랑스에서 스테이크처럼 반만 구운 연어 요리를 처음 접해 신선했다. 닭 요리는 버터로 양념이 되어 있었고, 정말이지 부드러웠다. 육즙과 버터의 환상 조합. 같이 토마토를 올려 먹으면 상큼하니 아주 매력적인 맛이었다. 풍미가 대단해 마치 입안에 불꽃놀이가 터지는 기분이었다.


Plat principal 본식


  이후 웨이트리스는 3가지 치즈가 올려진 나무 접시를 테이블로 가져다 주었다. 치즈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는데 퍼런 곰팡이 치즈(고르곤 졸라)가 너무 강렬해서 그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dessert(데쎄흐, 디저트)로는 mousse(무스)와 머랭 쿠키를 주문했다. 무스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색감, 모양, 맛 여러모로 완벽했다. 이렇게 예쁜 디저트를 난생 처음 보기도 했지만 이 아름다운 식사의 완벽한 피날레에 걸맞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매트한 질감이 입안에 퍼져가며 적당히 단맛을 주고 위에 올려진 새콤한 과일과 고소한 견과류가 한 번에 조화를 이루었다. 아으, 잊을 수 없어..! 머랭 쿠키는 말린 과일과 여러 맛의 머랭 쿠키를 예쁘게 조합해놓아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극상이었다. 사진으로만 봐도 너무 예쁘고 맛있어 보이지 않는가? 추상적인 표현 ‘새콤달콤’의 진정한 실체화였다.


dessert 디저트 - 무스와 머랭쿠키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야 했던 프랑스 시골 어학연수생의 첫 파인다이닝은 여러모로 완벽했다. 한 끼 식사비로 거의 5만 원을 치뤘지만 아깝지 않았다. 당시에는 정말 파격적인 도전이었지만 그때 여길 가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때의 추억으로 아직도 프랑스를 추억하고 기념하곤 하니까-



  하아, 다시 프랑스로 날아가고픈 밤이다.



La Truffade
   16 Rue Ravy Breton, 03200 VICHY
   ☎ +33 04 70 98 28 57
   web site : restaurant-la-truffad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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