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VICHY에서 만난 사람들 3편
대개 어학연수에서는 같은 한국인과 어울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한국인들끼리 몰려다니면 언어는 하나도 안 늘고 한국어만 주구장창 하면서 놀러 다니다 돌아온다는 말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피유학으로 온 19살짜리 애들이나 언어연수를 온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은 끼리끼리 몰려다니면서 파벌을 만들고 싸우고 헐뜯고 술 마시며 같이 여행을 다니곤 했다. 그 당시에 그들을 지켜보며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질문 시간에는 중국 학생들과 함께 쥐 죽은 듯 조용해지고, 한국인들끼리 모아두면 그렇게 흥겨울 수 없었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했다. 정말 실제로 그러할 줄이야- 꽤나 진지한 학생이었던 나. 첫 달에 그 광경을 목도하고 어학연수 초기에는 한국인들을 피해 다녔다. 아, 세웅은 별도였는데, 그도 엄청난 열정을 가진 열혈 학생으로 같은 한국인과도 프랑스어로 대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이유는 엄청난 고독감. 겪어보지 않으면 사람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 절대 모른다. 내가 쓰는 언어 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나를 아무도 모르고 나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항상 낯선 것들과 부딪히며 오로지 혼자 해결해 나가야 하는 생활. 친구나 가족에게 털어놓고 싶어도 그들이 자고 있거나 내가 자고 있거나. 스스로가 혼자 있는 걸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도 사회적 동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로지 혼자 언어에만 골몰해야 하는 생활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고시공부 보다야 못하겠지만 결이 비슷하지 않을까. 어느 날은 미친 듯이 우울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어느 날은 숨 쉬는 것도 힘들다. 버티고 버티다 나도 별 수 없이 한국인 친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니, 먼저 말을 걸고 다녔다.
내가 마음을 여니 사람들도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 비슷한 상황이니 그랬다. 다들 외롭고 힘드니까. 여기 이 VICHY는 파리가 아니니까. 이 작은 도시에서 즐거울 것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영혼들은 서로 통하기 마련이었다. 어학원에서 한국인들끼리 마주치면 그렇게 반갑고 살가울 수가 없었다. 마주치면 거의 한 시간 얘기하는 건 뚝딱. 어디 커피나 마시면서 그렇게 얘기했으면 몰라, 그냥 서서 한 시간을 얘기하다 헤어지곤 했다. 장기 유학생들은 그렇게 다들 사람에 목말라 있었다.
한국인 유학생들과 친하게 지내서 얻은 것들도 있었다. 생활이나 시험에 관한 정보들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확실히 내 언어로 듣는 게 제일 편하고 이해도 빠르다. 마당발 친구들이 활발히 돌아다니면서 얻어온 정보를 나는 질문 하나로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행정처리를 위해 낯선 큰 도시로 가야 하는 것도 함께 하며 즐겁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
한국인들과 어느 정도 친하게 지내는 것은 외로운 해외생활에 큰 활력이 된다. 그들 덕에 나는 다른 사람과 더 어울릴 수 있었고, 포기 않고 끝까지 어학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여전히 이름과 얼굴이 떠오르는 그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