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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금 Oct 16. 2023

프랑스에서 만난 세계의 젊음들

프랑스 VICHY에서 만난 사람들 5편


세계의 젊음들을 만나다 : 미얀마, 태국, 스위스 유학생들



  여름의 어학원에서는 매주 전 세계 사람들을 새로 만날 수 있었다. 외향적인 성격이라면 천국이 아닐 수 없겠지만 나 같은 내향인에게는 곤욕 그 자체였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매주 월요일마다 하던 자기소개가 처음엔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중반부로 갈수록 여유가 생겼다.


  나는 여행경험이 별로 없다. 영국, 프랑스, 독일만 가봤지 사람들이 자주 찾는 동남아시아나 중국, 한때 여행 붐이 있던 일본도 가본 적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가보지 않은 곳을 접하고 들었기에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다른 이의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학원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났고, 덕분에 직접 그들을 경험하며 각 나라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다.






  태국 미쉐린(Michelin) 회사에서 단체로 언어연수를 온 태국인 엔지니어들이 기억난다. 대부분 중국계 태국인으로 피부가 하얀 사람들이 많았고, 인도계 혼혈도 있었다. 굉장한 부자들이라 웬만한 한국인 부자 못지않은 생활을 했는데, 이때 동남아 사람들은 가난할 거라는 내 편견이 깨졌다. 이래서 세계로 나가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만나라는 거구나.


  그들은 서로 몰려다니며 초중급반 수업을 들었었는데 나와는 오후수업 때 꽤 자주 만났다. 유머와 흥이 넘쳤었던 사람들로, 언어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음에도 프랑스어를 사용해 농담을 하던 게 참 좋았다. 그 농담들로 수업 분위기가 풀어지기도 했으니 어학원 생활이 힘든 와중에도 웃을 수 있었다.




  미얀마(버마)의 외국어대학교 학생들도 있었다. 미얀마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었고, 처음에 자신들을 비르마니(Birmanie, 미얀마)라고 소개해 어디 나라인지도 몰랐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나서야 미얀마인걸 깨달았다. 이 대학교 학생들은 19살, 20살의 작은 여자애들로 3명(수, 매, 베키)이었는데 다들 활발한 성격에 굉장히 진취적이었다. 어린 나이 특유의 수줍음은 있었으나 어디에서든지 호기심과 생기 넘치는 눈으로 모두의 호감을 샀다. 어학 실력도 굉장히 뛰어나고 분위기가 쳐지는 오전 수업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이들과 함께 외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날씨가 아주 궂었던 날, 천혜의 자연을 보러 퓌드돔(Puy-de-Dôme)에 같이 갔었다. 그곳은 프랑스 중부의 화산 지대인 오베흐뉴(Auvergne)주의 최고 볼거리 중의 하나로 화산에서 기원한 80개의 산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줄지어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 절경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날이 궂었기 때문이었다. 비가 약하게 오는 흐린 날이었지만 신비롭고 무거운  안갯속에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산길을 깔깔거리며 올라갔다. 그 애들은 한국 아이돌 그룹과 한국문화를  좋아했던 터라 나를 굉장히 좋게 봐주었고 그때 이후로 확실히 편한 관계가 되었다.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궂은 날씨의 퓌드돔


  <부자의 나라>라고만 알고 있었던 스위스. 나는 스위스에서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공용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프랑스에서 처음 알았다. 그 작은 나라에서 언어가 3개씩이나 존재하다니. 지리상 북쪽으로는 독일, 서쪽으로는 프랑스, 남쪽으로는 이탈리아와 국경이 인접해 지역마다 가까운 나라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방학 때마다 스위스의 청소년들은 각 나라로 2주나 4주 정도의 짧은 어학연수를 간다. 독일어 사용자들은 이미 영어를 잘하는 편이라 프랑스어를 배우러 가고, 프랑스어 사용자들은 영어를 배우러 간다. VICHY는 프랑스의 중부지방이라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몇 시간 향하면 바로 스위스가 나올 정도로 가까웠다. 스위스 애들이 VICHY에 그렇게 몰려든 이유가 다 있었다.


  매주 키가 크고 깡마른 금발 스위스 청소년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여름 두 달 동안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체력 좋고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청소년의 특성을 그대로 가졌던 10대라 친해질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같이 수업을 들으며 그 나라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은 추억이었다.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바뀌었던 담임 선생님들은 성격도 제각기, 열정의 모양도 제각기였다. 나는 과목만 좋다면야 선생님 스타일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프랑스인 선생님을 만나 보는 일은 낯설면서도 나름 묘미가 있었다.


  지킬 앤 하이드처럼 오전반에는 엄격했지만 오후 아틀리에 수업에서는 그렇게 너그러울 수가 없었던 에르베(Hervé), 엄청나게 밝은 에너지로 수업을 주도하고 외부 미션을 많이 주었던 셀린(Céline), 조용하고 잔잔했던 클레어(Claire), 눈높이에 맞게 수더분한 표현을 사용해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줬던 타티아나(Tatiana), 엄청나게 어려운 숙제를 내줬고 미디어를 많이 활용했던 마리(Marie), 염세적이고 현실적이었지만 은근한 정이 넘쳤던 프랑키(Frankie), 따뜻한 조언을 많이 해주었던 장(Jean).


도서관에서 바라본 어학원 측면 모습


  6개월 동안 나를 가르쳐줬던 선생님들이 거의 다 기억이 난다. 그들 덕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마음에 인간미도 많이 느꼈다. 그전엔 외국인들이라면, 외계인 마냥 소통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했었는데 매일 보고 살다 보니 한 사람으로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인 공포증이 치료된 건 덤이었다.


  어학원에는 선생님 말고도 젊은 직원들이 많았는데, 매주 달라지는 오후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홍보하는 사람들이었다. 거진 다 20대 초반이라 에너지가 넘치고 항상 밝고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처음에 행사를 겁내서 피했던 나도 매주 월요일마다 각 교실을 돌아다니며 즐겁게 홍보하는 그들 덕에 종종 참여해서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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