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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금 Oct 17. 2023

프랑스 하녀방과 미친 날씨의 콜라보

이것만큼 환장의 조합은 없을거에요


그렇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이었어요



  인터넷 안 터져, 변기 물 안 내려가, 샤워 부스 물새, 노숙할 뻔해, 세탁기 터져.. 이 모든 일이 프랑스에 도착한 지 일주일 안에 벌어진 일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사실이다만 나는 그래도 행복했다. 그저 꿈으로만 꾸고, 마음으로 바라기만 하던 프랑스에 와서 살고 있으니 재난에도 마냥 좋기만 했다. 실망하는 건 전혀 없었다.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웃으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그래서 첫 한 달 동안은 집에 수리기사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주말이고 평일이고 할 것 없이 들이닥쳐서 어느 날은 자고 있다가도 덜컥, 문이 열리기도 해 마음도 같이 덜컥, 하기도 했다.


부재중일 때 수리기사가 남겨 놓고 간 메시지, 긴급(urgent)이라고 적혀 있다

 





  집주인 Dachet다셰 아저씨는 호감형에 키도 크고 약간 덩치가 있었다. 처음 스튜디오에서 만났을 때, 월세와 보증금을 봉투에 담아서 주고, 월세 계약서에 서명하고, 방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다. 아저씨는 여기 전부가 다 새 물건이고 필요하면 선풍기를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그러곤 방 밖으로 나가서 메인 계단과는 달리, 허름하고 어두컴컴하고 좁은 계단이 있는 곳으로 가 쓰레기 버리는 곳과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계단으로 올라오는 방법도 알려주는 등등 내가 살게 된 Residence Astoria에 대해 알려주었다.


  세심한 손기술을 사용해 자물쇠를 적절한 위치로 고정시킨 후, 열쇠로 두 번 반 정도 돌리면 문이 열렸던 내 스튜디오. VICHY의 상징적이고 오래된 건물 꼭대기층에 위치해 새로 지어진 이 하녀방 스튜디오는 모든 가전과 가구가 죄다 IKEA 제품이었다. 심지어 접시와 포크까지 죄다 IKEA. 그 덕에 방이 주는 분위기는 인스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감성이었다. 처음엔 예쁘고 깔끔해서 그저 좋아라 했었다.



지붕층인 하녀방을 개조해 만든 내 스튜디오(원룸)



  그러나 지붕 바로 밑이라 천장이 낮아 답답하고 불편했다. 낮 동안 뜨거워진 지붕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지만 초여름엔 그럭저럭 살만 했다. 그런데 꼭대기층이라 수압이 너무 약했다. 처음엔 물이 내려가지 않는 변기에 얼마나 당황했던지. 곧 묘책을 찾아낸 나는 큰 볼일을 보기 전에 바가지에 물을 2L 정도 받아 놓고, 물을 내릴 때 같이 흘려보냈다. 그 짓을 여기에 살았던 6개월 내내 했다. 가끔 '이게 뭐하는 짓인가..'하는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막히는 것 보다야 나았다.


   사실 변기 수압문제는 금방 해결책을 찾아냈지만 끝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도 있었다. 마감이 덜된 탓인지, 샤워부스의 물이 줄줄 샜다. 샤워만 하면 건식 화장실이 물바다가 되어 침실까지 물이 새어 나왔다. 화장실 문이 미닫이였기 때문에 물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고생시킨 욕나오는 욕실



  배관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했고, 그다음은 세탁기였다. 프랑스에서의 두 번째 주말, 주방 제일 왼쪽에 위치한 세탁기에 빨래를 돌려놓고 여유롭게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잠깐 일어날까 싶어 슬리퍼를 신으려고 보니, 이게 뭐야? 주방 바닥이 물로 찰랑이고 있었다.


  당황하며 물의 원천을 찾아보니 세탁기였다. 황급히 세탁기를 끄고 안에 있던 옷들을 꺼냈다. 설상가상, 빨래를 잘못해서 제일 아끼는 티셔츠가 청바지에 이염되어 있었다. 아이구 이건 나중 문제다. 수건 너댓장을 들고 물바다가 된 바닥을 닦았다. 세상에 프랑스에 온 지 이제 일주일인데 이게 무슨 일이람.


  다행히 세탁기는 고쳐져서 정상적으로 쓸 수 있었지만 샤워부스와 변기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이러한 문제를 사람들에게 토로하고 다니니 다들 프랑스랑 너랑 안 맞는 게 아니냐며 걱정했다.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계속 버텨보기로 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프랑스의 하녀방. 보통 프랑스 건물의 꼭대기 층은 <하녀방>으로 불린다. 과거 하녀들이 사용했던 방으로 건물 내부에 따로 마련된 좁고 어두침침한 계단으로 출입할 수 있다. 사실상 다락방이자 한국의 옥탑방과 환상적으로 똑같은 환경이다. 내 스튜디오는 이런 하녀방을 개조한 원룸이었다. 


  초여름엔 그럭저럭 살만 했던 곳이 여름에 접어들수록 굉장히 위험한 곳이 되어갔다. 지붕 바로 밑이라 천장이 낮아 답답하고 불편한건 둘째치고, 낮 동안 뜨거워진 지붕의 열기가 밤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7월이 되자 방의 온도는 자정에도 35도에 육박했다. 해는 새벽 5시 반에 뜨고 밤 10시에 지니 남향인 내 하녀방은 작은 사우나 그 자체였다. 나는 내내 뜨거운 하루를 보내다  일사병에 걸려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른쪽에서 4번째 창문이 내 하녀방 스튜디오였다.


   심지어 당시 2018년 여름에 유례없는 불볕더위가 서유럽을 강타해 연일 뉴스에서 난리도 아니었다. 1994년 이후에 24년 만에  찾아온 더위라며 연일 비상이었다. 24살이었던 나는 신생아 시절인 1994년의 더위도 겪어냈는데 2018년의 더위에는 정말 죽을  뻔했다. 절기가 가을로 바뀌는 입추만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때가 되면 기온도 괜찮아지고 바람이 변하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입추가 지나면 괜찮아 질거라 스스로 다독이며 2주 넘게 살인 더위를 버티려 노력했다.


   심각한 더위에도 창문도 정오 전까지만 열어놓을 수 있었다. 해가 건물의 반대편에 있는 아침나절 잠깐에만 작은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정오에서 오후 6-7시까지는 그나마 버틸만했는데, 지옥은 저녁 8시부터 새벽까지 이어졌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렸고, 방충망이 없어 창문을 열면 모기와 날파리떼의 축제가 벌어졌다.


살려주세요, 온도 이거 진짜냐구...
저녁 8:30과 밤 10:20의 방 온도, 36도와 35도


  나는 태어나서 매일 자정에 찬물 샤워를 해본 적이 없었다. 홀딱 벗고 지내며 2L짜리 물통을 얼려서 껴안고 잤다. 집주인 아저씨가 가져다준 선풍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거의 죽을 지경이라 어학원 사람들 모두가 거의 좀비가 된 나를 걱정했다. 그렇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결국 나는 이 지옥 같은 사우나에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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