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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금 Oct 18. 2023

어쩌다 프랑스 홈스테이

도움! 살려줘요!! 남의 집으로 떠난 피서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더위로 사람이 미쳐버릴 것 같다니!



  프랑스 소설가 Camus 카뮈(1913~1960)의 책,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정신이 나가 사람을 죽인다.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이해가 안 갔다. 새벽 내내 37℃가 넘는 스튜디오 온도 때문에 몇 주 내내 잠들지 못하니 이제야 주인공의 심경이 더없이 이해됐다. 정말 태양 때문이었다! 태양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더위에 말라 지쳐가던 8월 초 한밤 중, 나는 충동적으로 에어비앤비 앱을 켜서 집 근처의 숙소를 예약했다.






  그렇게 가게 된 VICHY의 에어비앤비 숙소. 내 스튜디오와 어학원 중간에 위치해 있어서 이동하기에도 좋았고, 주택가에 있는 집이라 소음 걱정도 없었다. 호스트는 중년 국제커플로 일본인 여자 미호코 Mihoko씨와 프랑스인 남자 띠보 Thibaut씨였다. 미호코씨는 나를 맞아주었고, 집을 안내해주었다.


  깨끗하고 단정한 3층 집. 꼭대기인 3층 전체를 나 혼자 사용했다. 널찍하고 깨끗한 욕실이 따로 있었고 정말이지, 살 것 같았다. 숙소는 완전한 천국이었다. 놀랄 정도로 더운 기운이 하나도 없고 시원했다.


  곧 혼자 남겨진 나는 바로 샤워하고 침대에서 뒹굴대며 음악을 듣고 인터넷 서핑을 했다. 너무나도 포근하고 시원했다. 어떻게 집 하나 다르다고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지?



에어비앤비 숙소 1층과 내가 묵었던 3층 공간


  남의 집이 피서공간인 게 좀 웃기지만 숙소가 상쾌하기 그지없어서 나는 곧바로 살아났다. 바로 컨디션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새벽에는 추운 기운이 들어 어렴풋이 깨기도 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어 그저 감사했다. 그동안 더위 때문에 4시간을 겨우 자던 터라 숙소에 머물던 첫날에는 10시간이나 자버렸다. 아침이 이렇게 상쾌할 수가 있다니. 게다가 샤워 후에도 땀이 나지 않고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니!


  숙소에는 아침식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말 동안 밀린 잠을 자느라 월요일 아침에서야 아침식사를 했다. 바깥 테라스에서 따로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미호코씨가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테라스로 나가니 잘린 브리오슈와 여러 잼이 준비되어 있었다. 푹 자고 난 후 그늘져 시원한 테라스에서 상쾌한 기분으로 정말 맛있는 아침식사를 했다.



시원한 기운이 감돌던 예쁜 테라스


  어학원 수업 전, 기분 좋게 나의 작은 사우나로 잠시 돌아왔다. 밀린 빨래를 하고 짐을 다시 챙겨 옷을 갈아입는데 너무 더웠다. 부모님께 더위 때문에 숙소로 피신한 얘기를 했다. 곧 유학원에서 연락해서 이사가는 방향으로 알아보게 되었다. 내가 아픈 것이 하녀방 스튜디오와 프랑스 때문이라고 생각한 엄마가 굉장히 화가 나 유학원에 한 소리 했다고..


  어학원에 가서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살인적인 내 스튜디오 온도에 대해 얘기했다. 일본인 친구인 유키가 내가 원한다면 자기 홈스테이에 내 사정을 얘기해 방 구하는 걸 도와주겠다고 해서 감동이었다. 하지만 이때는 말도 안 통하는 남과 함께 산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또 홈스테이는 비용도 더 지불해야 했기에 그 계획은 접고 그냥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만일 지금의 나라면 당장 홈스테이를 선택했을 것이다. 언어능력 향상에 굉장히 좋기 때문이다. 확실히 홈스테이에서 있던 친구들의 언어구사능력이 일취월장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취를 하다가 언어실력을 늘리기 위해 일부러 홈스테이로 변경하기도 했다.






미호코 & 띠보씨네 애교많은 회색 고양이

  에어비앤비 숙소의 마지막날, 아침식사를 하며 미호코씨와 얘길 나누었다. 알고 보니 그녀도 내가 다니는 어학원 학생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홈스테이 마담의 친구인 띠보씨를 만나 정착하게 되었다고. 내가 이사 갈 계획이라 하니 그녀는 홈스테이를 추천했다.


  그러나 어찌 보면 프랑스에서도 잠깐 홈스테이를 한 것이긴 하다. 미호코씨와 띠보씨의 집에서 며칠을 지내긴 했으니까. 나쁜 게 꼭 나쁜 건 아니라고, 살인적인 더위가 내게 선물한 또 하나의 좋은 경험이었다.



  4박 5일의 숙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나는 또다시 좌절했다. 그날은 최고기온이 28℃였는데도 긴 시간 내내 햇빛을 받은 스튜디오 온도는 다시금 미친 듯이 치솟았다. 밤 10시가 되어도 여전히 35℃였다. 곧바로 또다시 몸에 염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다시 빠져 들었다. 미호코씨와 띠보씨의 집이 그리웠다. 잠깐 맛본 천국의 맛이 생각나 더더욱 고통스러워졌다.


  아, 미칠듯한 더위, 날 죽이려는 이 작은 사우나, 빌어먹을 하녀방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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