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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금 Sep 07. 2019

그 언어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별로그 : 13일차



2주 정도 지나면 별로 생각 안 날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거의 매일 그 사람 꿈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하고 잠에 들기 직전 우리가 나누던 밀어를 그리워한다.


 일지를 쓰지 않는 동안 건강하지 못한 상상들과 감정기복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위기가 왔다. 혹시 다른 사람이 생겼던 게 아닐까, 혹은 다른 사람을 벌써 만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


 나는 그 사람과 오랫동안 지인으로 지냈기 때문에 과거를 대부분 알고있는데, 너무 디테일한 정보는 애인 관계에 불필요한 것 같다. 헤어지고 나서도 나를 이렇게 괴롭히니까. 가끔씩 이상한 예감이 들어 그가 과거에 좋아했던 사람의 SNS를 뒤져보고 말할 수 없는 패배감과 슬픔을 느낀다. 10년쯤 전의 일인데도.


때로는 나 또한 다른 남자들과 우스꽝스러운 연락을 하고 데이트를 하며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곤 하는데, 이대로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다. 나는 그를 잊어야만 하는데,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이 두렵다. 이 사랑이 정말 끝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아서. 



 그 사람과 사귈 때 거의 모든 나의 약점을 보여줬고, 그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주었다. 자기로 인해 내가 나아졌으면 좋겠다고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에 진심으로 감동했던 건 실수였다. 그에게 너무 많이 기대게 되었으니까.


 그를 말끔히 잊을 수 있을까. 아주 깨끗하게 추억으로만 남길 수 있을까. 사랑이 끝나지 않는 것도, 끝나는 것도 두렵다. 이토록 사랑한 사람과도 끝을 만날 수 있다는 게...


 2주동안 별 짓을 다 했다. 집에 틀어박혀 잠만 잔 날도 있었고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돈도 미친듯이 썼다. 단숨에 괜찮아지길 기다렸지만 아무것도 효과가 없었다. 시간이 빨리 가기를. 제발 그러기를...


 언어들의 행방이 궁금하다. 입 밖으로 나온 사랑의 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함께 쌓은 모든 비밀과 눈물과 입맞춤들, 밤 인사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이별 13일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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