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면 쉽게 감탄하지만 그만큼 쉽게 잃어버린다
바르셀로나로 갈 때는 스페인어만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교환 파견을 가기 전, '꽃보다 할배'에서 바르셀로나 편을 방영하면서 바르셀로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하지만 난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고, 바르셀로나가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 자체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저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이베리아 반도의 나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파견 직전에 스페인 여행 책자를 한 권 구입했다. 제목은 스페인 여행이었지만 바르셀로나가 내용의 3분의 2였다. 그때 처음으로 siesta(낮잠), Gaudi(건축가), Sagrada Familia(가우디가 지은 성당), Jamon(하몽, 돼지 뒷다리살) 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기숙사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맞는 주말에 교환학생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에 끼어 시내로 나갔다. 바르셀로나에 온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투어 일정에 소개되어있는 장소들은 내게 추상적으로 다가왔고, 그때까지 여행 책자를 열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지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성당인지도 몰랐으니까.
투어에 참여하고자 하는 학생은 기숙사 오피스 앞에서 모이기로 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 학생들이 투어에 참여했지만 나는 '사'와 다녔다. 동양인 학생은 찾기 힘들었고 대부분 유럽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유럽 학생들은 마치 EU라는 단체가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듯 서로 쉽게 어울렸다.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거는 학생은 없었고, 우리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면 관심을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보통 교환학생을 가는 나름의 목적이 있다. 누군가는 외국문화를 체험하려고, 외국인 친구를 만나려고, 어학을 연습하려고. 하지만 나는 '휴식을 취하러' 갔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외국인 친구를 만들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만약 미국을 갔다면 영어에 욕심을 냈을지도 모르지만 스페인으로 와 버린 이상 목적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여유와 휴식을 취하는 것이 교환학생의 오롯한 목적이었다.
30분 정도 Ferrocarril(원래는 '철도'라는 뜻이나 바르셀로나의 근교선을 일컫는 말이기도 함)을 타고 나가 시내에 도착했다. 페로카릴은 순수한 지하철은 아니다. 근교선 정도로 얘기할 수 있는데 내가 타고 다녔던 S2 노선은 지상에서 절반, 지하에서 절반 운행되었다. 의자 또한 지하철처럼 양편이 마주 보는 형태가 아니라 기차처럼 두 자리씩 짝을 짓고 가운데 복도를 두었다. 4 좌석이 둘씩 짝을 이루어 마주 보고 있는데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과 마주 봐야하는 것이 민망했다. 나중에는 그것에도 익숙해져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지하철역을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본 것은 평범한 건물이었다. 1층에 가게가 있는 곳도 있었지만 대체로 주택으로 쓰였다. 유명한 건물도 아니고 관광지도 아니었지만 충분히 매료되었다. 고층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창문의 모양, 문고리, 심지어 벽돌 색깔마저 전부 '스페인스러웠다'. 태양의 열에 데워진듯이 뜨거워보이면서 과거를 잊지 않은 느낌, 그것이 내가 내린 '스페인스러움'의 정의다.
Catalunya역은 S2 노선의 종점이자, 바르셀로나 시내의 중심, 그리고 La Rambla의 시작인 카탈루냐 광장이 있는 곳이다. 처음 바르셀로나의 심장을 봤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날씨는 따갑도록 더웠지만 높은 가로수 사이로 길게 늘어선 길이 그렇게 매력적이고 흥미로워 보일 수 없었다.
투어 일정대로 갔다면 우리는 람블라 거리의 끝을 본 뒤 해변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사'와 나는 지쳐있었다. 아침 9시부터 시작된 일정은 며칠 동안 일찍 일어났던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었고, 사실 카탈루냐 역은 투어 일정의 시작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보다 두 정류장 정도 앞에 있는 Passeig de Gracia역에서 내려 카탈루냐 역까지 걸어간 것이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팠고, 무리에서 이탈하기로 결심했다. 먹을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다가 작은 식당을 발견했다. 가게는 테이블에 비해 주방이 큰 편이었다. 알고 보니 2층에 테이블이 더 마련되어있었다. 우리는 전면 유리로 된 창 옆 테이블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땀을 식힐 수 있어서 좋았고 무언가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메뉴판을 훑어봤지만 뭐가 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고 피자와 에피타이저를 판다는 것만 파악했다. 그중 눈길을 사로잡는 피자가 있었다. 피자 이름은 바로 '바르셀로나'
"Quiero una barcelona(바르셀로나 한 판 주세요)."
이렇게 얘기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현실은 손가락으로 메뉴를 가리키며 눈빛으로 주문한 것이 전부다. 나중에 다른 피자 가게들을 몇 군데 더 다녀봤지만 '바르셀로나 피자' 메뉴는 그 가게에만 있었다. 도우가 얇고 치즈가 듬뿍 들어간 것이 맛있었고 화려하지 않은 토핑이 순수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너무 배고팠던 상태라 무조건 맛있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은행을 재방문했을 때 한국 학생 무리를 만났다. 우리는 차례를 기다리면서 수다를 떨었고, 일찍 도착한 한국 학생들끼리 단체 카톡방이 있단 얘기를 하며 나를 초대해줬다.
허기를 달랬을 때 카톡이 도착했다. 카톡을 보낸 사람은 '하'였는데 한국 학생들끼리 모여 추석을 기념해 밥을 해 먹자는 제안이었다. 그날은 추석 연휴가 시작하는 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연휴는 월요일에 시작했지만 휴일은 토요일부터 시작했으니 기분상 그게 그거였다. 나는 특별히 명절이라고 해서 가족이 보고 싶지는 않았다. 집을 떠난 지 일주일도 안 됐으니 매일 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명절을 굳이 챙길 생각은 없었다. 아니, 잊어버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추석이라는 명절이 없고 그저 가을의 첫 달 중 한 날일 뿐이다. 주변이 들뜨지 않고 나에게 추석이라는 자극을 주는 곳이 없으니 나도 무뎌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하'의 제안에 추석에 대한 뜻깊은 감성이 되살아났고 우리는 람블라 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앉아있는데 창 너머로 금발과 갈색 머리의 학생들이 쭈그리고 앉아 커다란 지도를 꺼내 살펴보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말했다.
"여행 왔나 보다."
'사'는 다소 단호한 투로 말했다.
"여기서는 대놓고 지도 보면 안 돼. 여행객인 거 알면 표적으로 찍힌다고 그랬어."
'사'는 추가로 몇마디를 덧붙였고, 그것은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동양인인 우리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를 기다리기 위해 맞은편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겼을 때 나는 '사'의 경고를 실감했다. '사'가 화장실을 가면서 테이블 위에 휴대전화를 두고 갔는데, 청소하시던 분이 내게 스페인어로 뭐라 말씀하셨다. 내가 난처해하며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짓자 다시 말씀하셨다.
"No phone on table. Theif."
아주머니께서는 마지막 단어를 말씀하시면서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가져가는 듯한 행동을 취하셨다. 나는 단 번에 알아듣고 휴대전화를 집으며 말했다.
"Thank you."
'사'가 화장실에서 돌아와 '하'를 만나러 나갈 때까지 나는 크로스백 지퍼에서 한시도 손을 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