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일주일의 마법

카트에 현실과 로망을 담다.

by 사과실

추석 맞이 파티 다음날, 위층에 사는 '마'를 내 방으로 불렀다. '마'는 파티에서 먹은 음식이 바르셀로나에 와서 먹은 첫 식사였다고 했고 아직 식재료조차 구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생수와 곡물 비스킷으로 며칠을 버텼던 것을 잊지 않았기에 '마'의 상황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나라고 재료가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토마토소스와 양파, 스파게티면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형편없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었지만 '마'는 맛있게 먹었다. '마'는 나와 동갑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친해지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마'는 어제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어제보다 말을 많이 했고 어제 느꼈던 쑥스러움은 온데간데없었다. 알고 봤더니 그전날의 쑥스러움은 사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했다.


나는 '마'에게 바퀴벌레 고민을 털어놨다.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에 발을 집어넣었더니 어디선가 등장한 바퀴벌레 서너 마리가 재빨리 침대 밑으로 사사삭 사라진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슬리퍼에 발을 넣으면 어디선가 바퀴벌레가 튀어나올 것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들어냈다. 식사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바퀴벌레 퇴치 방법을 검색했다. 그러면서 몇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유용한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치약으로 청소하기. 이것은 검색과 경험담이 어우러져 신빙성 있는 방법이었다. 추석 모임에서 만났던 군필자 오빠들이 알려준 것이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 오빠들이 군대에 있을 때는 치약으로 모든 청소를 했는데 그래서인지 바퀴벌레가 없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이자 두 번째 방법은 담뱃잎을 놔두기. 바퀴벌레가 담뱃잎의 냄새를 싫어해서 지나다니는 길목에 두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게 담배가 없었다. 그때 '마'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마'는 끝에 박하향 알맹이가 들어간 담배를 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앞니로 톡 하고 물면 구슬이 깨지는 소리가 났고 입으로는 박하향이 스며들었다. 안타깝게도 옆에 있는 사람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진한 향은 아니었다. '마'는 내게 담배를 기증했고 우리는 담뱃잎을 둘러싸고 있는 스킨을 떼어내 잎과 분리했다. 힘이 없어진 담뱃잎은 물이 담긴 지퍼백으로 들어갔고 냉장고에 들어가 몸을 불렸다. 내 손에서 처음으로 담배 냄새가 났다.




월요일이 되자 '마'와 나는 기숙사 근처에서 가장 큰 마트를 갔다. Alcampo라는 대형마트였는데 페로카릴을 타고 시내 반대 방향으로 두 정류장을 가면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창고형 마트를 가 본 적이 없었고 대형 마트를 즐겨 찾는 편도 아니었다. 그런 탓에 알캄포를 보자마자 입이 딱 벌어졌다. 가장 먼저 놀랐던 부분은 지하철역을 기준으로 한 편에는 주택단지가, 다른 한 편으로는 마트 딱 하나만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마트를 위해서 그 넓은 땅이 존재하듯이 너무나도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크기였다. 내부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지리를 다 외우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엄마는 아이들과 마트를 가기 전에 밥을 먹인다는 얘기가 있다. 꼭 경제적인 엄마의 관념을 따르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마'와 나도 장을 보기 전에 마트 내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했다. 보카디요 같은 것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맛은 괜찮은 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마트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각자 카트 하나씩을 끌고 비장한 눈빛으로 돌아다녔다. 마트를 가기 전, 다른 한국 학생들에게 마트 가는 방법을 물어봤을 때 다들 한 입으로 했던 얘기가 있었다. 처음 알캄포를 가면 적어도 3~4시간은 걸린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4시간은 쉽게 지나갔다. 일단 물건의 위치를 모르는 점도 기여했지만 무엇보다 처음 보는 물건들과 브랜드를 인식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우리는 식재료도 구입했지만 사치품에도 손을 댔다. 목욕 가운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나는 로망을 구매로 실현시켰다. 우리의 카트는 현실과 로망을 적절히 반영했고, 50유로라는 결과를 낳았다.


IMG_20141103_191954.jpg 알캄포의 토마토. 스페인은 역시 토마토의 나라다


장을 보는 동안 천장이 시끄러웠다. 자잘한 것이 연속적으로 천장을 때리는 소리가 났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트 탐방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을 때 이미 비는 그쳤고 땅은 젖어있었다. 둘 다 우산을 가져가지 않았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역으로 갔다. 베야테라역에서 기숙사까지 들고 오는 것도 일이었지만 풍성한 장바구니를 보니 만족스러웠다. 마음이 든든해지고 곧 몸도 든든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기숙사에 도착해서 장바구니 속 현실 물품을 먼저 정리한 뒤 로망을 한 두 개씩 꺼내보았다. 그중에서 샤워 가운을 꺼내 몸에 걸쳐봤다. 근데 이것이 무슨 일인가? 가운이 몸에 맞지 않았다. 팔은 팔꿈치까지 겨우 내려왔고 길이는 무릎 위로 훌쩍 올라갔다. 당연히 몸을 감쌀 수도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고심하다 원인을 찾아냈다. 원인은 바로 '스페인어 공부 부족'이었다. 샤워 가운 태그에는 '12 Ano(n위에 ~ 표시가 있어 아뇨라고 읽는다)'라 적혀있었는데 아뇨는 나이를 뜻한다. 나는 12살 아이의 가운을 산 것이었다! 가운이라는 로망에 사로잡혀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내 탓이었다. 샤워 가운 하나만 10유로였는데 그 돈을 그냥 버린 셈 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기로 꾸역꾸역 샤워할 때마다 가운을 입었다, 아니 어설프게라도 걸쳤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에 온 지도 일주일이 흘렀다. 기숙사에 도착했던 날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꺼낸 첫마디가 '한국으로 가고 싶다'였다. 그런 나에게 엄마께서는 일주일만 꾹 참고 견디라고 하셨고 정말 신기하게도 일주일 후에 나는 서서히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첫 일주일 동안 나는 스스로를 보채지도 않았고 스스로에게 야박하게 굴지도 않았다. 꼭 해야 하는 것만 해가면서 나 자신에게 그 어떤 부담도 주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자연스러운 기회가 찾아왔을 때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연히 만난 친구와 같이 마트와 시내를 함께 돌아다니며 적응해나갔고 서로에게 의지하다 보니 친해지는 속도도 빨랐다. 한 달도 못 버틸 것 같다고 울며 전화를 걸었던 나는 일주일 후에 이런저런 얘기를 즐겁게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그곳 생활에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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