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달린 문

세상의 모든 문을 열자

by 사과실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자 아쉬웠던 점은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2~3개 하면서 일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다 보니 바르셀로나에서 급격하게 늘어난 여유 시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돈의 여유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돈이 부족할 때면 벌어서 채울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을 때는 있는 만큼 살아야 했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돈을 써야 할 때는 아르바이트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때가 그리웠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 더욱 행복했다.


그동안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봤는데 한 번은 클럽 물품보관소에서 일했다. 홍대나 강남에 있는 클럽이 아니라 모 맥주회사에서 컨벤션홀을 빌려 이벤트성으로 개최하는 클럽이었다. 당시 벌 수 있는 돈은 다 벌어보자는 생각을 했던 나는 컨벤션홀이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원했다. 영어가 가능하다는 점과 인근 지역에 거주한다는 점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아르바이트생들은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흰 티셔츠를 입었는데 등에 커다랗게 'STAFF'라고 적혀있었다. 업무야 클럽 물품보관소 업무지만 클럽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딱 한 번 클럽을 가봤었고 유일했던 경험은 일하는 데 나름 도움이 됐다. 밤 11시쯤이 되자 사람이 점점 많아졌고 물품보관소 앞 줄도 길어졌다. 자정이 지났을 때는 클럽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물품보관소와 클럽 내부는 커다란 벽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천장에 비치는 조명만 볼 수 있었다. 같이 일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다며 아련한 눈빛으로 천장의 불빛을 바라봤지만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때까지 나에게 클럽은 일주일 동안 머리카락에서 담배 냄새가 나게 하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 새벽 4시에 퇴근할 때까지 나는 내부에 들어가 보지 못했고 우연히 며칠 후 뉴스에서 볼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DJ와 화려한 무대를 보며 나와는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물품보관소와 클럽 내부를 구분 짓던 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타'가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나는 '마'를 소개해줬다. 정확히 말하면 '마'가 내 방으로 놀러 와서 자연스럽게 '타'와 인사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었고, '마'는 자기 방에서 노트북을 가져오더니 우리에게 보여줬다. 화면은 'Holi Festival' 사진을 크게 보여줬다.

"이거 같이 가자!"

난생처음 들어보는 페스티벌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컬러 페스티벌'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색깔 파우더를 던지면서 춤추는 야외 클럽이라고나 할까? 그런 축제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가봐야지라고 다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난 바르셀로나를 오면서 결심했다. 나쁜 짓만 아니라면 모든 한 번씩은 해보자고.


얼떨결에 '타'까지 함께 홀리 페스티벌이 열리는 박람회장으로 향했다. 에스파냐 광장 역에 있는 박람회장인데 저 멀리로는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이 보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때는 대낮이었고 아무리 이런 축제에 낯선 사람이라도 아니, 이런 축제에 낯설기 때문인지 해가 중천을 겨우 넘겼는데 한껏 음악에 취하는 것이 멋쩍었다. 하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색색깔의 파우더를 머리와 옷에 뒤집어쓰고 자지러지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니 나는 뭐가 쑥스러운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어느 정도 파우더를 뒤집어썼을 때는 마치 가면이라도 쓴 듯 몸짓에 주저함이 없었다.




사람들 틈에서 몸을 이리저리 흔들다 보니 어느새 무대와 많이 가까워졌고 군중 속 한가운데를 차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제의 흥을 돋웠는데 술을 마시는 것은 기본이었고 약에 취한 것 같은 사람을 보기도 했다. 스페인에서는 자신이 약을 재배해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유통하는 것은 불법이다. 약의 힘을 빌린 사람들은 누구보다 용감했고 과감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 강남 클럽에서 약에 취해 몸을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봤을 때는 두려움과 반감이 들었지만, 대낮의 드넓은 광장에서 약에 취한 사람들의 몸짓을 봤을 때는 그전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내가 클럽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클럽에 음악을 들으러 간 것도, 사람을 만나러 간 것도, 춤추러 간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 모든 목적이 포함되어있을지 모르는 좀 더 포괄적인 이유로 축제행을 택했다. 한국에서는 나와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던 것들, 내가 무의식적으로 거부했던 것들을 해보는 것, 그것이 앞으로 있을 내 모든 경험과 체험의 이유이자 목적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만족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한 감정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한 때는 벽 너머의 공간에 그쳤던 곳에 발을 들였다. 벽이라고만 생각했던 곳에는 문이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말고는 내게 달려있었다. 난 드디어 세상의 모든 문을 열 각오가 되었다.




분홍, 노랑, 파랑을 잔뜩 뒤집어썼지만 대충 털어내고 에스파냐역과 연결되어 있는 Arena(아레나)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아레나 지하에는 엄청 큰 메르카도나(스페인 대형마트)와 푸드 코트가 있는데 저녁을 해결하기에 알맞았다. 몰골이 찝찝해서라도 집으로 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이왕 나온 김에 한 건 더 올리고 싶었다. 밤에는 볼 수 있는 몬주익 분수쇼를 보고 가기로 결심했다. 그 날은 9월 중순이었고 평소의 날씨였다면 햇빛이 찬란했을 것이다. 하지만 흐릿한 구름이 하늘을 메웠고 덕분에 덥지는 않았지만 날씨는 꿀꿀했다.


IMG_20140908_171738.jpg 저녁을 해결했던 아레나. 옛 투우경기장이지만 지금은 쇼핑몰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Monjuic(몬주익) 분수쇼를 보러 이동했다. 아레나를 나왔을 때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분수쇼를 보기 위해 명당에 자리를 잡아놨다. 우리는 꾸역꾸역 앞으로 가서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으로 연결되는 왼쪽 다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음악 소리는 저 멀리 있을 때부터 들렸지만 분수는 훨씬 가까워졌다.


유럽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던 친구는 내게 몬주익 분수 쇼를 적극 추천했다. 자기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매일 가서 봤을 정도였다며 꼭 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감흥은 그 친구의 감흥에 미치지 못했다.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인지 당시에 몸이 피곤해서 그랬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깊이 남을 정도의 강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같은 장소라도 모두에게 같은 느낌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친구의 말에 공감을 할 수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희한하게도 '마'와 '타' 역시 나와 비슷한 정도의 감흥을 느꼈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잔뜩 물든 옷을 갈아입고 샤워하는데 발밑으로 알록달록한 물이 흘러내렸다. '색다른' 추억이 쌓인 것을 실감하며 다른 날을 기대하게 되는 밤이었다.


IMG_20140913_192217.jpg 같은 날, 분수가 나오기 전 몬주익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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