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들어가는 추억
한 집에 사람은 4명이었지만 화장실은 하나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생활 패턴이 겹치기라도 하면 난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럴 일이 없었다. 내 메이트들은 전부 같은 수업을 들었고 수업은 오후 4시에 시작했다. 오전에 수업이 있는 사람은 4명 중 나뿐이었다. 나는 화목이면 어김없이 8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플레인 요거트로 아침식사를 했다. 가끔씩 L이 일찍 일어나 TV를 켜고 볼륨을 작게 맞춘 뒤 뉴스를 보고는 했다. 어쩌다 내가 씻어야 할 시간에 다른 메이트가 화장실을 쓰고 있을 때면 과감하게 수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M에게 변명을 늘어놨다.
"한국에서는 이렇지 않았어."
그럴 때마다 M은 웃으며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교환학생이니까 그럴 수 있지. 나도 교환학생으로 가면 그럴 거야."
나보다 3살 어린 동생에게 듣는 위로가 어찌나 안심이 됐는지 모른다.
수업은 1시에 끝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메이트들이 점심을 차리고 있었는데 A는 채식 식단이라 스토브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L과 M이 나란히 서서 뭔가를 끓이거나 데우고 있는 모습을 자주 봤다. 나는 메이트들이 식사가 끝나면 먹었는데 굳이 붐비는 틈에서 요리를 하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스토브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같은 시간에 먹기도 했다. 메이트들은 TV를 보며 식사를 했는데 웃기는 프로그램을 자주 봤다.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왜 웃는지는 몰랐지만 메이트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따라 웃었다.
개강한 지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때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내려가는 길에 메시지를 받았다. '마'는 한국 애들과 같이 해변으로 놀러 갈 거라며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집을 들리지 않고 그 길로 친구들을 만났다. 한 무리의 한국인들은 람블라에서 간단한 술과 하몽, 과자를 사 가지고 해변으로 갔다. 날씨는 화창했고 놀러 가기에 알맞았다. 9월의 해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10월 초까지도 사람이 크게 줄지를 않았는데 덕분에 물놀이를 오래 할 수 있었다. 물놀이라고 해봤자 수영복을 입는다거나 물장구를 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래사장에 앉아서 햇볕을 받으며 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물놀이였다.
해변은 모래사장과 포장 도로로 나뉘는데 둘의 경계에는 bar가 즐비했다. 음료 가격에는 bar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경치 값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 두 번 정도는 지불하는 데 아까움이 없을법했다. 해가 저물 때쯤이면 bar에 불이 켜졌고, 가을이 한창일 때는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는 잠시 앉아서 햇볕을 즐기다가 그중 몇 명은 바다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하'는 모래성을 쌓기 시작했고 가만히 구경하던 우리도 점차 참여하기 시작했다. 나도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는데 '하'의 섬세함을 따라잡기 힘들어 성 옆에 원형 경기장을 건설했다. 태어나서 모래성을 쌓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진지하고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모래성이 완성된 후에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훈민정음' 게임을 했는데 술래가 초성을 얘기하면 해당 초성에 맞는 단어를 말하면 된다. 나는 여태껏 '훈민정음' 게임에서 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마치 기계처럼 뭐든 애들이 척척 답을 얘기하더니 술래의 엄지를 잡는 것이었다. 게다가 난 4글자 초성은 해본 적이 없었다. 벙쩌있을 때 게임이 종료됐고, 나와 '하'만 남았다. 나는 절대 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벌칙이 바로 바다 입수였기 때문이다. 두 명 중 한 명을 걸러야 할 때 하기 좋은 게임은 바로 '탕수육'이다. 나는 '탕수육' 게임에서도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하'와 나의 숨 막히는 대결이 시작됐고 생각보다 '하'가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탕수육' 게임에서만큼은 패배를 모르는 사람이다! 길고 긴 주고받음이 끝나고 바다 입수는 '하'가 당첨됐다.
해가 져 물어갈 무렵, '하'는 당당하게 바다 입수 벌칙을 수행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 우리가 했던 모든 게임은 '하'의 입수를 위한 것이었다! 말도 안 되게 기계처럼 완벽했던 초성 게임은 이미 짜인 각본이었던 것이다. 그 전 날 내가 수업 준비를 한다며 방에 남았을 때 나머지 아이들은 입수를 계획했다고 했다. 만약 '탕수육' 게임에서 내가 졌다면 입수를 없었던 일로 하려 했지만 마치 운명처럼 내가 이긴 덕분에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다.
기온이 떨어질 때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하'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고 입수는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내 생에서 지중해를 처음 본 순간에 함께 있었던 친구들. 우리는 그 날의 추억을 담은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톡방을 만들었고, 그렇게 '네타방*'의 추억이 시작됐다. 내 기억 속 바르셀로나 80%의 지분을 차지하는 '네타방'은 남은 시간 동안 더 알차게 활약했다.
*바르셀로나 대표 해변인 'Barceloneta(바르셀로네타)'를 줄여 우리끼리 '네타'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