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더 달라질 것이다
나보다 한 학기 먼저 교환학생으로 떠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프랑스 리옹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내가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동안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타'는 리옹에서 보낸 첫 두 달 동안 내내 앓는 소리를 했다. 바뀐 환경, 사람들, 수업. 모든 것이 '타'가 적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고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버릇 때문에 두려움은 더 커져갔다. 즐기지 못하고 견디기만 했던 시간들이 흘렀고, 3개월에 접어들었을 때는 나름 적응해서 지내고 있었다. '타'의 교환학생 생활이 절반을 넘겼을 때 내가 바르셀로나로 왔다. 타지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첫 일주일 동안 '타'와 자주 통화했다. '타'는 교환학생 선배로서 나를 위로했다. 한국에 있을 때 수업도 같이 듣고 점심도 같이 먹으며 생활의 전반을 공유했는데, 그 버릇은 전화를 타고 이어졌다.
"개강 전에 바르셀로나로 놀러 갈까?"
그 말 한마디로 다음번에는 유럽에서 보자며 장난처럼 건넸던 말이 실현되었다. 그리고 내 교환학생 생활이 열흘을 겨우 넘겼을 때 '타'가 도착했다.
공항버스는 두 곳에 정차한다. 에스파냐 광장과 카탈루냐 광장. '타'는 공항버스를 타고, 나는 페로까릴을 타고 카탈루냐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평소의 평일 점심시간이었다면 시내로 나가는 열차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은 평소와 같은 평일이 아니었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바르셀로나 깃발을 휘날리며 열차에 올라탔다. 그 날은 바르셀로나 독립 기원일이었다. 바르셀로나가 독립을 원하고 투표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는 기사를 통해서 접했지만, 현장은 몇 글자로 전달되는 사실보다 더 치열했다. 카탈루냐 역에서 내렸을 때는 무리에 휩쓸려 람블라로 나갔고, 독립을 기원하는 행사 준비로 분주한 광장을 지나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직진했다. 정류장에는 노란 머리의 아담한 여자가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뒷모습만 보고 외국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타'였다. 금발로 염색했다는 말도 듣고 심지어 사진까지 봤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머리가 더욱 눈부셨다. 하얀 피부와 반짝이는 머리가 제법 어울렸다.
'타'는 커다란 가방을 둘러멨고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람블라로 향했다. 그 많은 인파를 보고 있으니 람블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했다. 광장에서는 행사가 시작했고 사회자가 단호한 카탈란어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구호를 외쳐댔다.
"탕!"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 소리에 놀란 비둘기 떼가 일제히 광장을 떠나 하늘로 날아갔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비둘기 떼를 본 것은 처음이었고 하늘에 격자무늬로 새겨진 비둘기 때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비둘기 떼는 잠시 놀랐을 뿐 멀리 돌아 다시 광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비둘기의 부재로 잠시 한가해진 광장을 지나 람블라로 뛰어들었다. 보케리아 시장 옆에 있는 볶음 국숫집으로 들어갔는데 역시 사람이 많았다. 바르셀로나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으니 한가한 가게는 없었다. 하지만 그 가게는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에 바쁜 것은 아니었다. 그 가게로 온 사람들은 람블라에 있는 한 음식점을 찾은 것이 아니라 콕 집어 그 가게를 찾은 것이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한 도시에서 아시아식 볶음 국수라는 타이틀이 어색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맛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미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온 적이 있는 '타'가 나를 안내했다. 우리는 보케리아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마주 보도록 자리를 잡았다. 지난번 보케리아 시장을 갔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아치형의 테두리가 눈에 들어왔다. '타'는 내게 어디 어디를 가봤는지 물었고 난 대답할 곳이 많지 않았다. 열흘 동안 내가 제대로 본 곳은 겨우 마트 하나뿐이었으니까.
식사를 마치고 잠시 복잡한 인파에서 멀어지기로 결정했다. 카탈루냐 광장을 떠나 Arc de Triomf로 자리를 옮겼다. 람블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지만 '타'의 두툼한 배낭과 날씨, 그리고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지하철을 탔다. Arc de Triomf는 역 이름이자 건축물의 이름이다. 지하철 출입구를 나오면 어느 방향으로 나오든 늠름하게 서있는 '승리의 문'을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자태에, 가까이서 보면 섬세함에 감탄한다. 한참을 감탄하다 문으로 입장했다. 이제부터는 Ciutadella 공원이 펼쳐진다. 공원의 오른쪽에는 식물박물관, 지질박물관이 나란히 서있고 왼쪽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어떻게든 햇빛을 피하기 위해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는 내 모습이 각박하게 느껴졌다. 우리도 타협점을 찾아 햇빛이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그때는 생각했다. '개강하면 이런 여유가 사라지겠구나.'하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어쩌면 겉으로 내뱉은 생각과는 다르게 깊은 곳은 벌써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내 삶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걸.
한껏 여유를 즐기고 난 후, 보른 지구를 더 깊숙하게 들어가 봤다. 보른 지구 안 쪽에는 한 성당이 있다. 바르셀로나 여행 책자에도 나오는 곳이지만 여행 책자 속 다른 성당에 비하면 화려함이 덜 하다. 고딕 지구의 카테드랄을 황후의 방이라 말한다면 그곳은 둘째 공주의 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품에 맞게 화려하지만 과하지는 않고 적당히 작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있다. 성당을 들어갔을 때 안에서는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초대받지 않았으면서 남의 행사를 엿보는 것은 방해와 같다고 생각했다. 성당의 입구에 서서 먼 시선으로 내부를 훑어보고는 나왔다. 성당 맞은편에는 유명한 디저트 가게가 있는데 유명세를 가격에 그대로 반영했다. 무슨 호기심이 많아서 항상 창가 자리를 고집했던 걸까? 그곳에서도 창가에 앉아 성당으로 마주 봤다. 조금이라도 밖을 보고 있는 것이 재밌었고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 암시를 주는 것 같았다. 디저트 가게에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우리는 한국어로 디저트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캐러멜과 다크 초콜릿 케이크를 각각 시켰는데 둘 다 맛은 빠지지 않았다. 한 번쯤 사치를 부려 와볼 만했다. 캐러멜 시럽이 케이크의 주변을 전부 덮은 모습을 본 순간부터 목을 타고 넘어갈 때까지 눈과 혀와 목이 녹아내렸다.
더 이상 녹아내릴 게 없을 때쯤 성당에서의 결혼식이 끝났다. 성당의 옆문으로 이제 막 부부가 된 남녀가 축하를 받으며 나오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나이 때는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학생의 신분을 고려했을 때 결혼은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결혼식, 그리고 결혼 자체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이런 남자를 만나고 싶다 저런 남자랑 사귀면 어떨까와 같은 상상은 수도 없이 했지만 남편에 대한 상상은 조심스러웠다. 상상이더라도 허투루 했다가는 내 눈 앞에 떡하니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떠올리며 막연한 로망을 상상해보는 것은 내 인생도 한 편의 로맨스 영화와 다르지 않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상상 속에서는 결혼식 장소도 하객도 흐릿하다. 오로지 신랑과 신부만이 뚜렷하다. 방금 성당에서 나온 신랑 신부의 모습이 그러했다. 두 사람이 완전한 주인공이 되어 결혼식을 빛내고 있었다. 그래, 바로 저런 결혼식이야. 누군가 어떤 결혼식을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답이 생겼다.
"신랑 신부가 주인공인 결혼식이요."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샀다. 식탁에 앉아있으니 이곳이 한국인지 바르셀로나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쓰는 언어로 말했고, 학생 식당에서 줄곧 얘기하던 주제에 대해 얘기했다. 하지만 손에는 스페인 맥주를 들고 있었으며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가는 태양은 우리가 원래 있던 곳에서는 하늘의 정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같은지를 따질 필요는 없었다. 앞으로는 무엇이 다른지를 따질 수도 없이 달라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