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처음의 기억을 공유하다
스타벅스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맞았을 때는 뜨거운 태양 아래 있는 창밖의 사람들도 시원해 보였다. 하지만 스타벅스를 나오자 오해가 원망스러울 만큼 더웠다. '하'는 한 무리의 한국 학생들을 이끌고 람블라 거리에 서있었다. 교환학생 선발 면접에서 '하'와 나는 같은 조였다. 면접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면접관 세 분 중 한 분이 내게 물었다.
"둘은 전공이 같네요. 원래 알아요?"
나는 면접실에서 '하'를 처음 봤고 모른다고 대답했다. '하'는 나보다 학번이 하나 빨랐다. 면접관은 '하'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하'가 대답했다.
"제가 1학년 끝나자마자 군대를 가서 한 학번 아래 후배는 잘 모릅니다."
교환학생 합격자가 발표됐고 '하'와 나는 둘 다 붙었다. 같은 학교로 파견되는 학생끼리 정보 공유를 위해 번호를 교환했다. 나는 그때 깜짝 놀라 전화번호를 저장하다 말고 휴대전화를 감췄다. '하'의 번호가 이미 저장되어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기억이 떠올랐다. 전공 수업에서 '하'와 나는 같은 팀이었고 수업 둘째 날 팀원끼리 번호를 교환했다. 당시 팀 프로젝트가 모든 수업에 있었고 기계적으로 수업을 듣던 터라 면접에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수업 시간에 번호를 교환했을 때 굳이 고개를 들어 '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도 나를 몰라봤던 걸까?
우리는 먼저 음식 메뉴부터 정했다. 소고기 동그랑땡, 김밥, 파전, 김치전. 메뉴가 정해졌을 때 사실 난 자신이 없었다. 4개 메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입맛에 만족할 정도지 다른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단체였고 나 말고도 요리할 사람이 수두룩했다. 우리는 먼저 소고기를 사기 위해서 Boqueria로 갔다.
보케리아 시장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바르셀로나로 오기 전 짤막하게라도 조사해봤을 때 보케리아 시장에 대해 찾을 수 있었고 더불어 유명하다는 생과일주스도 알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관광객과 유학생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던 터라 관광객 쪽으로 기울었다. 우리는 손에 생과일주스를 하나씩 들고 장을 보기 시작했다. 작은 것은 1유로, 큰 것은 1.5유로였는데 비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생과일주스를 저렴하게 파는 프랜차이즈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내가 아는 한 그때는 그런 가게가 없었다. 그래서 보케리아의 생과일주스가 더욱 눈에 들어왔다.
손에는 컵을 들고 입에는 빨대를 물며 보케리아를 둘러봤다. 보케리아(boqueria)는 원래 '염소'라는 뜻이나 의미가 확장되어 '염소 고기 파는 곳'이 되었고 그 의미에서 더 확정되어 '고기 파는 곳' 즉, 정육점이라는 뜻이 되었다. 보케리아가 과일 주스로 유명한 것은 이름의 의미를 알면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시장을 둘러보며 보케리아의 뜻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고기가 부위별로 진열되어있는 것을 보며 신기함과 매스꺼움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부위를 만날 때면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히 하고자 굳이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시장에서 동그랑땡용 고기는 구입했지만 다른 재료는 구하지 못했다. 특히 김밥용 김과 단무지는 김밥을 위해서는 필수적인데 바르셀로나의 흔한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바로 아시아 푸드 마켓이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흔히 가는 길 방향에 있는 가게가 아니라 혼자서 찾아가지까지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아시아 푸드 마켓이다 보니 한국 음식만 파는 것이 아니라 일본, 중국, 베트남 등등 아시아 대륙에 있는 나라의 모든 식재료를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굴소스와 데리야끼 소스를 눈여겨봤는데 덕분에 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추석맞이 음식 재료뿐만 아니라 각자 라면을 하나씩 챙겼다. 한 봉지에 1유로라는 가격이 비싸기는 했지만 바르셀로나에서 한국 라면이 가장 싼 곳이었다.
람블라를 떠나 페로카릴을 타러 갈 때는 아쉬움이 남았다. 좀 더 눈에 담아둘 걸 싶었지만 나중을 미리 알았다면 미련이 남을 것도 없었다. 학교보다 자주 갔던 곳이 람블라였으니.
다시 30분이 넘는 거리를 달려 기숙사로 돌아왔다. '하'의 방도 내 방처럼 아직 룸메이트가 도착하지 않아서 추석 맞이 파티의 장소가 되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른 한국 학생들이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마'를 처음 만났다. '마'는 어색하게 식탁 의자에 앉아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리를 보고는 인사했다. 그전날 도착했다고 했고 내 방 바로 위의 옆집에 살고 있었다. 한 마디로 대각선에 사는 친구였다. '마'의 검은 긴 머리는 살짝 구불거렸고, 검은 카디건은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다. '마'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검정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안경테까지 검은색이었니까.
인원이 많으면 음식을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한 명이 못해도 다른 한 명이 메꾸기에 충분하고 소질이 없는 한 명은 허드렛일을 하면 되니까. 이미 알고 있는 사람보다 처음 보는 사람이 많은 자리였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빨리 친해졌다. 요리를 준비하면서도, 완성된 후 식사를 할 때도 이야기는 막힘없이 흘러갔다. 얘기는 흘러갔지만 오히려 주제는 과거에 있었다. 같은 학교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고 그들의 처음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하지만 걱정스럽게 '하'와 나의 처음도 화두에 올랐다. '하'가 먼저 말을 꺼냈다.
"면접 보는 데 나를 모른 척하는 거야. 같이 팀플을 하는데 나를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
나는 민망한 나머지 웃었고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번호 저장할 때 깜짝 놀랐어. 네 번호가 이미 있어가지고. 내가 너무 정신없이 학교를 다녀서 진짜 몰랐어."
내 변명에 다른 학생들이 장난스러운 야유를 보냈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부드러워졌다.
"근데 너는 나 알면서 왜 모른척했어?"
'하'가 대답했다.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는 애인가 보다 했지."
만약 면접에서 '하'가 나를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오해하지 않았다면 나는 교환학생에 합격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에게 정말 고마웠다.
그 해 추석에는 슈퍼문이 떴다.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슈퍼문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전부 베란다 창가에 기대어 달을 구경했다. 다른 밤보다 유달리 크지는 않았지만 밝았다. 나는 그때까지 달이 노랗다고 생각했는데 '하얀 달'이라는 표현이 맞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바르셀로나에서 처음으로 시끌벅적한 밤을 보내고 나니 불안과 긴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