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손을 움직입시다

스크린 속 여성 노동자들의 '손'-영화 <카트>, <소공녀>

by 사하


"손에 물 안 묻히게 해 줄게"

어릴 때 본 드라마에선 남자가 여자에게 무릎을 꿇고 저런 대사로 청혼하곤 했다. 손에 물을 안 묻히고 어떻게 살아? 더럽게. 이해하지 못한 내가 중얼거리면 엄마가 웃으며 설명해줬다.

“고생 안 시키겠다는 뜻이야. 집안일이든 뭐든 일하다가 손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준다는 거겠지.”

“음, 그런 뜻이라면 아빠는 실패했구나.”

그렇게 농담하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손이 무슨 천연기념물도 아니고 왜 지켜야 하는 거지? 왜 굳이 여자 손만? 의문스러웠지만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손은 과연 지켜줘야 할 보물처럼 매끄럽고 새하얗고 보드라워 보였다. 그렇게 흠집 하나 없이 진공 상태로 보존되는 손만이 ‘여자 손’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처럼 고고한 자태였다.


잊고 있던 드라마 장면을 떠올린 것은 지난달, 스트레스로 뒤집혀버린 피부를 구원하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였다. 병원에는 세 명의 관리사 분들이 계셨는데 모두 여성이었다. 처음 관리를 받던 날, 이리로 오라는 말에 약간 긴장한 채 따라가 배드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니 곧 능숙한 손의 움직임이 얼굴을 감쌌다. 섬세하면서도 재빠른 손길을 두 볼 한 가득 느끼면서 나는 손이 이토록 현란하게 '일'할 수 있음에 새삼 놀랐다. 오랜 경험과 지식, 기술이 손가락 마디마디에 배어 있는 그 손은 드라마에서 본 여주인공의 손과는 달랐다. 아름다움을 위해 멈춰버린 사물事物의 손이 아닌, 치료를 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노동의 손'이 거기에 있었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그 손이 하는 노동을 거쳐 점차 되살아나는 피부를 보며 나는 궁금해졌다. 물이 묻건 말건 여성의 손은 이렇게 멋진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여자 손'을 마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도자기 작품처럼 바라보고 있었을까? 왜 그 손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까? 물이 묻고 주름이 지고 흉이 남은 '여자 손'은 상상할 수 없는 걸까?


그런 질문들을 통과한 끝에 머릿속에는 두 편의 영화, 두 명의 여성이 정답처럼 남아 있었다. 노동하는 여성의 손, 그 손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 <카트>(cart, 2014)와 <소공녀>(Microhabitat, 2017)다.



일하고 먹이고 싸우는 손

영화 <카트>, '선희'의 손


2021-05-18 21;23;02.PNG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선희(염정아)가 물품을 열심히 나르고 있다

영화 <카트>의 주인공 '선희'는 마트 직원이다. 정규직 전환만을 꿈꾸며 일하는 선희의 손은 조금도 쉴 틈이 없다. 직장에서는 물건을 계산하고 무거운 짐을 나르고 물품을 정리하느라 바쁘고, 집에서는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하느라 바쁘다. 먼지가 묻고 땀이 스미고 상처가 난 선희의 손은 억세고 거칠다. 그 손으로 선희는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자식들을 먹여 살린다. 책임져야 할 것이 있는 선희의 손은 '가장의 손'이다. 마트에서 일하는 선희와 그의 동료 모두가 두 손에 먹여 살릴 누군가를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이들의 손이 멈춰 버린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싫었던 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 700여 명의 손을 밀쳐낸 것이다. 난데없이 생활을 빼앗긴 사람들의 대부분은 매장 계산대와 식품코너에서 일하던 여성들이었다. 회사는 선희의 손에, 혜미와 미진, 순례의 손에 어떤 삶이 들려 있는지 보지 않았다.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 손쉬운 폭력 속에서 손아귀에 들린 삶이 한순간 무너질 위기에 처한 선희는 외쳤다. 나는 반찬값이 아닌 생활비 벌러 나온 거라고. 그러니 일을 해야 한다고. 일을 해야만 한다고.


2021-05-18 21;24;00.PNG 영화 <카트>에서 경찰에 맞서 서로를 붙들고 있는 여성들

반찬값이 아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새하얀 피부나 고운 살결이 아닌 '삶'을 보존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던 선희와 동료들의 손은 그렇게 싸움을 시작한다. 대자보를 쓰고, 투쟁가에 맞춰 박수를 치고, 거칠게 몰아치는 경찰들에게서 서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먹을 꾹 쥐는 그 손들은 강인하게 살아있다.



만들고 돌보고 살리는 손

영화 <소공녀>, '미소'의 손

screencapture-netflix-watch-81095657-2021-05-18-21_40_02.png 영화 <소공녀> 중 한 장면, 미소(이솜)가 열심히 창문을 닦고 있다.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의 손에도 삶이 있다. 보증금과 월세를 낼 돈이 없어 집을 포기해버린 미소에게 손은 중요한 생존 도구다.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미소의 손은 창문을 닦고 바닥을 쓸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밥을 짓는다. 그리고 돈을 번다. 그 돈으로 산 담배 한 갑, 그리고 위스키 한 잔은 잠을 자고 사랑을 하고 몸을 뉘일 공간은 포기하더라도 결코 '나'라는 존재는 포기하지 않도록 미소를 지켜준다. 그렇기에 미소의 손이 책임지고 있는 것은 미소의 존엄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 이상의 삶이 그 손에 들려있다.


스스로를 구하는 미소의 손은 동시에 다른 누군가를 구한다. 잘 곳이 사라진 미소는 대학시절 밴드를 같이 했던 친구들을 찾아가지만 잘 사는 줄만 알았던 이들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 결혼 후 시부모와 함께 사는 현정은 자기 밥은 챙기지 못한 채 남의 밥을 짓고 있고, 좋은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꾸린 줄 알았던 대용은 대출 이자의 굴레 속에서 이혼 위기에 처해있다. 젊은 시절의 미소를 잃고 울상이 된 이들에게, 미소는 따뜻한 밥과 반찬을 만들어준다. 헝클어진 생활만큼 엉망이 된 집을 깨끗이 청소해준다. 입을 벌린 채 잠든 친구의 턱을 올려주고 울음이 터진 후배의 등을 쓸어주는 미소의 손은 사람을 먹이고 재우고 울리고 웃기고 어루만진다. 그렇게 다시 살아가도록 한다.


screencapture-netflix-watch-81095657-2021-05-18-21_51_06.png 영화 <소공녀> 중. 친구 현정을 위해 장조림을 만들고 있는 미소.


일을 해서 삶을 구하는 선희의 손과 미소의 손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것은 누군가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줬기 때문인데도, 우리는 우리가 빚을 진 노동의 모양을 보려 하지 않는다. 우리를 살린 그 손이 무엇인지를 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이 묻고 주름이 지고 상처가 난 그 손들은 누가 알아봐주건 말건 상관없이 모르는 곳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만들고 돌보고 살고 또 살린다. 드라마 속 여성의 손은 아름답게 영원으로 멈춰있을지는 몰라도, <카트>와 <소공녀>에서 목격한 여성의 손은 그렇게 지금도 어딘가에서 무수히 다른 손들로 연결되어 살아있다. 나는 그 손들을 볼 수 있다.


아프게 흉진 내 피부를 조심조심 어루만지던 손의 느낌을 생각하며, 내 손을 내려다본다. 손마디가 굵고 손톱은 들쑥날쑥하고 퍼런 핏줄이 선명히 비치는 내 손. 이 손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손가락을 찬찬히 움직여본다. 무엇을 하든, 멋진 것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손을 거쳐 이만큼 살아올 수 있었는지 이제는 알기에.


그러니 자, 손을 움직여보자. 물을 잔뜩 묻히고 땀을 흘리며, 바지런히 움직이는 손으로 살아보자. 멋지게 한 번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