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이지 않은 삶의 아름다움-영화 <패터슨>
커서 뭐가 될 거야?
어릴 때 숱하게 들었던 질문에는 모범답안이 존재했다. 위대한 '무엇'이 되어 의미 있는 '무엇'을 이루겠다는 문장에 '무엇'만 채워 넣으면 만사 오케이였다. 가수가 되어 빌보드 차트에 오르거나 소설가가 되어 노벨문학상을 받거나 학자가 되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거나 우주비행사가 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뭐 그런 식이다. (그 '무엇'이 무엇이든 간에 어른들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로 대화를 갈무리 지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박수받던 시절이 지나가고 나면, 질문의 어조는 조금씩 변한다. 의심에서 걱정으로, 분노에서 체념으로. 그리고 어느 시점이 지나면 "회사원이 되어서 월급을 받고 싶어요"라는 답에 '왜 이렇게 꿈이 작냐'는 타박이 아닌 '그래 그거라도 해라'라는 부탁이 돌아온다. 그 시점에 걸터앉아 가만히 인생을 돌아보고 있으니 문득 초라해진다. 사춘기 때 할 법한 사념에 빠진다. 위대하지 않은 삶은 의미가 없는 걸까.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삶은 본편에 돌입하지 못한 예고편에 불과한 걸까.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며, 의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체념 같은 이 질문에 한 편의 시詩로 답하는 영화를 만났다. 짐 자무쉬 감독의 2016년 작, <패터슨>이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은 미국의 소도시 패터슨의 버스 운전사다. 말장난 같은 이 설정만 들었을 땐 '작은 도시에서 일하는 평범한 버스 운전사에게 벌어진 엄청난 사건...!' 같은 전개를 상상하게 되지만 기대 마시라. 이 영화에 그런 사건은 없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버스를 운전하고 저녁에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바에서 맥주를 한 잔 하는 패터슨의 일상이 반복될 뿐이다. 보통의 영화가 기승전결을 갖춘 가파른 곡선 모양의 롤러코스터라면, <패터슨>은 느리게 원을 그리며 완만히 오르내리는 나선 모양의 회전목마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다가 잠든다고 해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관객을 재우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는 없을 터. <패터슨>은 미세한 파장들을 패터슨의 일상에 점점이 흩뿌리면서 관객이 스크린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도록 한다. 패터슨의 잔잔한 하루에 물결을 일으키며 튀어 오르는 돌멩이들은 버스 승객들이기도 하고, 바에서 만난 이웃이기도 하고, 꿈 많고 재능 많은 아내 로라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물결을 일으키는 돌멩이는 단연코 '시'다. 지하실에 꽂혀있는 낡은 옛 시집들, 조그만 비밀노트에 쓰이는 시들은 패터슨의 담담한 하루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며 빛난다. 로라가 제발 복사본을 만들어놓으라고 연거푸 부탁할 만큼, 패터슨의 시는 명백하게 아름답다. 달콤한 사탕처럼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입안에 천천히 굴리며 그는 새로 산 성냥갑, 퇴근 후의 맥주 한 잔, 어릴 적 들었던 노래 한 소절, 사랑하는 사람의 잠든 얼굴을 한 편의 시로 빚어낸다.
이 영화가 롤러코스터 모양이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상상할 수 있을 테다. 우연히 찾아온 절묘한 기회, 숨겨져 있던 천재적 재능의 발견, 작은 소도시에서 탄생한 위대한 시인과 기막힌 인생역전 등등. 하지만 눈에 보이는 화려한 클라이맥스 앞에서 영화는 단호히 몸을 틀고, 그만의 독특한 궤도를 유지하며 새로운 반전을 꾀한다. 바로 패터슨의 시들을 남기지 않고 몽땅 없애버리는 것. 평소 탐탁지 않은 눈으로 패터슨을 바라보던 반려견 마빈이 그의 노트를 가리가리 찢어놓으면서, 영화는 차근차근 채워온 그의 캔버스에 돌연 흰 물감을 부어버린다.
패터슨과 관객들을 망연한 허무 앞에 세워두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백업의 생활화'는 아닐 거다.(물론 중요한 교훈이긴 하다.) 일상의 무료와 무상을 한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패터슨은 시를 더 이상 쓰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패터슨은 우연히 만난 일본의 시인에게 빈 노트를 건네받고, 다시 시를 쓴다. 얼마든지 채워질 수 있는 그 여백에서 패터슨이 본 것은 시가 아닌 삶이다. 글자가 지워지고 종이가 뜯겨나가도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들을 그는 본다. 잠든 연인의 오르내리는 어깨와 나직한 숨소리, 낯선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지나가는 사람의 눈동자, 빛이 들고 그림자가 지는 순간을. 검은 글자로 압축할 수 없는 넓은 공백과 깊은 침묵,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리듬과 찰나, 그리고 아름다움을. 시가 사라져도 삶은 살아지고, '살아짐'으로 반복되는 고요한 운율 속에서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가 된다.
우리는 늘 무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쉬지 않고 무언가를 말하고 쓰고 만들어내고 보여준다. 하지만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고 남은 자리에, 쓰이지 않고 보이지 않은 곳에, 엄청난 양의 삶이 있다는 것을. 카페에, 식당에, 마트에, 버스에, 거리에 있는 수많은 삶들이 그런 것처럼. 곤히 잠든 사람의 순한 모양이, 어딘가를 골똘히 바라보는 강아지의 까만 눈이,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마는 입술의 떨림이, 잠들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새벽이, 받지 못한 누군가의 전화가, 남겨지거나 주목받지 못한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삶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걸.
설령 쓰이지 못하고 불리지 못하고 남겨지지 못한다고 해도, 모두 시다. 노래고 춤이고 영화고 글이고 삶이다. 모두 다 삶이다. 삶은 삶으로 이루어지고 의미는 그 모든 것에서 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고, 누구도 비난받을 필요가 없다. 위대한 무엇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만의 순간들을 써내려가면 된다. 그거면 된다.
그러니 모두, 너무 애쓰지 말기를. 매일의 운율 속에서 다만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