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몸이 사랑받는 세상을 꿈꾸며-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노동은 숭고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일을 해서 삶을 영위하는 건 멋진 일이라고. 내가 일해서 돈을 버는 기쁨만큼 좋은 건 없다고. 하지만 숭고하고 멋지다는 그 '노동'을 시작한 주변인들의 반응은 다르다. 아르바이트 중 폭언을 듣거나 임금을 제대로 못받는 일은 태반이고, 어렵게 취직한 곳에는 노동의 기쁨보다는 야근과 술자리, 호통과 책임회피만 가득하다. 피곤과 무기력, 체념을 익혀버린 얼굴들을 보고 있으니 무섭다. '노동의 민낯이란 이런 거란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재벌 2세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모두 일을 하고 살텐데, 일하는 얼굴들은 왜 자꾸만 불행을 닮아가는 걸까? 어떻게 하면 그 얼굴들이 기쁨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일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 답을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에서 찾아보았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2017)의 주인공 아오야마 다카시는 스물넷 사회초년생이다.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던 아오야마는 작은 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취직한다. 계약직이 아닌 '정사원'으로 입사했으니 땡잡았다 싶지만, 회사 상태가 영 좋지 않다. '블랙기업'*에 해당하는 이놈의 회사에서는 모든 사원들이 아침마다 부장의 구령에 맞춰 아침 체조를 하고 복식호흡으로 사내 규칙도 읊어야 한다. 쌍팔년도 군대처럼 케케묵은 구닥다리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적'이다. 매달 영업왕을 차지하는 이가라시 선배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아오야마는 야근 수당은 없고 지각비는 있는 기묘한 회사생활을 이어간다.
*일본 청년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알리기 위해 사용된 말로, 고용 불안 상태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불합리한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을 뜻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직장인이 되었지만, 회사에서 아오야마는 직장'인'이 아니다. 부장은 업무에 능숙하지 않아 실수가 잦은 아오야마를 '쓰레기' , '쓸모없는 놈', '멍청이' 따위로 부른다. 부장이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발로 차고 다음날 아침 필요한 자료를 전날 밤에 요청해도 아오야마는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게 잘못되었다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사회초년생인 아오야마가 배운 것은 취업의 지난함과 '직장의 생리란 원래 그렇다'는 말뿐이다. 바르고 착하게 자란 청년답게 아오야마는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어렵게 따낸 계약에서는 실수가 발견된다. 부장의 명령에 따라 회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고 온 날, 아오야마는 벌벌 떨리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밤을 지새운다. 등을 굽히고 고개를 숙인 그 몸은 모욕이 무엇인지 아는 모양새다. 모멸감과 경멸감, 끔찍한 자기혐오를 익힌 아오야마의 눈에는 더 이상 생이 없다. '꺾일 마음이 없으면 견딜 수 있다'는 사내 규칙처럼, 아오야마는 감정이 거세된 기계의 형태로 변해간다.
나날이 부서져가는 아오야마를 붙잡은 것은 '야마모토'다. 야마모토는 전철에서 몸을 던져 죽으려 했던 아오야마를 잡아당겨 구해준 사람이다.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칠렐레 팔렐레 다니는 야마모토이지만, 사실 그에게는 사연이 있다. 바로 자신의 쌍둥이 형 '준'이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3년 전 자살한 것.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야마모토이기에, 그는 죽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아오야마의 뒷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모르는 타인이지만 너무도 아는 얼굴을 하고 있었던 아오야마를 차마 지나칠 수 없었던 야마모토는 동창생인 척 연기하면서까지 그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다. 그리고 일러준다. 중요한 건 일이 아닌 삶이라고. 퇴사가 자살보다 어려워선 안 된다고. 회사가 아닌,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살라고.
너무도 당연한 그 사실들을 뒤늦게 이해한 아오야마는 퇴사를 결정한다. 기왕 사표 낼 거 부장님 뺨이라도 한 대 갈겨주고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오야마는 품격을 지킨다. 나약해 빠져서 어디 가도 인간 노릇을 못할 거라고 폭언을 퍼붓는 부장에게 아오야마는 허리 숙여 인사하며,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해달라는 부탁도 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사람처럼 아오야마는 너그럽고 정중하다. 얼빠진 표정으로 노발대발 화내는 부장을 뒤로하고 돌아선 아오야마는 그렇게 서류가방을 붕붕 돌리고 펄쩍펄쩍 뛰면서 회사를 등지고 삶으로 나아간다.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아오야마는 옳은 선택을 했고, 죽을 바엔 회사를 관두라는 말은 백 번 맞다. 그런데 이상하게 찜찜하다. 아오야마가 떠난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회사를 옮기고 싶지만 날 써주는 곳이 없다고, 이제 지쳤다고 무너지듯 고백한 이가라시 선배, 부장이 소리치면 움찔 몸을 떨며 굳어있던 사원들, 자신을 자근자근 죽여가며 일할 사람들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아오야마는 떠났지만 삶은 계속 이어지기에 그는 다시 일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시 실수할 테고 실패도 할 테다. 그럼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일자리가 간절한 청년들을 볼모로 패악을 부리는 회사는 널렸기에, '사표'는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기에, 우리는 아름답게 마무리된 영화의 그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2020년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882명이다. 하루 평균 2.42명의 사람들이 과로하다가, 괴롭힘을 견디다가, 위험한 곳에서 일하다가, 자책과 멸시, 혐오를 견디다가 죽는다. 그 수가 지나쳐서 기록조차 되지 못하는 죽음들, 그 안에는 아오야마와 같이 막 사회에 나온 어린 목숨들이 많다. 그들 역시 아오야마와 똑같은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인생이 원래 그렇다', '회사가 원래가 그렇다', '이 정도도 못 버티면 안 된다' 같은 언어들. 하지만 이토록 많은 삶이 죽는 세상이 '원래 그런' 세상이라면, 그 세상은 틀렸다. 틀려도 단단히 틀렸다. 그러니 바로잡아야 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도록 가르치고, 미숙함이 능숙함으로 익어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회사를 관둘 수 없어 인생을 관두는 사람은 절대 있어선 안 된다.
회사를 그만두어도 되겠냐고 묻는 아오야마에게, 그의 엄마는 말한다. 옛날에 가난하던 시절에 너무 힘들어서 다 같이 죽어버리고 싶었는데, 너에게는 너만의 인생이 있다고 생각하니 네가 어떤 어른이 될지 너무 궁금했다고. 그래서 죽지 않았다고. 아오야마의 삶은 부장에겐 돈도 제대로 못 벌어오는 쓸모없는 삶이었지만, 엄마에겐 한없이 잘해주고 싶고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고 다음날이 궁금해지는 삶이었다. 죽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삶. 너무 소중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 그런 삶.
우리 사회가 일하는 몸들을 대할 때 필요한 것도 '소중하다'는 감각이다. '일하는 몸'이 된다는 것은 실적을 위해 나를 죽이고 숨기면서 부품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나의 존재를 충족시키며 존중하고 존중받고 의미를 찾고 배우는 몸이 된다는 뜻이다. 아오야마도, 나도, 내 주변의 친구들도 그리고 당신도 우리 모두는 서툴고 미숙한 시기를 통과해 '일하는 몸'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러는 동안 절대, 결코, 단 한 명도 죽어선 안 된다. 소중하니까.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소중한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