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

조울증 환자와 살아가기: 영화 <인피니틀리 폴라 베어>

by 사하


‘존버’, ‘혐생’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혐오스러운 인생’을 ‘존나 버티기’로 이겨내자는 거다. 초등학생도 ‘존버’를 하는 세상, ‘남들 하는 만큼 하기’가 너무 어려운 세상이다. 스트레스와 우울, 수면부족, 불면증 정도는 놀랍지도 않다. 입시, 시험, 취직 등등 각자 인생을 견디기도 힘겨운데 뉴스에서는 늘 한숨이 절로 나는 보도만 이어진다. 이런 세상에서 살다 보니 우울증을 비롯한 마음의 병이 생기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난다. 하지만 동시에 ‘정신병’에 대한 공포와 혐오도 늘어나고 있다. 정신병에 대해선 유독 ‘긍정적 마인드’와 ‘극복’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서 정신병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더욱 힘겨워 보인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다. 질병에 대한 ‘이해’가 아닌 ‘혐오’와 ‘격리’를 부추기는 사회에서는 아픈 사람도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도 점점 지쳐가고, 나아질 기회는 희미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아가기를 포기할 순 없다. 결국은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픔’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 한다. 당신이, 혹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그 힘듦의 순간들을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 <인피니틀리 폴라 베어(infinitely polar bear)>(2014)를 통해 이 ‘함께’의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본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매기(조 샐다나)는 두 딸 아멜리아, 페이스와 함께 보스턴에서 사는 흑인 여성이다. 남편 카메론(마크 러팔로)은 조울증으로 인한 감정 기복과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직장을 잃고 매기가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매기는 더 좋은 직장을 구하고자 노력하지만, 보수적인 보스턴에서 '엄마'인 매기는 취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뛰어난 능력을 가진 매기는 뉴욕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 합격하고, 취직을 위해 카메론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조울증 아빠'와 천방지축 두 딸의 우여곡절이 시작된다.



우리가 더 용감해질게요


4 (1).jpg 카메론(중앙)과 함께 살아가게 된 두 딸 페이스(왼쪽)와 아멜리아(오른쪽)

아멜리아와 페이스는 치료를 위해 몇 년 떨어져 살았던 카메론과 다시 함께 살게 되자 '절망'에 빠진다. 어렸을 때는 항상 재미있는 놀이로 놀아주던 아빠였지만, 사춘기인 두 딸에게 카메론의 들쑥날쑥한 성격은 버겁기만 하다. 카메론은 갑자기 옛날에 살았던 집을 구경시켜주겠다며 집주인과 다투기도 하고, 이웃사람에게 부담스러운 친절을 베풀어서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한다. 아멜리아와 페이스는 카메론에게 '창피해서 죽을 뻔했어요!'하고 외치기도 하고, 매기에게 빨리 오라고 전화를 걸기도 한다.

하지만 페이스와 아멜리아가 카메론을 무서워하거나 피하는 일은 없다. 두 딸에게 카메론은 그냥 '이상한 아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두 딸은 카메론이 창피한 일을 하면 창피하다고 말하고, 카메론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면 까르르 웃는다. 카메론이 조울증 환자라고 해서 크게 배려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물론 카메론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창피해하며 화를 내기도 하지만, 다만 그 행동까지도 카메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카메론의 곁에서 '함께 있기'를 선택한다. 페이스와 아멜리아는 카메론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으며 사랑한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있고, 그 믿음은 카메론을 '질병'으로 판단하거나 편견을 가지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카메론과의 관계를 지켜나가는 데 큰 힘을 준다. 이런 페이스와 아멜리아가 카메론에게 보이는 믿음은 두 사람이 순수하고 어리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카메론을 향한 매기의 믿음'이 기반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매기는 카메론의 조울증에 대해 특별한 편견 없이 '그냥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며, 페이스와 아멜리아에게도 카메론의 질병과 이상행동을 자연스럽게 이해시킨다. 페이스와 아멜리아는 매기가 카메론을 향해 보이는 지속적인 믿음과 애정 아래, 카메론이 조울증 환자이든 아니든 그냥 '아빠'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카메론의 조울증으로 인해 창피하고 힘든 일이 생겨도 잠시 창피해하고 잠시 힘들어할 뿐, 다시 카메론과 함께 새롭게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카메론이 화를 참지 못하고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놀라게 해서 미안해'하고 사과하자, 아멜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에요 아빠, 우리가 더 용감해질게요.' 하고.

서로를 위해 함께 노력해나가는 카메론과 아멜리아, 페이스의 관계는 돌보는 자와 돌봄을 받는 자가 나뉘어 기울어진 관계가 아니다. 카메론의 조울증은 그저 '카메론'이라는 사람의 일부로 이해될 뿐, 관계의 믿음을 훼손하지는 못한다. '질병'을 특별한 무언가로 해석해 '사람' 자체를 지워버리지 않는 일. '아픈 사회'에서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He Is Always Around, Always There

"고개를 돌리면 항상 거기에 아빠가 있어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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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카메론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은 카메론을 꺼렸고, 매기는 공부와 취직을 병행하느라 바빴고, 페이스와 아멜리아는 챙겨줄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카메론은 밀린 집안일들을 하다가 참지 못해 새벽에 술을 마시고 오거나 아이들과 말다툼을 하고, 화를 주체하지 못해 집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카메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조울증을 받아들이고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번번이 화를 내면서도 다시 스스로를 붙잡았다. 이러한 카메론의 노력은 아이들에게 가닿았고,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오자 아이들은 아빠가 해주었던 일들을 줄줄이 읊으며 '아빠는 항상 고개를 돌리면 거기에 있어줬다'라고 말한다. 앞서 아이들이 카메론에게 믿음을 보여주고 카메론을 돌보았듯이, 카메론도 아이들을 돌보면서 스스로 나아지는 노력을 이어간 것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관계'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민폐' 혹은 '열등함'으로 규정해버리는 현대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함을 드러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을 꺼려한다. '도움받는 일'이 '열등한 일'이라는 생각 속에서 '아픈 사람'과 그 사람을 '돌보는 사람'의 관계는 '희생적 관계'로 이해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약함'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서로가 필요하다. 서로의 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약함을 대하는 방식을 익히기 위해, 우리는 각자에게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것은 어느 누구 하나가 희생하거나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약함을 받아들이고 강해지는 일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카메론과 아이들의 관계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다. 카메론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는 믿음과 애정으로 스스로를 돌볼 수 있었고, 아이들은 카메론의 돌봄에 의해 점점 성장할 수 있었다. 카메론과 아이들이 그랬듯, 아프고 부족한 서로에게 기나긴 시간과 크나큰 노력이 되어주는 일, 그 시간과 노력을 함께 감당하는 일, 우리에게는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세상, '서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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