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픔에 참견하지 말기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by 사하

'짠 거를 많이 먹으니까 몸이 안 좋지'

'아픈 애가 커피를 그렇게 많이 마시면 어떡하니?'

'사소한 일에 그렇게 예민하게 구니까 건강이 안 좋아지는 거야'


'널 위해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하는 이런 '조언'들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명절 때 자주 접할 수 있는 '조언을 가장한 참견'들은 '아픈 몸'을 향하면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다. 가까운 사람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위로에 앞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한 적도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서 그래' '평소 자세가 안 좋아서 그런 거야' '너는 너무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서 그래' 등등, 아픈 사람이 아픈 원인을 찾아 해명하려는 시도는 비록 그것이 걱정에서 기반된 말이라고 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사실, 아픈 사람을 더욱 아프게 만드는 것이 이 같은 '참견'이기도 하다.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는 건강이 악화되고 질병으로 인해 삶이 뒤바뀐 경험을 다루며 '잔소리'와 '참견'들이 아픈 사람이 아픔에 집중하는 일을 어떻게 방해하는지를 설명한다. 하나의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같은 '참견 문화'는 아픔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고, 이는 특히 '여성'에게 가혹하게 드러난다.


사실 '여성의 몸'을 두고 입을 대는 문화는 너무도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잘 느껴지지도 않는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다이어트를 해보았을 것이다. 그중에서는 건강을 망칠 정도로 굶어본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거울을 보고 쌍꺼풀과 콧등과 피부 상태에 대한 고민에 잠겼을 것이고, 누구나 한 번쯤은 그날 먹은 음식 칼로리들을 계산해보며 절망에 빠졌을 것이다. 이렇듯 '이상적인 여성의 몸'을 만들려는 사회의 시도는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왜 여성복의 허리라인은 잘록하게 들어가 있는가? 왜 쇼핑몰의 모델들은 다들 저체중에 해당하는가? 왜 많은 직장에서는 '여성 직원의 용모'를 특별히 화장 방법과 머리끈 색, 구두 모양까지 정해두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다 보면 '여성의 몸'이 얼마나 세세한 방식으로 구성되어왔는지를 느낄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사회의 통제 아래 놓여있고, 그 통제는 여성의 몸을 향할 때 더욱 혹독해진다.


그렇다면 여성이 '아픈 몸'이 되었을 때는 어떨까?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는 아픈 몸이 된 후 여기저기서 '잔소리'를 들은 여러 경험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중에서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후 늦은 밤 미드를 보다가 시누이에게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들은 여성의 경험이 등장한다. '아픈 몸'을 가졌음에도 '엄마답게' 혹은 '아내답게' 건강을 챙기지 않았으니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여성의 경험은 그 시누이의 개인적인 성격 문제로 해석되기보다, '사회가 바라는 여성의 몸'에 '아픈 몸'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유방암 환자 여성'의 경험을 다룬 영화 <미스 유 올레디(Miss You Already)>(2017)를 리뷰한 이전 글에서도 다루어졌듯이, 여성은 아프기 전에 '엄마'와 '아내'가 되기를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엄마로서, 아내로서, 혹은 어떤 '이상적인 여성'으로서 존재하기를 요구받고, 이에 걸맞지 못한 몸들은 배제되는 동시에 그 책임이 개인에게로 향해진다. 뚱뚱한 여성을 '자기 관리가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위 사례와 같이 아픈 여성을 '이기적이다'라고 평가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여성에게 특히 이러한 참견이 쉽게 행해지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에 입을 대는 문화'가 만연화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고도로 자기 몸을 통제하고 요구받은 역할을 수행하도록 구성되면서 '다양한 몸을 드러낼 권리'와 함께 '아플 권리'도 박탈당하게 된다.


"아픈 몸을 향한 간섭과 통제의 말은 또한 내 몸이 사회적 시선에 감금되는 몸, 사회로부터 언제든 간섭받고 평가될 수 있는 몸이라는 느낌을 갖도록 만든다."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p.49


몸이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소유물 같지만, 몸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극도로 몸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일이 건강을 보장한다고 확언할 수 없듯이, 몸을 통제한다는 개념 자체는 어쩌면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일이 아픈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고 아픈 일을 '미안하게' 만들어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조언'도 '위로'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저런 참견들은 그만두고, 우리가 우리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자. 그것은 아픈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일, '곁에 있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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