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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un 14. 2021

헤이, 쥬드(Hey Jude)

실컷 울고 나면, 빠져나간 눈물만큼 슬픔도 사라질거야

실컷 울고 나면, 빠져나간 눈물만큼, 슬픔도 사라진단다.


아파트 잔디마당에서 발코니 음악회가 열렸다. 코로나로 지친 구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구청에서 마련한 행사였다. 구청 오케스트라와 국악연주단이 잔디 위에 악기들을 설치하고, 주민들은 발코니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우리 가족은 캠핑체어를 챙겨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 이미 많은 주민들이 돗자리나 의자를 준비해 앉아 있었다. 코로나로 떨어져 자리를 잡고, 마스크를 쓴 채 공연을 관람했다. 하지만,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음악은 사람들 사이를 따스하게 떠다녔고, 마스크 사이로 흘러 들어와 잠시나마 편한 숨을 쉬게 해 주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분들의 노래가 이어지고, 풍물패가 흥겨운 사물놀이를 선보였다. 국악 공연에 이어 오케스트라 공연이 이어졌다. 뮤지컬 가수의 파워풀한 노래에 조용히 환호를 외쳤다. 이어 색소폰 연주자의 독주 무대가 시작됐다. 익숙한 음악이 귀를 감쌌다.


높게 선 아파트들 사이로 하늘은 푸르렀고, 바람은 선선했다. 어디선가 오후 5시만큼의 해가 지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눈물이 마스크 사이로 흘러내렸다.


비틀즈의 <헤이 쥬드>였다.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은 일본에서 온 예술가 오노 요코와 사랑에 빠져 이혼을 한다. 다른 멤버인 폴 메카트니는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 받은 존 레논의 어린 아들인 줄리안 레논을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

아빠를 잃은 친구의 어린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예전에는 헤이 쥬드에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지 못했다. 곡을 만든 폴 메카트니 역시 곡을 발표할 당시에는 그런 의도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아마 아들을 버린 존에게 대놓고 이 노래는 네 아들을 위한 노래야,라고 하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존 레논이 죽고, 노래가 발표된 지 20년이 지나서야 폴은 노래의 진실을 밝혔다고 한다.  




나 역시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을 한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왔다. 아니, 솔직히 나에게 아픔이 있다는 걸 깨닫지도 못한 채 살아왔다. 너무 어려서 겪은 일이었고, 상처는 이미 내 삶과 하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6월의 어느 여름날 오후,

나는 색소폰으로 전해오는 노래 한 곡으로 예상치 못한 상처를 마주 보게 되었다.


And any time you feel the pain
언제든 네가 고통스러울 때는
Hey Jude, refrain
헤이 쥬드, 그만 멈춰
Don't carry the world upon your shoulder
온 세상을 네가 책임지려 하지는 마
for well you know that it's a fool who plays it cool
by making his world a little colder
네가 (상처를 입고) 너의 세상을 차갑게 바라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잘 알고 있잖니.


어린 나에게도 누군가 이렇게 말해 주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가난 속에서 홀로 자식들을 책임지게 된 엄마는 어린 나의 감정보다는 먹고살 일이 더 중요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사라지고, 일터로 떠난 엄마 없이 홀로 남겨진 어린 내가 보였다.

그 아이에게 이제라도 말해주고 싶었다.

힘들면 멈추라고, 네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너는 잘못이 없으니 착한 아이라는 가면 속에 숨지 말라고, 상처가 두려워도 냉소적인 인간이 되지는 말라고.

괜찮아 질거니, 조금만 용기를 내라고...


음악이 울려 퍼지는 동안 내 앞엔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세상이 있었다. 너무 오래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그럼에도 햇살은 눈이 부셨고, 잔디는 푸르렀다.

뛰노는 아이들은 아무 근심 없이 행복해 보였고, 주인 품에 안긴 강아지는 편안해 보였다.



Hey Jude 헤이 쥬드
don't make it bad
너무 아파하지는 마
take a sad song
슬픈 노래를 듣다 보면
and make it better
조금은 나아질 거야


내가 나를 안아주기로 다. 결국 아픔을 받아들이는 것도 벗어나는 것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아무리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어린 나에게 위로의 음악을 들려준다.


실컷 울고 나면, 빠져나간 눈물만큼, 슬픔도 사라진단다.

어린 나야, 내 말을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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