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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un 19. 2021

혼 비행의 추억 1.

혼자 비행기를 타는 설레임

나의 첫 혼(자) 비행(기 탑승)은 스물두 살, 대학 4학년 때였다. 친한 친구가 1년 동안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돌아오기 전에 한번 놀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대학 졸업 전에 뭔가 신나는 일을 기대했던 나는,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네 보습학원에서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세 달을 일하고 나니,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와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경비가 모아졌다.

무식하면 용감한 게 맞다. 나는 해외여행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무작정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배낭을 빌려 짐을 다. 하룻밤 오사카 공항에서 스톱오버를 하는 기간을 포함해 8일간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처음으로 여권도 만들고 들뜬 마음을 안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은 공기부터가 달랐다. 처음 본 비행기는 기대만큼 웅장했고, 첫 해외여행이라는  기대에 부푼 나의 심장은 드럼 비트처럼 쿵쾅거렸다.

당시 가장 저렴한 비행기는 일본 ANA 항공의 오사카 경유 시드니 항공권이었다.

 번에 두 나라를 가게 되다니, 

솔직히 직항보다  경유가 좋았다. 비행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내식도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요즘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때는 비행기에 흡연석이 있었다.

맞다! 그땐 비행기 안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흡연가들이 무척 그리워할 문화가 아닌가)

당시 나는 담배를 피우는 게 꽤나 멋지고 반항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담배를 피지는 못했고(너무 쓰고 독했다),

가끔 멘솔 담배를 뻐끔거리며 피웠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좌석을 흡연석으로 예약했다.

오사카 공항에서 시드니까지 12시간 동안 나는 비행기에서 멘솔 담배 몇 개비를 피웠다.

좌석 팔걸이에 조그만 재떨이가 달려 있었다. 기내식과 함께 무료로 제공되는 와인과 맥주도 몇 이나 마셨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이라도 하고 싶은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


그게 나의 첫 혼 비행의 추억이다.

내 인생을 바꾼 시드니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 역시 혼 비행이었다.



이 역시 평범하진 않았는데,

처음엔 스톱오버를 하는 오사카 공항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그런데 시드니에 있는 동안 항공권을 예매했던 여행사에서 메일이 왔다. 오사카 공항이 밤에 폐쇄되어 공항에서 밤을 새울 수 없으니 하룻밤 묵을 숙소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가져온(정말이지 딱 먹고 잘 만한) 돈을 모두 쓴 상태였다. 아직 신용카드도 없던 시절이었다. 급하게 서울 친구에게 연락

공항 근처 숙소 예약을 부탁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오사카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었다.

밤늦게 도착해 셔틀을 타고 숙소로 갔다. 주머니엔 동전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날 밤, 잠을 자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호텔 침대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공항을 밝히는 불빛뿐, 사방은 짙은 어둠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음식 사 먹을 돈도 없었다.



배낭을 뒤져보니 시드니에서

먹다  피넛버터 통이 있었다.

그 밤에 나는 오시카의 호텔 방에 앉아 홀로 피넛버터를 스푼으로 떠먹었다. 뻑뻑한 피넛버터를 먹고 있자니 목이 매었다.

 호텔은 처음이라 물이나 커피, 차를 공짜로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일본어는 한 글자도 몰랐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후 새벽 5시에 셔틀을 타고 다시 공항으로 갔다.

호텔에 머문 시간은 5시간이 되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누구라도 같이 있었다면 그 호텔방도 피넛버터도 그렇게 삭막하진 않았을까.


어쩌면 혼자여서 더 오래 기억하게 된 아니였을까.



나에게 혼 비행은 그 시작부터 찬란하였기에,

나는 여전히 혼 비행을 그리워한다.





기억해보니, 오사카 공항에서 또 한 번의 위기가 있었다. 공항에 들어가려면 2000엔(한국돈 2만 원 정도)의 공항세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항에서 머물다 비행기를 갈아탔으면 내지 않았을 세금을 밖에 나갔다 왔기 때문에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행기 시간은 코 앞인데 돈이 없어 공항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려왔다. 아주머니 한분이 공항에 들어가고 있었다.

 

"죄송한데, 한국 대학생인데, 제가 공항세를 내야 하는 걸 몰랐어요. 지금 들어가야 하는데, 2000엔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계좌 알려 주시면 서울 가서 바로 보내드릴게요."


울 것 같은 내 표정 때문이었을까.

그분은 선뜻 2000엔을 빌려주셨다.

일본에 사는 교포 분 같았는데,

 그 은혜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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