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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un 07. 2021

닭죽 한 그릇의 위로

어제 날씨가 따뜻할 거란 예보에 가볍게 옷을 입고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거센 바람까지 불어왔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하며 도서관에 들러 예약한 책을 빌려 돌아왔다.


저녁을 준비하는 데, 으슬으슬한 기운이 느껴진다. 대충 허기만 채우고 온갖 것들을 뒤로한 채 침대로 직행한다.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 오랜만에 뉴스를 다.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기자의 설명. 게다가 증상이 여성에게 더 많이 발병하고 치명적이란다.

요즘 기운도 없고 자꾸 짜증이 나고 눕고만 싶은 게, 코로나와 여자라는 두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켜 생겨난 증상인가 싶다.      


팔다리가 약간 욱신거리는 데 심하지는 않다.

 푹 자고 나면 괜찮겠지.

그런데 잠이 오지 않는다. 우울증의 대표 증상 가운데 하나가 불면증이라는데, 나 정말 코로나 블루인가? 잡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이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보단 훨씬 움직이기가 수월하다. 그래도 이런 날이면 내가 사랑하는 나만의 활력 레시피를 꺼내 들어야 한다.     


바로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가 아닌

‘내 몸을 위로하는 마법의 닭죽’.      


어려운 음식을 만들면 몸살이 더 심해지니까 최대한 간단하게 만드는 게 포인트다. 껍질을 벗긴 닭에 물을 넉넉히 붓고, 통마늘과 대파, 찹쌀, 소금을 넣고 끓인다.

온 집 안에 마늘향(드라큘라는 감히 얼씬도 못 할 정도인데, 아이들이나 고양이도 이 냄새가 싫은지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이 가득 찰 때쯤 찰기가 퍼진 닭과 죽을 한가득 담아 그릇에 담는다. 내 사랑 후춧가루를 잔뜩 뿌리고 수저를 들어, 호호 불며 따뜻하게 먹는다. 온몸에 박힌 몸살 가시들이 후드득 떨어져 나간다.     


중요한 건 닭죽을 먹고 난 후, 가능하면 그 즉시 침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쉼.     


솔직히 내 몸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낼 때는 좋은 음식을 먹고 푹 쉬는 게 최고의 약이다.

모르는 일도 아닌데,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나만을 위한 음식을 만들고 이삼일 쉬는 게 쉽지 않았다.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때문에, 직장을 다닐 때는 직장 때문에, 결혼을 하고는 남편 때문에, 아이를 낳고는 아이 때문에….      

언제나 나보다 다른 뭔가를 앞세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귀에 이런 말이 들려왔다.     


“그게 뭣이 중헌디?”     


그래, 그게 뭐가 중요했을까.

아니 중요한 건 맞다.


하지만 언제나 최우선은 나여야 한다.

 ‘내’가 있어야 가족도 친구도 세상도 존재한다. 사실 좀 쉬라는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기어이 뭔가를 해서, 대단히 이룬 것도 없었다.     


요즘은 몸이 신호를 보내면 최대한 모든 동작을 멈추려고 노력한다. 움직일 힘이 남아 있으면 닭죽 정도는 끓인다.

닭죽이 끓는 동안, 내가 정신을 쏟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 생각들이 결국 몸까지 와닿은 것이다. 이제 그만하라고, 좀 쉬어도 된다고 말이다.     


닭죽 한 그릇을 먹는 동안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가자고,

따뜻한 국물 속에 비친 내 얼굴이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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