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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온전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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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Nov 05. 2021

강릉에서 온 편지


우편함에 편지가 들어 있었던 게 언제였을까?


이메일과 다양한 앱으로 모든 고지서가 바뀌고, 카톡과 문자로 안부를 대신하면서 손편지를 써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집 우편함엔 간간이 시세만 바뀌는 대출 광고지만이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그래도 가끔 뭐가 있을까, 아파트 현관을 지날 때면 쓰윽, 우편함을 열어보기는 한다.


그랬는데,


오늘은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엽서가 우편함에 가득, 무려 6장이나 들어 있었다.

꺼내 보니, 강릉에서 온 엽서였다.


이게 뭘까, 기억을 더듬으니 1년전 강릉 여행이 떠올랐다.




작년, 코로나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고, 남편은 재택근무를, 나 역시 외부 활동을 모두 중단한 채, 식구 넷에 고양이 한 마리가 매일 집에서 볶작이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던 나는,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도서관이나 서점, 커피숍에라도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면 좋을 텐데,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다.


기분이 다운되고, 특히 밥 때가 되면 힘이 빠졌다. 입 짧은 아이들과 남편까지 하루 세끼를 매일 해내는 게, 요리를 못하는 나에겐 벌 서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음식이 싫다며, 수저를 내려 놓는 아이들을 보면 무기력해졌다.





그렇게 지쳐가던 어느날, 무작정 여행가방을 쌌다. 어디든 가자고. 코로나 따위 어떻게든 피해보자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연고도 없는 강릉으로 갔다. 가는 길에는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애니멀이야기라는 동물체험공간에 들렀었다. 도마뱀과 친칠라를 키우고 싶어하던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경포대 해변은 조용했다.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푸른 바다는 여전히 그곳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올려다 본 하늘은 계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고, 소나무 밭 사이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맡은 공기는 떠나온 집과는 달리 촉촉하고 푸릇했다.

언제나 그렇듯, 대자연 앞에서 나는 그저 작고 작은 존재가 된다. 그런 미미한 존재의 고민쯤이야, 그보다 더 하찮아진다.


무겁던 짐이, 한낱, 먼지로 날아가는 순간이다.


오길 잘했어, 스스로 말했다.

잘하고 있어, 라고도.


그 해변 어딘가에, 느린 우체통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후에 배달을 해 준다고 써 있었다. 우리는 약간의 의심을 품은 채, 엽서를 썼다.

정말, 이 엽서가 무사히 도착할까?

그래도 1년 후의 나에게, 아이들에게 뭐든 적어 보고 싶었다.



엄마 오늘 애니멀이야기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내가 키우고 싶은 카멜레온도 보고, 김00이 키우고 싶어하는 페릿과 친칠라도 볼 수 있었어요. 카멜레온을 키워도 되나요? 카멜레온은 소리도 안 내고 작잖아요. 그러니까 키우게 해주세요.



저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요. 왜냐하면 강아지가 귀엽기 때문이에요.
강아지를 키우게 해주세요.


안녕. 지금 우리는 강릉에 와 있어. 아빠는 너희들을 몹시 사랑한단다.
부족한 아빠지만 항상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주어 고맙단다.
여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모두 사랑해. -아빠가


나에게.
2020년은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
앞으로도 얼마나 더 버텨야할 지 모르겠지만, 힘내자! 이 시간이 훗날 더 기억나는 날들이 될거야.
1년 후 이 엽서를 받을 때면 더 많이 행복해 있기를.
 - 무작정 강릉에서 1박을 한 날




엽서를 읽다가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소원을 이루었다는 것을.


여행에서 돌아와 작은 아이의 소원대로 크레스티드 게코(코리라는 이름의 도마뱀)를 입양했다. 아쉽게도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지만, 코리와의 추억은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다.

그후, 큰 아이의 소원대로 강아지도 입양했다. 강아지는 이제 1살이 넘었고, 우리는 어엿한 애견가족이 되었다.

남편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졌고, 그의 소원대로 나는 오래오래 잘 살고 있다.


나 역시, 그때의 강릉에서보다 더 행복해진 것 같다.

여전히 혼자 있을 시간은 부족하고, 밥 차리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모두 적응의 동물이라, 잘 적응해 가고 있다.




이렇게 강릉에 대해 쓰다보니, 강릉에 가고 싶어졌다.

아직도 엽서를 쓰는 일이 가능하다면, 다시 한번 엽서에 소원을 적어보고 싶다.

구체적이고도, 진실한 소원을 말이다.


떠나서야만, 간절해지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간절함이 세상을 움직이기도 한다.


해가 가기 전, 나는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내년 이맘 때쯤이면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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