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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Sep 08. 2020

달달 모카치노

나이 든 고양이 모카와 어린 강아지 치노의 따뜻한 이야기


한 달 전쯤 우리 집 장수 고양이 모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까칠한 14살 고양이 모카에 관해 적어 보았는데, 그 글을 적고 나니 모카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너무 오래 함께 살아온 사이였기에, 솔직히 모카는 이제 그냥 가족 같다. 그것도 사랑보다는 책임과 의무가 더 많이 남은, 나이 든 가족.


내 딸들은 그런 모카에게 그닥 큰 애정을 느끼지 못했고, 모카 역시 그랬다. 코로나로 반년 넘게 답답한(?) 일상을 보내며, 학교도 못 가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못하는 9살 둥이들이 안쓰러웠다. 물론 나 자신도 안쓰러웠지만...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나 때문에 태어나서부터 집 밖 생활에 더 익숙하던 아이들이 집에만 머무는 게 답답할 것 같았다. 이것도 물론 나 자신이 더 그랬지만...




봄 무렵, 아이들이 갑자기, 그리고 아주 집요하게 동생을 낳아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심심함을 동생이라도 생기면 나아질까 기대하는 것 같았다. 9살 다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힘든 임신과 육아의 굴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니, 무엇보다, 난 너무 늙었다. 무슨 늦둥이도 아니고...


아무튼 막내에 대한 집착은 나날이 더해가고, 그 와중에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대안이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 집엔 이미 까칠냥이 모카가 턱 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아지라니, 딸들아... 아무리 심심해도 그건 안돼...

그렇게 아이들을 달래며 다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7월에 도마뱀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크레스티드 게코를 입양했다. 애완 도마뱀 중에 유일하게 사료를 먹는 작고 귀여운 아이였다. 다른 종류는 벌레를 먹여야 해서 도저히 데려올 수가 없었다. 녀석의 이름은 코리로 정했다. 생각보다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


코로나 시대의 삭막함과 불안함에 힘들던 나에게 코리는 한줄기 따스한 빛 같았다. 내가 도마뱀에게, 작은 손가락만 한 도마뱀에게 마음을 빼앗길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코리가... 한 달 만에 죽었다.

코리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다시 쓰고 싶다. 지금은 아직 힘들다.



코리가 떠나고,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끈적한 습기처럼 온몸에 감겨 들었다.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어도 한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충격도 클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과 다시 의논을 했다.

사실 3년 전, 익숙한 동네를 떠나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진지하게 강아지를 입양하려고 했었다. 몇 날을 분양 게시판을 보고, 맘에 드는 녀석이 있어 멀리 차를 타고 보러 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그렇게 무야무야 되고 말았었다.  


그런데, 이제 정말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겁이 났다. 우리가 잘 키울 수 있을까. 쌍둥이 키우는 것도 힘에 부치는데,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쩌지, 모카랑 매일 싸우기라도 하면, 이제 강아지까지 키우면 여행 좋아하는 우리가 어디 나가지도 못할 텐데 등등등. 안 좋은 생각이 끝없이 떠올랐다.

남편과 나는 최종 결정을 서로에게 미루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9월이 되었다.


마침내 우리 가족에게 꼭 맞는 막내를 들이기로 결심했다. 신중하게 결정하겠지만 직감을 믿자고.

우선 모카보다 작은 강아지 종으로 해야 했다. 모카는 자기보다 덩치가 크지 않으면 그래도 덜 민감한 것 같았다. 그리고, 무조건 수컷으로. 모카까지 여자 넷인 우리 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아이들과 강아지 백과를 찾아보며 마음에 드는 종을 찾았다. 일단 예전부터 키우고 싶었던 포메라니안과 몰티즈, 요크셔테리어가 후보로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애완견 중 가장 작다는 치와와가 눈에 띄었다. 그중에도 털이 긴 장모 치와와가 너무 예뻐 보였다. 강아지 종을 정하고 인터넷으로 여러 곳을 알아보았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어느 날, 동네 팻 샵에 장모 치와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남편과 둘이 먼저 아이를 보러 갔다. 태풍이 올라오던 날, 비바람을 뚫고 찾아간 그곳에서 우리는 운명처럼 치노를 만났다. 우리가 원하던 바로 그, 초코탄 장모 치와와 치노를...


남편은 한눈에 치노를 알아봤다고 한다. 이 녀석이 우리 집 막내라고.


그날 저녁 아이들과 같이 치노를 데리러 갔다. 유난히 의심이 많은 우리 부부에게도 분양 샵의 주인아저씨는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다양한 사전 교육을 받고 치노를 안고 집으로 왔다.


1킬로의 작은 생명, 아직 낯선 세상에 모든 게 두려운 나의 강아지...


우선 강아지의 이름을 정해야 했다. 누리, 방울이, 천섭이, 제임스, 메리 등등등 수십 개의 이름이 후보로 나왔다. 그러다 치와와는 멕시코 출신이니 나초라는 이름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치노를 나초라 부르니 뭔가 어울리지 않았다. 아쉬웠다. 다시 고민. 치노는 갈색에 연한 베이지가 섞여있다. 우리 집엔 모카라는 고양이가 있다. 모카는 검정에 흰색이 섞여 있어 모카커피의 모카가 되었었다. 그렇다면 나초도 커피 종류를 따고 싶었다. 라떼? 아니아니. 스벅? 아니아니. 카푸치노? 음... 아, 모카치노!! 치노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니 우유 거품을 뜻한단다. 좋아, 이제 너는 치노다! 모카와 함께 치노! 모카치노!!!


예상대로 모카는 치노가 집에 온 지 이틀 정도 어딘가에 숨어서 생활했다. 정말이지 한결같은 고양이다. 치노는 처음 집에 온 날부터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있다.

그런 치노를 보며, 치노와 모카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앞으로 쓰게 될 글들은 나의 나이 든 고양이 모카와 나의 어린 강아지 치노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마도 치노에 대해 압도적으로 이야기하게 될 편파적 기록이기도 하다. 치노는 이제 고작 80일을 산, 내가 돌보고 끝까지 책임져야 할, 나의 작은 강아지이기 때문이다.


먼 훗날, 치노가 모카처럼 나이가 들었을 때, 장수 강아지 치노의 비밀을 밝힐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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