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lla Sep 13. 2020

치노의 첫 여행

얼떨결에 캠핑을


올해로 캠핑 8년 차.

치노가 오면 캠핑을 많이 다닐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애견 캠핑장만 찾아다니려면 선택지가 적어질 게 분명했다. 그동안 정들었던 캠핑장들도 갈 수 없을 것이다. 얻는 게 있으면 포기하는 것도 있겠지. 치노를 데려오기 전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차박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안 그래도 지난 8월, 고민 끝에 차 위에 루프탑 텐트를 달았다. 치노와 함께, 내지는 몰래(?) 차박을 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아이들과 치노를 데리고 차박으로 유명한 바닷가로 떠났다. 그냥 상황을 본 후 하룻밤 묶게 되면 묶고, 아니면 그냥 돌아올 생각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평일임에도 해변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최대한 사람들과 떨어져 뻘에서 게도 잡고 나름 재밌는 시간을 보낸 후, 조심스레 우리의 첫 차박을 준비했다. 늘 캠핑장에서만 캠핑을 하던 우리에게 차박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왠지 눈치 보이고, 괜히 걱정스러운...


해변가 커피숍 주차장에 차박을 하는 차들이 길게 주차되어 있었다. 운 좋게 바닷가쪽으로 주차를 하고 루프탑을 펼쳤다. 의자를 세팅하고 저녁 먹을 준비를 하는데 아저씨 한분이 다가온다. 뭔가 느낌이 안 좋다. 아저씨는 남편에게 다가가 여기는 캠핑장이 아닌 주차장이다, 차 트렁크에서 차박을 하는 것 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텐트까지 치는 건 안 된다고 말했고 우린 알겠다며 순순히 텐트를 걷었다. 이미 차 위에서 자리를 잡은 아이들과 치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둘러 근처 캠핑장을 알아봤다. 코로나로 문을 안여는 곳도 있었고, 애견은 출입이 안 되는 캠핑장도 많았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쉬워 애견 캠핑장으로 검색을 했고, 다행히 1시간 거리에 빈자리가 있다는 통화를 한 후 급하게 강화도로 이동했다. 우연히 찾은 캠핑장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잔디도 좋았고 화장실도 깨끗했다. 차를 옆에 데고 텐트를 치기도 좋았다. 트렁크에 기본적인 캠핑장비는 싣고 다니기에 간단하게 타프를 치고 저녁 준비를 했다. 사온 닭에 물과 소금 후추만 넣고 푹 끓여 백숙을 해 먹었다. 입 짧은 아이들도 잘 먹어 기분이 좋았다.


작은 텐트에 치노의 자리를 마련했다. 담아온 사료와 물을 주니 어찌나 잘 먹고 잘 노는지. 이제 고작 집에 온 지 3일짼데 제대로 우리 식구가 된 기분이다. 역시, 여행 좋아하는 우리 집 막내 맞네, 장작을 펴고 누나 무릎에서 생애 첫 불멍을 하고 있는 치노를 보며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가족과 캠핑을 다닌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표기해야 할 일상도 아니었다.




그날 밤, 텐트에서 치노는 깨지도 않고 푹 잘 자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쌍둥이 딸들과 조리원에서 집에 온 밤부터 1년이 넘게 밤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예민한 둥이는 낮밤이 바껴 밤새 울다 새벽이 멀어져 갈 쯤에야 잠이 들었다. 아이가 하나라면 남편과 번갈아 잘 수 있었겠지만 각자 한 아이씩 맡아야 해서 밤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을 못자면 견디지 못하는 나에겐 하루하루가 너무도 힘들었다. 그때 난, 엄마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것 같다. 그저 이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너무 약해서, 너무 쉽게 사라질 것만 같던 작은 생명들...


둥이들이 커가며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목을 들지 못해 숨을 못 쉬는 건 아닌지, 젖을 못 먹어 굶는 건 아닌지, 침대에서 떨어져 다치지나 않을지 하는 원초적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이제 두 달 된 치노를 보며 아기 때 둥이들이 자꾸 떠오른다. 그때는 모든게 처음이라 내 딸들을 키우는 즐거움을 한껏 누리지 못했다. 오히려 매일매일 육아에 지쳐 쓰러지는 삶이었다. 다행히 치노는 건강하고 활발하고 게다가 밤에 잠을 잘 잔다. 그래, 그거면 된다. 게다가 차를 잘 타고 여행을 좋아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게는 완벽한 막내다. 좀 더 커서 무슨 말썽을 부릴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자. 아마도 이제 곧 사춘기를 지나게 될 누나들이 벌일 말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우리 가족 모두가 차박을 하기엔 매우 큰 차가 필요할 듯하다.

차를 바꿔야 하나... 막내 치노도 왔는데 말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달달 모카치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