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잿더미
열병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의사는 내 몸이 마침내 도시의 공기에 완벽히 적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적응이 아니라, 항복이었음을 나만이 알고 있었다. 파란색을 향한 열망은 분명 나를 움직이게 할 유일한 불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불을 들고 경계를 넘을 용기가 없는 겁쟁이에 불과했다.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한 불길은 결국 방향을 틀어, 가장 가까운 땔감이었던 나 자신을 남김없이 집어삼켰다. 열망이 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열망의 연료가 되어 전부 타버린 것이다. 이제 내 안에는 텅 빈 잿더미만이 남아, 작은 한숨에도 쉬이 흩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러나 재 속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남아 있었다. 낡은 수기에서 읽었던 문장. ‘도시의 가장 높은 첨탑’. 그곳에 가면, 아주 찰나의 순간, 경계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의 일과에는 새로운 순서가 추가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도시의 한편에 우뚝 솟은 첨탑으로 향했다. 누구도 오르지 않는 곳이었다.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오를 때마다 발자국이 희미한 과거의 화석처럼 찍혔다.
첨탑의 꼭대기는 도시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오직 바람과 안개의 소리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공간이었다. 나는 그곳의 작은 창문에 기대어 몇 시간이고 밖을 내다보았다. 보이는 것은 언제나 똑같은 풍경. 넘실거리는 흰색의 바다.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몇 달간은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은 안개가 옅어질지도 몰라. 오늘은 바람이 불어 저 장막을 걷어낼지도 몰라. 심장은 매일같이 희미한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가, 해가 저물고 안개의 농도가 더욱 짙어지면 풍선처럼 바람이 빠져나갔다.
나는 실망감을 애써 외면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책에도 쓰여 있지 않았는가. ‘가끔 아주 맑은 날, 그 찰나의 순간’. 그것은 매일같이 일어나는 기적이 아닐 터였다. 인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계절이 한 바퀴 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첨탑을 오르는 행위의 의미는 완전히 변질되어 있었다. 그것은 희망의 증거를 찾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불꽃이 완전히 꺼졌음을 확인하는 장례 의식과 같았다.
나는 매일같이 내 희망의 무덤을 찾아가는 순례자였다. 계단을 뒤덮은 먼지는 내 열정이 남긴 차가운 재였다. 처음 나의 발자국을 희미한 화석 같다 여겼던 감상은 사치스러운 과거가 되었다. 이제 계단을 뒤덮은 것은 셀 수 없는 실패의 퇴적층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과거의 나를 밟고 올라서는 무의미한 행위의 반복.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파고드는 절망의 궤적처럼 느껴졌다.
나는 길을 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잿더미를 꾹꾹 눌러 다지고 있었다.
첨탑의 꼭대기에서 마주하는 흰색의 풍경은 나를 압도하는 현실이기 이전에, 텅 비어버린 내면의 연장선이었다. 첨탑에 오르는 발걸음은 의무감처럼 무거워졌고, 창밖을 내다보는 눈은 아무것도 담지 못했다. 나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 그곳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 안의 잿더미가 얼마나 차갑고 무거운지를 매일 확인하고, 절망에 익숙해지기 위해 그곳에 갔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실체도 없는 파란색 하늘? 낡은 책에 적힌 몇 줄의 문장이 정말 진실이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그것은 안개를 벗어나려다 미쳐버린 자의 망상일 뿐인지도 모른다.
의심은 곰팡이처럼 내면에서 피어났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선생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헛소문에 현혹되지 마라.’ 그들의 말이 맞았다. 나는 지금 가장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정해진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때, 나 혼자 이 높은 곳에서 잡히지 않는 신기루를 쫓고 있었다.
불안했다. 뒤처지고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이 도시에서 뒤처진다는 것은 곧 소멸을 의미했다. 뒷자리의 아이처럼.
나는 첨탑에 가는 횟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 그리고 한 번. 마침내는 한 달에 한 번조차 가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의식적인 결정이라기보다는, 서서히 물에 잠기는 난파선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파란 하늘에 대한 열망은 이제 희미한 기억이 되었다. 때때로 잠자리에 누우면 그 선명한 푸른빛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어 필사적으로 그 잔상을 지워냈다.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고통이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는 자는 영원히 불행하리라. 나는 불행해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고 안전하게 살고 싶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을. ‘파란색’이라는 단어를 듣지 않았더라면, 그 낡은 책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이 상냥한 질식 속에서 안온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갔을 것이다. 앎은 병이었다. 한번 알아버린 이상, 이전의 상태로 완벽히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외면하고 덮어두는 법을 택했다. 내 안의 불씨 위로 축축한 안개의 흙을 퍼부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눈이 따가웠지만, 이내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2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다시 모범생으로 돌아와 있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업을 들었고, 누구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첨탑의 존재는 까맣게 잊은 듯 행동했다. 나는 정해진 길 위를 착실하게 걸었고, 마침내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역시 거대한 흰색 상자였다. 고등학교보다 조금 더 클 뿐,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여전히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나는 무기력했다. 그것은 열병을 앓던 때의 그 격렬한 고통이나 절망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평온함에 가까웠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안개가 흘러가는 대로, 시스템이 이끄는 대로 내 몸을 맡길 뿐이었다.
꿈을 꾸는 것은 사치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꿈을 죽여야만 했다. 나는 내 손으로, 내 안의 파란 하늘을 질식시켰다. 그리고 그 공허한 자리에, 도시는 ‘안정적인 미래’라는 희고 매끄러운 대리석을 채워 넣었다. 나는 텅 빈 눈으로, 그 대리석의 차가운 표면을 어루만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