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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호 산책] 사람따라 길따라 걷다

도야호 여행 ep6. 도야 저녁 오모야 + 도야호 산책길 +공원

by 사이 Feb 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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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호 여행 ep5. 한껏 단풍 담은 우스산 에 이은 글입니다.




그날밤 우린 그렇게 만났다


만세각 노천탕에 앉아 붉은 노을과 팡팡 불꽃을 보고 나면 제법 늦은 시간. 시골동네에서 그 시간까지 영업하는 곳이 많지 않아 선택의 폭이 좁다. 모츠나베(내장탕)를 좋아하진 않지만 뜨끈한 국물에 밥 한 그릇이면 됐지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오모야. 어두컴컴한 길가에 앉아있는 이곳에 들어서니 나 말고도 혼자 온 언니 한 분이 앉아있다. 마음은 이미 정하고 왔지만 이곳 추천메뉴를 살핀다. 전갱이튀김, 명란 버터밥 등등. 익숙한 것에 손이 간다. 역시나 정한대로 모쯔나베와 버터밥, 그리고 특별히 닭날개 구이. 혼자지만 먹는 땐 아낌없이, 후회없이 3개나 선택! 주문하고 주변을 살피니 여전히 이곳에는 나와 긴 머리를 쫑 하고 묶은 옆자리 언니뿐. 주인장과 주인장 어머니. 아니면 주인장과 주인장 아들이라 하겠다. 식당을 운영하는 모자(母子).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 없어 공간도 여유롭고 밀린 주문도 없어 시간도 여유롭다. 뚜딱뚜딱 조리하는 소리만 날 뿐 정적 아닌 정적이 흐른다. 나와 같이 혼자 온 언니에게로 관심이 흐른다. “안녕하세여” 서로 인사 나누며 시작된 대화. 한국사람과 중국사람, 일본사람의 서툰 영어와 일어가 오가는 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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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까지 보고 늦게 방문한 오모야 (左) / 오늘의 추천메뉴 (中) / 뜨끈한 국물과 언제나 좋은 닭날개 (右)




때론 낯선이가 가장 편하다


언니는 베이징에서 왔고 코로나 여파로 한동안 쉬지 못하고 일했던 의사라고 한다. 언니의 얼굴이 어둡다. 부모님의 바램으로 의사가 되었는데 이 길이 제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나이 들어 노쇠해지면 병원 갈 일 많으니 본인들(그녀의 부모님) 편하자고 자식 의사 만드셨다고 생각한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다고 토로한다. 처음 만나 우리 사이. 고작 해야 1시간 남짓 인 것 같은데 그녀는 의사이나 그 직업이 싫고 부모님이 버겁다는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거침없다’의 의미는 침 튀겨가며 거칠게 이야기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여과없이 나에게 잔잔히 조근조근 끄집어 내고 있었다. 그래서 인지 그녀는 조용히 위로가 되는 고요한 '쉼', 시골마을 도야에 4일이나 머문다고 하다. 수긍이 간다. 도야는 그런 곳이다. 조용히 사색하고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여백이 많은 곳.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온 정신이 뒤흔들리는 시간을 첫 도야에서 보냈다. 그리고 우스산에서 도야호까지 달려 내려오며 불편한 생각들을 떨쳐내고 이번에는 편안 마음으로 이곳의 고운 단풍을 즐기러 온 참이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텐데 별달리 해줄 말이 없다. 그냥 들어주는 수밖에. “이해한다. 너를 응원한다”는 말도 어색하다. 1인인데 3인처럼 시킨 메뉴에서 가장 맛있는 닭날개를 그녀에게 주는 정도가 내가 지금의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다. 




한중일이 만나 영어로 대화하는 밤


‘나, 베이징 언니 그리고 주인장 아들’ 순으로 또르륵 한 살 씩 많다. 비슷한 나이라 그런지 제법 말이 잘 통한다. 한중일이 낯선 언어, 짧은 영어로 긴 대화를 했던 밤이다. 중국에서 인스타나 구글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놀랐고 치토세공항에서 이곳까지 버스로 오면 JR기차 보다 반값이라고 해 다음에는 버스로 올까 생각도 해본 밤이다. 잠깐이었지만 여러가지 의미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밤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더 솔직해지는 것 같다. 그녀처럼. 다시 만나진 못 하겠지만 그녀가 불편한 마음을 끄집어 내고 좀더 마음이 편해졌기를, 지금은 좀 나아졌기를 바란다. 


한중일이 맛나 영어로 대화 나눈 밤한중일이 맛나 영어로 대화 나눈 밤




비록 우산은 뒤집혔지만 
단풍보며 걷기 좋았던 산책길

한중일의 깊은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비는 곧 쏟아질 것 같고 바람도 제법 세게 분다. 날이 좋았으면 자전거 빌려 타고 공원 한바퀴 돌았으면 했는데 어제 자전거 렌탈샵 영업시간이 1시간도 안 남은 상황에서 가니 친절하게도 주인 아저씨가 돈 아깝다고 내일 오라 했지만 여행객인 나에겐 내일은 운(날씨) 좋아야 할 수 있는 것이 ‘자전거 타기’였다. 별수 있나 우산 들고 걸어 본다. 산책로 길 따라 고운 단풍도 보고 그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겠다.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단길, 꽃길 아니 단풍길 이라 해야 하나... 빨갛고 주홍빛에 노란색도 섞인 단풍이 초록 풀밭을 배경으로 서있으니 참으로 어여쁘다. 그리고 그 길 따라 조각들이 있어 구경 삼아 걷기 좋다. 쉬엄쉬엄 걷다 보니 공원 끝이다. 이곳도 기념할 만한 조각들이 있으니 볕 좋은 날 산책하고 예쁜 사진 찍기 딱이다. 예상했던 대로 비가 흩뿌려지고 바람은 강해져 우산이 뒤집혔지만 걷길 잘했다. 이렇게 걷지 않았으면 못 볼 풍경들. 곱게 담아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와서 또 봐야지. 손잡고 함께 보면 마음이 따뜻해 질 풍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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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 사람도 공간도 시간도 여유로워 좋았던 오모야

https://maps.app.goo.gl/814yGRMbQu58zP536



자전기 타기 좋은 곳, 만세각 앞 도야호수를 따라 산책길 끝 공원

https://maps.app.goo.gl/oos5DGzwaKGUqgtw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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