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여행 ep1. 나만의 수프카레 로드 : 킹수프
처음은 언제나 낯설다. 풍경이든 사람이든 음식이든. 늘 가던 후쿠오카를 벗어나 새롭게 간 삿포로는 많이 추웠다. 3월 중순임에도 거리 곳곳엔 내 키만 한 눈들이 쌓여있었다. 눈의 도시답게 사람이 다니는 곳들은 이미 제설작업으로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다. 도로는 이미 깨끗했고 인도는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반듯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길을 걷다 보게 된 오도리 공원에는 2월 중순에 열였던 눈꽃 축제 여파 인지 작은 언덕배기 크기만큼 쌓인 눈을 포클레인이 치우고 있었다. 삿포로의 첫인상은 눈과 추위, 제설이었다.
내 영혼을 위한 카레 수프
오들오들 떨며 스스키노에서 삿포로 역까지 걷는 길은 매섭다. 맹추위 때문인지 거리 곳곳은 한산했고 어둠은 빨리 찾아왔다. 첫날 별달리 한일도 없는데 추위 때문이었는지 배는 고프고 기진맥진이다. 허기진 배는 외로움을 불러온다. 혼자 떠나는 여행을 즐기지만 그날 저녁은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따끈한 밥을 함께 했으면 하는 날이었다. 어디든 가야겠다. 허기진 배를 채워 넣어야 내 영혼도 채워질 것 같다. 그리고 덜 외로울 것 같다. 숙소 주변 맛집들을 구글링 해본다. 비수기임에도 인기 맛집들은 사람들로 긴 줄이 서있다. 특히나 저녁 퇴근 시간까지 겹쳐 이 추위에도 맛집에서 밥 한 술 뜨려면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추운 날 굶주린 배로 문 밖에서 줄 서는 건 내 영혼을 더 갈아먹는 일이다.
나의 첫 수프카레, 킹수프
최단 거리이며 최고 평점과 최저 평점을 제외하고 적당한 리뷰와 중간 정도의 평점을 받는 곳을 선택했다. 식당도 부익부 빈익빈이다. 맛집은 1시간 줄 서야 하지만 이곳은 바로 식사가 가능하고 곳곳에 빈자리들도 있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아래의 작은 가게. 매장 입구부터 세련미는 찾아볼 수 없다. 이랏세이마세를 외치는 성실한 직원들과 공간을 꽉 채운 카레냄새뿐. 혼자 온 나는 오픈 주방이 보이는 다찌에 앉혀졌다. 왼쪽을 보니 퇴근하고 아무도 없을 집에서 혼자 먹는 밥보다 서로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 옆에서 함께 먹고 싶을 것 같은 혼자 온 직장남이 맥주 한잔을 시키고 주문한 요리가 나오길 기다린다. 오른쪽은 교복 입은 남학생이 수프를 한 방울도 안 남기겠다는 의지로 그릇째 들이키고 있다. 저 나이엔 그릇이라도 씹어먹지! 한창 클 나이니깐. 맛집은 아닌 것 같지만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오며 가며 식사를 해결하는 곳인 것 같아 안심이 됐다. 아주 나쁘진 않을 것 같은 예감. 별달리 큰 기대 없이 추천하는 맵기 정도와 밥 양을 정하고 기다린다. 맵기 정도는 15단계나 되고 밥 양도 다양하다. 세심한 건지 지나친 건지 이렇게 많은 단계를 나누고 그 차이를 느끼기란 어려 울 텐데 굳이 이렇게 까지 하나 싶었다. 전체적으로 난 이 가게가 그다지 맘에 안 들었다. 기대한 맛집도 아니고 어쩌다 갈만한 곳이 없어 이곳에 흘러 들어왔을 뿐이다.
내 앞에 커다란 냉면 대접만 한 크기의 수프카레가 놓인다. 버섯, 메추리알, 구운 브로콜리, 초록 파프리카, 큼지막한 당근 덩어리, 그리고 연근과 콘. 야채들과 그 아래 묵직한 닭다리 한 개. 다양한 야채들이 목욕탕 안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것 같다. 국물도 낙낙하니 야채들이 반신욕 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옆에 노란 찰진 밥이 놓인다. 그래 SNS는 안 하지만 내 인생 첫 수프카레이니 기념사진은 찍어두자. 찍히는 사진처럼 수프카레의 첫맛은 내 앞에 놓인 이 수프카레의 맛으로 각인되겠지.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 내가 먹을 수프카레의 기준이 되리라. 별다른 기대는 없지만 경건하게 한 입 떠먹어본다. 빠바밤빰! 머리 위로 폭죽이 터졌다! 눈이 저절로 크게 떠지는 맛! 이 세상에 없던 맛.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맛! 이건 카레가 아니다. 이름에 수프카레라고 되어있지만 이것은 카레가 아니다. 새로운 종류의 음식이다. 야채를 굳이 건져 먹지 않아도 만족스러울 만큼 국물한술에 밥한술. 밥이 꿀떡꿀떡 넘어갔다. 추웠던 몸도, 외로웠던 내 영혼도, 심드렁했던 이 수프카레집에 대한 내 마음도 수프카레가 내 입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야채의 식감이나 찰진밥에 대한 감탄도 하기 전에 이미 나는 이곳의 수프카레 국물에 빠져 있었다. 정말 순식간에 식사가 끝나버려 아이 곱빼기를 시킬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 삿포로에는, 스스키노에는 많은 수프카레 집들이 있다. 맛집이 아닌 이곳도 이렇게 나를 뒤흔들어 놓았는데 다른 맛집들은 얼마나 맛있을까. 신용카드가 안 되어 현금으로 계산한 이 집을 등지며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이곳보다 맛있을 수프카레 맛집을 기대했다.
나의 수프카레 기준! 킹 수프
https://maps.app.goo.gl/nQt8Y52AxG2PoC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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