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 Jul 12. 2024

움츠림 - 베스트셀러 앞에서

글쓰기는 행복하지만 늘 희망차진 않아요

요즘은 스스럼없이 글을 쓰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공개된 글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자신감에서 인지 글을 쓰고 책을 낼 거라는 말을 한다. 처음에는 가장 친밀한, 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무엇에 내 에너지를 쏟고 싶어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내 남편에게 내 꿈, 장래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산술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남편에게 ‘접영 잘하는 할머니’와 ‘일평생 글을 읽고 쓰는 작가’가 된다는 것이 과연 와닿는 이야기 일까 싶다가도 남편은 언제나 내 글을 보며 ‘잘했어’를 연발해 줘서 글 쓰다 낙담한 내 마음을 단박에 끌어올려주는 사람이다. 칭찬에 약한 나인걸 가장 잘 알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처음 쓰는 글이라 서툰 것은 당연한 거고 글은 서툴지만 글 쓰는 마음만은 서툴지 않게 나를 잘 조련시킨다. 


엄마는 글을 쓰고 싶어


그리고 우리 아이들. ‘엄마는 뭐가 되고 싶었어?’ 과거형으로 묻는 아이들에게 어릴 적 꿈은 피아니스트였지만 지금은 글을 쓰는 작가가 꿈이야 하고 이야기한다. 철들고 나서부터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물어봐 주지도 않지만 현재형으로 질문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이 들면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나이 들면 자연스레 장래희망을 이룬 것으로 생각해서일까?라고 긍정적으로라도 생각해 본다. 엄마도 너희들처럼 꿈꾸는 장래희망 이란 게 있고 그 미래가 단지 세상살이를 어떻게 날지가 아닌 되고 싶은 자아가 있다는 걸 명확히 이야기해 준다. 그래서 오늘도 너희들을 학교에 보내고 엄마는 엄마 책상에 앉아 타자를 두드린단다. 뭐가 됐든 말이다. 


넌 잘할 수 있어!


책과 관련된 일을 해온 전직장인들에게 “글을 쓰고 싶다”라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야기한 적도 있다. 회사에 긴 세월 있던 만큼 함께 한 시간도 길었던 언니는 “왠지 넌 그럴 것 같았어, 네가 말하는 걸 보면 벌써 책 한 권 쓴 사람 같았거든” 친한 언니이기에 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미흡하기 짝이 없는 내 글을 한 번도 읽어 보지도 않고 건넨 말이지만 나를 그렇게 봐준다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감사했고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때론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알기에 누군가는 “누구 이번에 책 나온데” 하고 전직장인의 출간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부럽다. ‘그 친구도 하니 너도 할 수 있어! 너도 잘하고 있어! 네 책도 곧 나올 거야! 하는 응원의 메시지다. 고맙다. 친구!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대체적으로 희망찬 글쓰기를 하며 일상을 보낸다. 비록 필력이 남루하고 누추할지라도 하루하루 손톱만큼 발전하고 있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글 쓰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때론 멋지고 폼 나는 책들이 즐비한 대형서점에 가면 주눅이 든다. 특히나 베스트셀러 코너의 종합베스트부터 분야베스트까지 페이스진열 된 책들을 볼 때면 가질 수 없는 눈 부신 명품 컬렉션을 보는 것 같아 내 두 눈을 가리고 뒷걸음질 친다. 매장을 한번 둘러보니 이렇게나 많고 많은 책들 중에 내 책, 내 글이 놓일 수 있을까? 누군가 내 글을 돈 주고 사볼까? 저렇게나 늠름한 책들과 내 글이 견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고 이내 주눅이 든다. 누군가와 경쟁하지도 않았는데 패배자의 마음이다. 경주에서 낙오한 기분이 든다. 오지 말걸. 요즘은 책 구경 하러 갔다 마음이 상해서 온다. 차라리 손 때 묻은 책이 공평하게 진열된 도서관에 갈 걸 후회한다


내 글쓰기의 순기능


글을 쓴다고 말한 나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며칠을 쓰질 못했다. 무엇이든 쓰질 못했다. 미흡한 내 글을 알기에 자신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쓰지 못하면 읽기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맨 처음 쓴 글을 읽어 봤다. 아. 이랬구나! 내가 처음 글을 쓸 때 이런 마음으로 글을 썼구나. 지금 보다 더 날것의 거친 글이지만 당시 고민과 생각, 느낌이 여과 없이 투영되어 있다. 그리고 내 글이, 내 글이 담고 있는 지나온 내 시간들이 좋았든 싫었든 참으로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내 글을 누군가와 함께 하진 못해도 나 스스로를 정리하고 내 감정을 치유한다. 그리고 내 생각과 태도를 단정하게 만든다. 우습지만 내 글을 읽으며 내 글쓰기의 순기능에 대해 새삼 깨닫는다.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그리고 다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장래 희망은 평생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라고. 꿈이 꿈으로만 남지 않고 현실이 되길 희망하며 내 단어가 마술처럼 이루어지길 바란다. 오늘도 나는 미천하게나마 글을 쓴다. 

이전 05화 부러움 - 누군 했고 누군 안 했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