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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Jun 30. 2024

불편함 - 아직도 놀고 있니?!

집에 있으면 논다고 생각하시나요?!

1단계. "잘 지내니?"   (오랜만에 연락을 했으니 그냥 하는 인사말)

2단계. "아직도 놀고 있니?"   (퇴사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다른 일은 안 하니?)

3단계. "애도 다 컸는데 할게 뭐가 있다고"   (애들 다 키웠는데 다른 일 찾아봐야지)


설 연휴 전에 옛 회사 상사로부터 반가운 안부 전화가 왔다. 그리고 이내 3단 콤보를 날리고 본인께서는 경력직으로 재취업하셨다고 곧 출근하신다고 한다. 회사를 나온 지는 1여 년 되었다고 그간 지내온 날들을 짤막하게 읊어 주셨다.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귀한 인연이라 생각했기에 먼저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반가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고 연락할 수 있게 된 ‘기쁨’을 한 아름 안겨주셔서 더없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의도하시지는 않으셨겠지만 ‘논다’는 표현이 온종일 저를 생각하게 만들었답니다. 절대 고민은 아니에요. 팀장님 말고도 종종 회사를 안 다니면 집에서 논다고 표현하는 이들이 많으니깐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단어였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생각을 안겨줬다고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렇게 저에게 또 다른 글감을 제공해 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끄럽지만 제 장래희망은 작가입니다.


자자, 제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저는 회사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9 to 6 하는 회사에 소속되지 않을 예정입니다. 반백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제가 하고 싶은 거 해봐야죠. 그래서 매일 미약하지만 글을 읽고 쓰고 있습니다. 그게 지금 현재로서 제가 갈 길입니다. 첫 직장 신입사원 마냥 글쓰기를 하나하나 엉덩이로 배우고 있어요. 아주 조금씩 조금씩. 그게 제 커리어라고 생각하고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을 켜켜이 쌓아가고 있습니다. 훌륭한 직장인이 못 되었든, 훌륭한 작가가 될지는 현재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직장인이 되었듯 시간이 흘러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러니 응원해 주세요. 


글 써서 먹고살 수 있을까? 


우선 지금 당장 글로 먹고살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여건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글 쓰며 먹고살고 싶어요. 지금은 글쓰기로 자립이 되지 않지만 배움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이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큰돈 들이지 않고 삶을 누릴 수 있는 행복 부스러기들을 제 주변에서 많이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제가 벌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기술을 연마하고 있답니다. 그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제가 진심이면 그게 진정한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일상에서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찾아내는 것도 재능인 것 같아요.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논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노는 걸까? 집에만 있으면 노는 걸까? 노동하지 않으면 밥도 먹지 말라는데, 내 이야기인가?! 다행입니다. 가사노동은 하니 당당하게 밥은 먹을 수 있으니깐요. 회사는 결과물을 확인하는데 더없이 쉬운 곳이에요. 일을 하든 안 하든 출근만 하면 월급은 나오니깐 말이죠. 그리고 승진과 보상, 평판 등 결과가 어찌 되었든 결론이 있잖아요. 성적표를 집어 든 학교처럼 말입니다. 늘 무언가를 했고 그에 따른 결과를 확인하는 시스템 속에 있다 보니 학교에서 회사로 이어진 사이클 속에서 회사를 다니지 않고 집에 있으면 결과가 없는 무효한 삶으로 매도되는 것 같네요. 


근데 말이죠. 언제까지 회사 다닐 건가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겁습니까? 회사에서 하는 일이 내 삶을 집어삼키고 있진 않나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내용이 회사에서 가져온 불평불만은 아닌가요? 회사 졸업 무렵 내게 했던 질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확실히 그 질문에 답을 했고 잠시 멈춰서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고 있는 중이고요. 집에서 노는 게 아니랍니다.




런던 경영대학교 린다 그래튼(Lynda Gratton) 교수가 하는 말이 100세 시대 교육-일-퇴직으로 이어지는 ‘3단계 삶’은 이제 맞지 않단다. 휴식기와 전환기를 가지며 다단계 삶을 살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저기요, 묻지는 않으셨지만 논다고 하니 드리는 말씀인데요, 저는 다음 단계의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거예요. 회사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러니 ‘논다’는 말씀은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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