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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Jun 21. 2024

갈증과 갈망

글이 고픈 만큼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곤 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연체되고 연체된 기간만큼 책을 빌리지 못 하면서 긴 명절 연휴를 맞이해 버렸다. 의도치 않게 읽고 싶은 책을 옆에 두지 못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헛헛해진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는 채우지만 내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책이 고프다. 읽었던 책으로 허기진 마음을 달래려 해도 그 마음이 진정이 안 된다. 새로운 글이 고프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이 그립다. 


다른 사람의 글이 고픈 날


연휴기간을 끝내고 오랜만에 가는 도서관. 발걸음이 가볍다. 그날은 유난히도 날이 포근했다. 기상 관측사상 제일 따뜻한 겨울날씨라고 한다. 두툼한 겨울 코트 보단 짤록하게 올라온 봄 점퍼가 더 잘 어울리는 날씨. 이른 저녁 아이들 밥을 일찍 챙겨주고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이미 해가 진 어두컴컴한 밤이지만 내 발걸음은 가볍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도서관 가방에 한 가뜩 책을 담아 올 생각에 들뜬다. 


며칠 안 본 사이인데 우리 도서관 낯빛이 환하게 변했다. 예약도서와 희망도서를 진열해 놓은 서가 위치가 이동하면서 넓고 쾌적하게 바뀌었다. 말끔하니 예쁘다. 입구 쪽에 놓여 있던 짙은 남색 소파가 서가 맨 끝 구석진 자리로 이동하고 소파와 한 세트로 테이블이 놓였다. ‘딱! 내 자리네. 내가 앉고 싶은 자리다. 저기에 콕 박혀서 책 읽으면 좋겠다! 너무 좋다. 좋아!’ 서가 사잇길을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책등을 하나씩 읽어 내려간다. 책등에 놓인 글자들. 여러 글씨체로 모양을 낸 책 제목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니 쩍쩍 갈라져 있던 내 마음에 단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담은 활자가 고팠다. 도서관 서가 사잇길을 거닐다 보니 이제야 가물었던 마음이 해갈된다. ‘너무 보고 싶었지 뭐야. 만나고 싶었어. 우리 도서관’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들은 당연하게도 내가 보고 싶은 책들이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빌리러 갔다 도서관 사서분들이 추천하는 책들에 매료되어 한참을 그 앞에 머물기도 한다. 목적 구매처럼 읽고 싶은 책 즉 대출할 책만 쏙쏙 빼서 올 요량으로 잠깐 들렀다가 의도치 않게 긴 시간 머물게 되니 늘 도서관에 갈 땐 마음 뺏길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 넙죽 내 마음을 빼줄 준비를 하고 가야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오늘도 내 마음을 빼앗아간 책이 있다. 


작가처럼 살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단순 생활자> 황보름 작가. 책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 ‘첫 책을 내기도 전에 전업작가 생활로 뛰어들어 작가처럼 살았다. 작가처럼 살다 보니 정말 작가가 되었다. 주로 읽고 썼으며, 자주 걸었다. 혼자서 누구보다 잘 노는 사람으로, 단순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주는 평온함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 완료형 ‘작가’란 단어만 빼면 현재 진행 중인 ‘나’다. 2021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낸 베스트셀러 작가. 아! 기억난다. 당시 나는 회사사람으로 연말연시 베스트셀러 리플릿을 만들었는데 그때 ‘이런 책이 뜨는구나!’하고 넘겼던 책이다. 단순 생활자, 황보름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니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전작들이 궁금해졌다. 에세이스트로 출간된 책들이 잘 되었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작가의 글을 보니 더 궁금해진다. <단순 생활자>를 읽어 내려가던 그날 밤, 작가의 다른 책들이 보고 싶어 설렌다. 내일 만나러 가야지. 


책은 또 다른 책을 잇는다. 작가의 다른 책, 그리고 그 책이 놓인 서가의 다른 작가의 책. 또는 책에서 소개된 책. 우연히 마주한 책이 또 다른 인연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몇 년 전 우연히 지나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단순 생활자>로 다시금 인연이 되어 돌아왔다. 지금 두 책을 같이 읽고 있다. 그리고 황보름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려고 한 글자 한 글자 곱게 어루만지며 읽고 있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을 꿈꾸는 나의 글도 누군가에게 곱게 읽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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