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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Aug 19. 2024

책상 - 꿈이 자라는 곳

반갑다, 내 책상아!

내가 좋아하는 온갖 것들이 함께 가지런히 놓여있는 나만의 공간, 책상. 그곳에 앉아 새롭고 넓은 세계를 꿈꾸며 공부했고 취업준비를 했다. 대학에 가게 된다면, 20살 어른이 된다면, 불안한 청춘이 나이 들어 좀 더 농익어간다면 좋아질 거라는 희망의 씨앗을 품고 물을 주던 곳. 뭔가를 이룬 공간이라기 보단 뭔가를 찾아 혼자 즐겁게 유영하던 나만의 놀이터. 작지만 큰 꿈을 품던 곳, 책상이다. 


사라져 버린 내 책상


소중한 꿈의 공간이 결혼과 동시에 사라졌다. 8평 남짓한 신혼집에 이고 지는 신접살림으로는 도저히 책상을 놓을 수 없었다. 집 평수를 조금 넓혀 마련한 책상은 내가 결혼 전, 그러니깐 고등학생 때부터 사용했던 15년 된 색 바랜 민트색 엔틱한 책상이었고 내 학창 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귀하게도 남편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어렵사리 마련한 소중한 공간이었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이내 다시 사라졌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한 쌍둥이 육아 용품들이 집안 대부분을 차지했고 나나 남편이나 우리를 위한 공간은 조금씩 사라졌다. 어린아이들을 돌보느라 남편도 나도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비워내는 작은 공간이 집안 어디에도 없었다. 잠시 잠깐 혼자 있고 싶으면 화장실 변기 뚜껑을 내리고 그곳에 우두커니 앉아 핸드폰을 끄적이는 순간만이 불연속적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꿈은 고사하고 잠시 쉴 수 있는 곳이 변기 커버였다. 


전쟁터였던 사무실 책상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간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복직을 하며 제법 큰 집으로 이사했다. 물론 이때도 책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회사일로 바빠 집에 머무는 시간자체가 별로 없었다. 대신 눈 든 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그곳에 내 명패가 걸린 책상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어디까지나 회사에 속한 공적인 공간이니 내 공간 일 수 없다. 명패는 내 이름이나 진정한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 내 취향과 취미가 노출되지 않은 무채색 책상. 밥벌이하느라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했던 공간, 반려받고 또 반려받은 기획안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며 버전 1,2,3.. 를 써냈던 공간, 기획안과 시안을 보며 의견을 조율하고 절충안을 찾으려 애쓰던 공간, 결과물을 받아보고 기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으며 때론 화가 났던 공간. 이런 공간에 말랑한 내 감정을 드러내는 그 어떤 소품도 놓을 수 없었다. 땀과 눈물, 때론 피가 낭자한 공간에 어찌 내 마음속에 떠다니는 꿈과 희망을 드러낼 수 있었겠는가. 사무실 내 책상은 전쟁터였다.


드디어 내 집을 지었다. 내 책상!


이제는 회사를 졸업하고 집에 고요히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졸업을 앞두고 집안을 살폈다. 어딘가에 나만의 공간, 내 놀이터를 만들 궁리를 했다. 욕망이 끌어 오른다.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 곳에 나를 은닉하고 싶다. 시공간을 차단하고 음소거가 되는 ‘가장 안락하고 평온한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4인 가족이 오손도손 사는 공간에는 온전히 혼자 있을 만한 공간이 없다. 화목한 가정답게 모두가 함께 하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꾼다. 내 꿈이 피어나는 공간, 책상을. 거실 한쪽 구석에 예전에 쓰던 식탁을 놓았다. 광목천을 살포시 깔고 내가 좋아하는 큼지막한 연보랏빛 매트를 중앙에 놓아 영역 표시를 했다. 집에서 함께 할 아이들이 내 공간을 침범하지 않도록 “얘들아~ 여긴 엄마 책상이야. (이어 하고 싶은 말 : 얘들아 선 넘지 마! 여긴 내 공간이야.) 그러니 이곳에서 놀지 마라.” 공표했다. 참 오랜만이다. 온전히 나를 위한, 나만을 위한 사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그것도 우리 집에서 가장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어여쁜 내 집을 지었다. 


내 책상의 포인트는 푸근한 곰돌이 푸


내 집, ‘내 책상’의 포인트는 꿀단지를 품은 곰돌이 푸다. 가장 많이 쓰게 될 키보드와 마우스, 손목 보호대에 녀석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노란색과 주황색을 믹스 매치한 짤록한 크롭티를 입은 곰돌이가 책상에서 항상 싱긋 웃고 있다. 내가 글을 쓸 때, 책을 읽을 때, 영어 공부를 할 때, 각종 우편물을 정리할 때, 아이들 학습지를 봐줄 때도 언제나 미소 짓고 있다. 나도 덩달아 눈웃음이 지어진다. 특히 곰돌이 푸 키보드는 한 자 한 자 칠 때마다 타닥타닥 소리가 나는데 키보드 알을 하나씩 두드리는 맛이 경쾌하다. 곰돌이 푸가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는 발소리 마냥 폴짝폴짝 내 마음도 설레게 된다. 사무실에서 사용했으면 민폐인 타닥타닥 타자기 소리지만 혼자 집에서 두드릴 때는 설레는 발걸음이다. 소풍 가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소풍 하듯 키보드와 산책 하듯 연필


키보드는 이미 생각했던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길게 내려쓸 때 사용한다면 생각이 정리가 잘 안 되거나 내 생각과 느낌을 온전히 느끼고 싶을 때는 연필을 쓴다. 디지털 방식으로는 깨알같이 흩어져 있는 내 마음과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명료하지 않은 뭉뚱그려진 생각들을 끝이 뭉뚝한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간다. 끝이 뾰족한 샤프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꼭 연필이어야 한다. 키보드가 친구들과 함께 왁자지껄 신나게 떠나는 소풍이라면 ‘연필’은 사각사각 거닐며 혼자 명상하는 산책이다. 


내가 사랑하는 연필


혼자 있길 좋아해서 인지 책상에도 종으로 따지면 연필이 가장 많다. 사용하는 연필은 기분에 따라, 글의 따라 달라진다. 버킷리스트나 장래희망, 인생계획 등 내 꿈을 적을 때는 뭉툭한, 그렇다고 너무 무르면 안 된다. 적당히 굵고 부드럽게 써지는 2B연필로 쓴다. 사뿐사뿐 걷듯 내 희망사항을 부드럽게 써내려 간다. 천천히 걷다 돌부리가 있으면 피해 가고 넘어지더라도 큰 상처 없이 흙만 털고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부적처럼 정성스레 써서 책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붙이고 매일 보고 또 본다. 꿈이 이루어지길! 이어서 소개하고 싶은 녀석은 내 사랑 몽당연필! 무언가 공부할 때 쓴다. 주로 영어 공부인데 학창 시절 깜지를 만드는 수준은 아니지만 반복해서 단어와 문장을 외우며 짤막한 몸통을 쥐고 글자를 쓰는 맛이 뭐라도 된 것 마냥 자신감이 넘친다. 닳아진 연필의 키만큼 내 외국어 실력이 커졌으리라 믿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색연필. 밋밋한 검정 연필 글쓰기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많이 쓰지는 않지만 없으면 섭섭하다. 다이어리에 힘을 주고 싶을 때 가끔씩 과하지 않게 쓰는데 글자 사이사이를 예쁘게 물들여줘서 글에 화색이 돈다. 사랑스러운 글쓰기는 색이 있든 없든 늘 연필과 함께 한다. 쓰다 딜리트 키로 금방 지워지는 디지털 키보드보다 아직까지 사각거리는 연필이 좋다. 미안, 곰돌이 푸 키보드야~! 


회사를 졸업한 요즘, 일상의 큰 기쁨은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 내 책상’에서 따뜻한 아침 카푸치노를 마시며 글을 쓸 때다. 곰돌이 푸 키보드로 폴짝폴짝 소풍을 갔다 틈틈이 맑게 갠 하늘을 벗 삼아 연필과 함께 명상하듯 산책한다. 의식의 흐름대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그날 느낌대로 연필을 끄적인다. 이곳에서 나는 무엇이 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에게 충만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를 채워나가는 곳이다. 


오랜만이야, 반갑다. 

내 책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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