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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Aug 05. 2024

점심밥 - 오롯이 먹는 밥 한 끼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밥 한 끼면 충분해!

벚꽃이 휘날릴 때 회사를 나왔다. 평일에 집에 있으니 놀기 딱 좋은 때다. 아이들 하교시간에만 맞추어 자동차로 1시간 내외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특히나 정해진 시간 없이 느긋하게 먹는 점심은 내 자유를 실감케 했다. 회사 점심은 함께 먹는 사람을 배려해 메뉴를 골라야 하고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먹을 때도 있다. 어제저녁 먹은 돈가스를 오늘 점심으로 먹어야 할 때도 있고 뜨끈한 국물로 해장하고 싶지만 국물 없는 우동을 먹을 때도 있다. 한때는 ‘뭐 먹을까?’ 하는 질문에 먹고 싶은 메뉴를 진심으로 매번 이야기했다가 결국 눈치 없고 본인 먹고 싶은 것만 먹는다는 뒷말을 들었다. 그 이후로는 하고 싶은 말에 때와 장소를 가리게 되었다. 사회생활하며 봐야 할 눈치를 제법 늦은 나이에 점심 메뉴로 터득한 샘이다. 


한 끼 때우듯 먹는 회사 점심시간은 숨이 막힌다


예나 지금이나 맛있게 먹는 거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나이지만 눈치가 생기면서 회사 점심시간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두고 해치우듯이 서둘러 먹고 자리를 떠야 하는 게 영 적응하기 힘들었다. 음식을 온전히 즐기고 함께 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며 시간을 나누고 싶지만 그러기엔 회사 점심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점심을 후딱 먹고 오후 식곤증을 물릴 칠 커피 한잔을 테이크아웃 하면 점심시간이 끝나버린다. 회사에서 유일한 휴식시간인 점심시간을 내 기준대로 충분히 즐기려면 밥을 먹든 커피를 마시든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주에 한두 번은 혼자 밥을 먹든 간단히 빵과 커피를 마시든 둘 중 하나만 선택했다. 그래야 내 마음에 쉼표가 생겨 여유롭고 충만해질 수 있었으니깐 말이다.



그날그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밥 한 끼면 충분해


회사를 졸업하고 나니 내가 정한 시간에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천천히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단지 밥 한 끼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이유가 된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이른 점심을 선택할 수도 있고 늦은 아침식사로 이른 저녁을 먹듯 점심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학교와 회사 점심시간처럼 요이땅 하고 경쟁하듯 모두가 출발선에 나란히 서서 12시에 맞추어 밥을 향해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그날 내 컨디션에 따라 때를 정하고 메뉴를 정한다. 뜨거운 여름날에는 주야장천 시원한 냉면만 먹기도 하고 추우면 집에 콕 박혀 반숙 달걀을 얹힌 라면을 끓여먹기도 한다. 단짝과 분위기를 내고 싶으면 드라이브 나가 코스 요리를 먹을 때도 있고 맑게 깬 날에는 파란 하늘에 둥실 떠가는 구름 구경을 하고 싶어 동네 산자락에 있는 아늑한 카페에 앉아 브런치를 먹는다. 바깥 음식이 물리면 한동안은 끼니에 맞추어 갓 지은 따뜻한 집밥에 제철 야채를 구워 간단히 해먹기도 한다. 그날그날 먹고 싶은 것을 배고플 때 먹고 천천히 그 음식만을 음미하며 먹을 수 있는 자유로움에 매일 행복감을 느낀다. 나를 위해 공 드려 준비된 따뜻한 밥의 온기가 그 어떤 걱정도, 시름도 없이 오롯이 내 몸과 마음 안에 담긴다.


누군가 그깟 밥 한 끼 가지고 뭐 그리 행복하냐고 하겠지만 어차피 먹어야 사는 끼니인데 그냥 때우지 말고 충실히 한 끼니를 누린다면 적어도 하루 한번 이상은 행복과 기쁨을 확실히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고매한 시대정신도, 원대한 꿈도, 대단한 성취감도, 그럴싸한 사회적 지위도 없지만 뭐 어떤가. 내가 나를 정중히 대접하는데 뭐 그리 이유가 이어야 할까. 하루 한번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밥 한 끼로 나를 극진히 대접하고 온 마음을 다해 맛있게 먹으면 그만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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