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가는 길 그리고 책 사잇길
여러 갈래 길로 당도할 수 있는 우리 동네 도서관. 상황 따라, 내 마음 따라 길을 선택한다. 아스팔트 길을 쭉 따라 직각으로 가는 길. 반납 마지막 날인 책들을 돌려주러 갈 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빠른 길이다. 이 길은 데드라인이 있는 길이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는다. 내 마음이 바빠 그런지 간간히 드리워진 나무들을 구경도 못하고 바로 옆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마냥 쌩쌩 지나친다. 순간 매장 행사 일정에 맞추어 제작되는 사은품 납기를 마음 조리며 기다렸던 내가 오버랩된다. 다행히도 회사를 졸업한 지금은 그런 내가 아니어서 이내 평정심을 찾지만 못내 아쉬움은 남는 길이다.
개성 있는 전원주택과 숲 길을 가로지르는 도서관 가는 길
어떤 날은 길 위의 시간을 온전히 누린다. 여유롭게 빙글빙글 돌아간다. 반납할 책도 없어 몸도 가벼워 커피 한 잔을 손에 쥔다. 집 커피 말고 바리스타가 내려준 맛있는 커피를 홀짝이며 길 건너 전원주택 단지로 들어선다. 전원주택답게 크고 작은 몸집의 집들은 나무들과 꽃들을 품고 있다. 어떤 집은 집 보다 넓은 공간에 키가 큰 나무들을 한 아름 품고 있고 어떤 집은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며 콩나물 같은 가느다란 대나무들이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 집도 있다. 한쪽 벽면을 유리창으로 크게 낸 집도 있고 어떤 집은 나같이 기웃거리는 사람들 때문인지 담장 벽이 높아 유리창이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집도 있다. 집주인 취향 따라 제각각이다. 각양각색의 집들을 지나 발길이 멈추는 곳이 있는데 그 집은 흔한 담장조차 없다. 군데군데 돌들이 놓여 있는 아담한 집인데 그 돌들이 예술이다. 크고 작은 돌에는 색색깔로 예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볼이 발그레한 어린이 얼굴, 센과 치이로의 '가오나시'와 먼지 캐릭터, 풀꽃들 너머에 놓여 있는 돌은 꽃 화관을 예쁘게 쓴 소녀가 활짝 웃고 있다. 그림만큼이나 소담스럽고 사랑스러운 집이다. 아마 집주인의 마음도 사랑스러우리라. 그걸 보는 내 마음도 사랑스러워진다. 길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전원주택들을 지나 이내 공원 숲길로 들어선다. 빽빽이 심어진 나무들로 입구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어두컴컴하지만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솔 냄새가 풍기는 길이다. 비가 오는 날은 더 다이내믹하다. 누워있던 흙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찐한 흙냄새와 풀잎 냄새가 한아름 나에게 달려든다. 서로 앞다투어 안기는 향기에 순간 아찔하지만 몸과 마음이 뻥 뚫린다. 흙더미에 신발이 더러워져도 상관없다. 어차피 빨면 그만이니 부러 흙 길을 거닌다.
개성 있는 책들과 오래된 책향기로 가득한 책 사잇길
물 흐르듯 유유자적 공원길을 산책하면 어느새 도서관 후문에 당도한다. 숲길과 책길이 서로 이어져 있어 자연스레 흘러간다. 이젠 서가 사이를, 책 사이를 거닌다. 읽고 싶은 책이 주로 에세이라 늘 가던 서가로 간다. 저자 ㄱㄴㄷ순으로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담고 있는 내용이 서로 다르듯 책의 키도, 두께감도 제각각이다. 책을 하나하나 꺼내서 책 표지를 보지 않아도 책등과 그곳에 새겨진 책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주로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이 눈에 띈다. '고딩관찰보고서' - 예비사춘기 아들딸을 둔 엄마로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청소 끝에 철학' - 집안일에 디볼트값(설거지, 빨래, 바닥 쓸기&물걸레질)을 정해놓고 지나치게 애쓰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인 나로서는 어떤 철학인지 궁금하다.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 어떤 친구들이 있지?! 나도 만들어볼까?! 구미가 당긴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 책 제목을 단 한 줄로 축약해 표현하는 기술들을 보면 명카피라이터들이 따로 없다. 도대체 이런 책 제목은 누가 짓는 걸까? 작가인가 아님 편집자 인가 아님 출판사 직원들인가. 어른 되고 재미난 놀이 란게 마땅히 없는데 이 책등 보기 놀이는 나에게 여전히 재미있는 놀이다. 책 제목을 훑다 마음에 드는 책을 한번 뽑아 목차를 보고 책장을 넘긴다. 오랫동안 펼쳐지지 않아 꿉꿉한 종이 냄새가 나는데 이것 역시 재미난 놀이에 따라오는 별책부록 같다. 출간된 나이에 따라, 종이 질감에 따라 냄새가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다. 이걸 빌릴까 저걸 빌릴까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돌아갈 시간에 쫓겨 코앞에 놓인 책을 뽑아 든다.
놀이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이 언제나 아쉽듯 나 역시 이곳을 나서기 아쉽다.
내일 또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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