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타역을 벗어나 거닐었던 곳
처음 후쿠오카를 찾았을 당시만 해도 복합쇼핑센터의 메카는 캐널시티였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내가 많이 찾았던 브랜드 유니클로, ABC마트, LUSH 등이 있어 한번에 쇼핑하고 TAX리턴도 손쉽게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간 맞춰 진행되는 분수쇼 이벤트도 있어 살거리, 볼거리가 적당히 버무려진 공간이었다. 돌아다니다 출출하면 밥을 먹을 수 있는 위층 라멘스타디움, 아래층 식당가도 잘 되어 있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도넛, 크레페, 케이크, 커피 등 쇼핑하다 잠시 잠깐 앉아 쉬어 갈 수 있는 아기자기한 당 충전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하카타역 주변에만 있다 짧은 일정에 미세한 틈이라도 나면 찾았던 곳이 캐널시티다.
캐널시티도 나도 세월을 입었다
쇼핑하다 푸드코트에서 밥 먹고 야간 조명이 켜지면 분수쇼를 보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숙소에 돌아오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 그리 대단한 분수쇼도 아닌데 더운 날 땀 흘리며 사람들 틈에 끼어 보고 추운 날에는 발을 동동거리며 분수쇼를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옛 추억은 화려한데 지금 보니 이곳도 세월을 입었다. 군데군데 리모델링이 필요해 보인다.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화려했던 캐널시티는 노쇠해지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상 쇼핑몰 라라포트에 밀린다. 캐널시티의 분수쇼는 라라포트의 건담 로봇에 자리를 내어주는 듯하다. 세월이 내 얼굴 위에 잔주름과 기미를 남기듯 캐널시티도 시간이 흘러 그 모습이 노쇠해졌다. 그렇게 우리의 봄날은 가나보다. 활짝 피었던, 싱그럽게 반짝이던 모습은 점점 빛을 잃어 가고 있다.
그때도 좋았지만, 그래도 지금이 좋아
덥고 추웠던 야외에서 보던 분수쇼를 이젠 호텔 라운지바의 안락한 의자에 앉아 투명한 유리벽 뒤에서 본다. 호텔 음료치고 합리적인 가격이다. 세월이 흘러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서 인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비껴간 일본 경기 때문인지, 요사이 두드러진 엔저 때문인지 어쨌거나 과거에 엄두도 안 나던 호텔 음료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서서 보던 분수쇼도 편안하게 앉아서 감상한다. 서서 볼 체력이 안 되어 찾다 보니 호텔 라운지바인데 이렇게 편히 즐길 수 있어 다행이다. 맹렬히 살다 뒤돌아보니 젊고 화려했던 시간도 물론 좋지만 지금 나이 들어 힘은 빠졌어도 삶에 대한 균형감각이 생겨 좋다. 젊은 날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 열정이 사방팔방 뛰었다면 지금은 나를 돌아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가 편안한 방향으로 키를 잡고 간다.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보이는 건지, 뿜어져 나오는 열정을 적당량 덜어낸 불혹의 나이를 넘겨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와 세상을 읽는 방식이 달라졌다. 젊었던 나는 세상을 중심에 두고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그 틈에 끼려고 안간힘을 썼다면 지금은 ‘나’를 중심에 두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한번 사는 인생, 과거에는 ‘열정’으로 명명되며 열심히 노력했다면 지금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한다. 빛은 발했지만 도드라진 색이 없어 이곳저곳, 이것저것에 잘 어울리는 삶이다.
분수쇼 보기 전 꼭 봐야 할 나카스강 노을!
깜깜한 밤 알록달록 조명이 함께 나부끼는 분수쇼가 제 맛이듯, 이곳에 오기 전 꼭 봐야 할 것이 있다. 해 질 녘 나카스강 노을! 보물찾기 하듯 부러 노을을 찾아다니는 나에게 나카스강 노을은 놓칠 수 없는 순간이다. 청명했던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어느새 어스름하니 묵직한 다크 블루 옷을 입다 이내 찬란한 주홍빛으로 물든다. 서서히 보랏빛 핑크를 선보이다 이내 사라진다. 멍하니 노을멍을 하고 있으면 시간이 멈춰버리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혼자 우두커니 노을을 보고 서 있으면 멈춰 선 나를 내 주변이 빠르게 지나간다. 혼자만이 누리는 고요한 시간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찰나와 같다. 거리에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건물의 네온사인들이 불을 밝힌다. 반짝반짝 작은 별이 내 눈앞에, 나카스강 위로 뜬다. 누군가에게 나카스강 주변은 바빴던 하루의 노곤함을 풀어줄 야타이(일본 포장마차)로 기억되지만 나에겐 나를 멈춰 세운 해 질 녘 노을로 기억된다. 누군가에게 한 잔 술에 녹아내리는 일상이 내게는 노을 한 순간에 녹아내리는 일상이다. 지치고 피곤했던 몸과 마음이 일순간 사라진다.
나카스강 크루즈를 타보자
이렇게나 마음에 쏙 드는 노을을 배를 타고 좀 더 나아가 바다 위에서 바라본다. 그것도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말이다. 생각만 해도 들뜬다. 후쿠오카를 자주 갔지만 크루즈를 탄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당일치기나 1박만 한 덕분에 캐널시티는 커녕 크루즈는 언감생심이었다. 2박으로 일정이 늘어나면서 추가된 여행 코스다. 크루즈는 내가 좋아하는 노을이 빼꼼히 나올 때쯤 타서 완전히 해가 지고 깜깜할 때 배에서 내리는 코스를 선택한다. 모두가 선호하는 코스라 살짝 추가금이 붙지만 그 정도 낼 만한 가치가 있다. 뷰도 뷰지만 귀엽게 덧니가 난 젊은 친구가 성심을 다해 노래를 불러준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가볍게 리듬을 탈 수 있고 주요 명소를 지날 때면 스케치북에 비툴배툴한 손글씨로 명소의 한글 이름을 소개해준다. 탁 트린 바닷바람을 맞으니 가슴이 뻥 뚫리고 바다 위로 물드는 노을은 황홀한데 귓가에 흐르는 그녀의 맑은 목소리는 젊은 시절 서툴렀던 내가 들려 풋웃음이 난다. 소름 끼치도록 노래를 잘해 “와~” 하고 감탄하기보단 노래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힘찬 목소리가 난데없이 폴짝 뛰어올라 듣는 우리도, 그녀도 머쓱 해져 힘내라고 박수를 더 열심히 치게 만드는 노래 솜씨다. ‘나’였다. 젊은 시절의 나다. 열정 가득 찼던 나, 제 깜냥을 모르고 날뛰다 넘어졌던 나를 마주해 토닥여주고 싶고 힘내라고 상냥히 말을 건네고 싶은 ‘나’였다. 서툴지만 사랑스럽다. 크루즈를 반기는 건지, 한껏 들떠 있는 관광객들을 맞이해 주는 건지, 노래하는 그녀를 응원해 주는 건지 저 멀리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준다. 서로 잘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해 손 흔들며 인사한다.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릴 때 그녀를 향한 응원이 미소와 박수만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갑에서 작은 정성을 꺼내 팁박스에 나누어 준다.
화려한 봄날은 가고 세월을 머금었지만 캐널시티와 그 주변 나가스캉은 내게 다른 방식으로 읽히며 여전히 가고 싶은 곳이다. 열정이 꽃 피었던 내 봄날 역시 세월 따라 흘러갔지만 이젠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인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감정이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평온한 마음을 알아차리려 하고 욕심을 내려놓으려 한다. 흘러가는 대로 그냥 그렇게 마음을 놓아둔다. 이 또한 긴 시간 지나고 보니 드는 생각과 감정들이다. 또 어떤 것들이 올까?! 세월이 지남에 따라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나이 듦이 노쇠함만은 아닌 것 같다. 빛바랜 청춘을 그리워하기보단 새롭게 올 나이 듦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렌다.
https://maps.app.goo.gl/eDz2YaLBco6pjamw6
#퇴사 #혼자여행 #혼여 #아줌마_여행 #여자_혼자_여행 #후쿠오카 #하카타 #캐널시티 #나카스_강 #크루즈 #나카스_크루즈 #하카타_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