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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Oct 08. 2024

노코노시마섬 - 아일랜드 파크

헌 마음 뱉고 새 마음 담다.

늘 짧게만 다니던 여행에서 1박이 추가되었다. 도심에서 벗어나보고 싶다. 그렇다고 하루를 꽉 채워 다녀와야 하는 벳부나 유후인은 부담스럽고 1~2시간 거리의 소도시를 가기엔 교통비가 만만치 않다. JR패스를 끊어 근교 소도시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3일짜리 비싼 JR패스를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루짜리 패스가 있었다면 그렇게 했지만 하루 쓰자고 3일짜리를 끊기엔 가격이 부담스럽다. 시간과 비용을 고려해 선택한 곳이 ‘노코노시마섬’에 있는 아일랜드 파크다. 



완행버스는 관광버스


하카타역에서 굽이굽이 여러 정류장을 거치는 완행버스를 타고 가는데 주로 하카타역에만 있던 나로서는 관광버스가 따로 없다. 버스가 도심을 조금 벗어나니 바다가 보이는 고가도로를 타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모모치 비치와 하카타 포트타워, 후쿠오카 타워를 지나간다. 깔끔하게 정돈된 주택가와 교복 입은 학생들. 인근에 학교가 있는 모양이다. 예상은 했지만 학생들의 모습은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아온 모습 그대로다. 모두가 짙은 남색의 교복에 비슷한 모양의 신발을 신고 머리모양도 똑같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은 모두 같은 브랜드의 가방을 메고 있다. 검은 바둑돌 중에 흰 돌이 끼면 튀듯 그들 속에 나 같은 이방인이 섞이면 상당한 이질감이 느껴질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타고 가니 노코노시마섬으로 들어가는 배 선착장에 당도한다.

하카타역 주변에만 머물다 버스 타고 배 타고 건너간 노코노시마 섬




4계절 꽃을 볼 수 있는 ‘아일랜드 파크’


도심에서 벗어나 버스를 타고,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이번 코스가 마음에 든다. 이번에는 배다. 외국인 관광객보다는 그곳에 사는 거주민들이 자전거 또는 차를 타고 승선한다. 그리고 산 중턱에 위치한 ‘아일랜드파크’에 놀러 가는 연인들, 어린아이들을 둔 가족 등이 주를 이룬다. ‘아일랜드 파크’는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는 정원이다. 봄에는 유채꽃, 여름에는 해바라기, 가을에는 코스모스, 겨울에는 동백꽃. 이곳에서는 1년 내내 꽃을 볼 수 있다.  꽃밭 속에서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고 섬에서 저 멀리 있는 또 다른 섬을 바라볼 수 있다. 바다를 등지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바다를 배경으로 꽃 속에 파묻힌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꽃밭에 앉아 섬에서 섬을 바라본다




꽃밭에 앉아 헌 마음 뱉고 새 마음 담는다 


꽃밭은 아름답고 주변은 고요하다. 그리고 바다는 잔잔하다. 벤치에 앉아 한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꽃 내음. 눈은 저절로 감기고 깊은 호흡을 천천히 하게 한다. 가슴은 자연스레 꼿꼿하게 펴지고 들숨에 이곳의 향기를 담고 날숨에 가지고 온 시름을 들어낸다. 하루 일과가 ‘출근 전, 출근 후, 퇴근 후’ 3라운드로 바삐 돌아가던 나를,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제작일정이 촉박했던 사은품을 만드느라 동동거렸던 나를, 일주일치 먹을 반찬을 주말 내 만들곤 지쳤던 나를 긴 호흡으로 내보낸다. 그리고 이곳의 여유롭고 평온한 기운을 깊은 호흡으로 담는다. 다시 돌아가도 쳇바퀴처럼 돌겠지만 이렇게 헌 마음을 뱉어내고 새 마음을 담고 나니 또다시 견딜 만하겠지. 일도 어렵지만 그 어려운 일을 가정과 양립하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는데 지금까지도 즐기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피할 수 없으면 그저 있는 그대로 그 힘듦이 지나갈 때까지 고스란히 견디는 수밖에 없다. 다만 내가 견뎌내는 방법을 알고 있고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감사하다. 이렇게 혼자 시간을 갖음으로써 비워내고 채워간다. 

찍는 각도에 따라, 피어있는 꽃에 따라 모든 사진이 아름답다



붐비는 버스보다 산책하듯 걸어볼까?!


공원은 작지만 이곳 시간에 맞추어 발걸음은 느려지고 머무는 시간은 길어져 꽤나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게 된다. 멈춰져 있던 내 시간이 돌아가는 버스시간에 맞추어 작동하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정류장은 이미 만원이다. 인적이 드물어 사람이 없는 것 같았는데 제법 많다. 꽉 끼어서 내려갈 건지 아님 걸어 내려갈지 고민이다. 구글맵으로 찍어보니 30여분 걸리는 거리. 게다가 힘겹게 올라가는 길도 아니고 길 따라 내려가는 길인데 냅다 뛰어 내려가면 15분 만에 당도할 것도 같다. 공원에 앉아서 느꼈던 자연이 포근해 숲길도 아늑할 것 같아 기대하며 슬슬 내려갔다. 구글맵의 맹점. 목적지까지의 빠른 길과 소요시간만 알려 줄 뿐 얼마나 비탈졌는지, 가는 길은 고른지 울퉁불퉁한지, 인적이 드문지 아닌지 주변상황과 분위기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공원에서도 인적이 드물었는데 산길이야 오죽하겠는가. 내가 너무 쉽게 간과한 부분이다. 내 인생 최고로 무서웠던 길이었다. 숲 속 어딘가에서 날짐승이 뛰어나올 것 만 같고 누군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나를 헤칠 것만 같았다. 군데군데 오랫동안 방치된 기괴한 빈집들로 간담이 서늘했고 빼곡한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내 뒤통수를 오싹하게 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살인자의 시선으로 어느 쪽을 사냥할까 왼쪽과 오른쪽을 빠른 템포로 번갈아 보던 그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름과 동시에 천천히 걷던 내 발걸음은 도망자의 발걸음처럼 무섭게 내달렸다. 미친 듯이 뛰어 산길을 내려와 해변가에 당도하고서야 멈춰 섰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헉헉대고 온통 땀범벅이다. 후달거리는 다리를 붙들고 방파제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때마침 내가 타려고 했던 버스가 유유히 내 옆으로 지나간다. 만원 버스였더라도 저 차를 타고 내려올걸. 

산에서 미친 듯이 뛰어내려와 방파제 위에서 한숨 고른다




공원에서의 평화로웠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혼비백산해 뛰어내려와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고 얼굴과 목덜미, 등은 땀으로 엉망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땀으로 젖었던 몸이 시원해진다. 헛웃음이 난다. 풋-! 별일 없이 내려와서 참 다행이다. 사건사고 없이 내려와 추억이 됐다. 혼자 여행이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선 무리에 섞이리라. 절대 혼자 다니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난 소중하니깐. 안전이 제일이다. 


땀 흘리고 먹는 커피는 천상의 맛! 섬마을 냉커피, 카페 카모메. 등 굽은 할머니가 냉장고에서 꺼낸 블랙 커피에 얼음만 동동 띄어준 투박한 커피지만 최고였다.



https://maps.app.goo.gl/DjHMpmDcxqmyT9MY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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